[독서일기](36) 일요일의 마음

반나절은 책을 읽고 반나절은 고요히 앉아 있다

피아노를 치는 글렌 굴드. 굴드는 자기 공간에 대한 집착과 집중력이 강했던 예술가 중 한 명이다.

일요일은 평일과 어떻게 다른가. 월요일 오전에서 주말이 오기 전까지는 직장인에게 일의 시간, 타자의 시간, 봉급을 받는 직장에 매인 시간이다. 그 시간 동안에 ‘나’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타자와 직장에 매인다. 그 시간들에 ‘나’는 틈입의 여지가 없는 직장과 시장에서 비자발적 업무에 묶여 보낸다. 한 주일의 맨 끝에 오는 일요일은 직장과 타자와 책임과 의무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고, 누군가에게 맡겼던 시간을 되찾아올 때다. 직장 상사의 다그침과 숨막히게 돌아가는 업무의 매임과 죔에서 풀려난 해방감 속에서 ‘나’의 취향에 따라 세계를 음미하는 시간, 달콤한 휴식의 시간, 시인의 어법을 빌리자면, “찾다 찾다 놓아둔 / 우리 아직 못 찾은 마지막 골목길을 찾아가볼까?”, 혹은 “차라리 맑은 모랫벌 위에 / 피어 있는 해당화 꽃같이 될까”(서정주, ‘일요일이 오거던’)라는 구절처럼, ‘못 찾은 마지막 골목길’을 찾아 떠나는 시간, 모랫벌 위에 핀 해당화 꽃이 되어 사는 시간이다. 손에 쥐고 있던 도구와 서류 들을 던져놓고 내 맘대로 태업을 해도 일요일에는 누가 와서 뭐라고 하지 않는 자유의 날이다. 합법화된 태업의 시간, 백수의 시간, 너무 심심하고 무료해서 몸을 뒤채고, 깜빡 낮잠에 빠져드는 그 무한정한 무위(無爲)의 시간, 누구의 간섭도 없이 온전히 ‘나’로 돌아가는 시간, 그 한가롭고 자유로운 일요일은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다. 일요일은 한 주일의 노동의 대가요, 수고에 대한 보답이고, 온갖 매임과 죔에 대한 포상이다. 다름 아닌 하느님이 보장해주신 포상과 휴식의 시간, 성화(聖化)된 시간이다.

“오십대 초반의 남성. 직업은 문학교수.” 이남호는 그렇게 자기소개를 한다. ‘일요일의 마음’은 문학평론가 이남호가 쓴 ‘아름다움에 대한 스물여섯 편의 에세이’를 담은 책이다. 오감을 즐겁게 하고, 마음에 고요와 평화를 준 시, 음악, 그림, 영화, 책, 문학, 산, 숲, 물, 고요, 아름다움, 상상력에 관한 글들이다. 해박한 평론가답게 서정주와 박목월과 정지용과 황동규와 소동파와 에밀리 디킨스의 시에서 바흐와 시벨리우스의 음악으로, 에드워드 호퍼와 장욱진과 김병종과 마티스와 잭슨 폴록의 그림에서 뤽 베송과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대니얼 페트리의 영화로, 베른트 하인리히와 헤르만 헤세와 모라비아와 얀 마텔의 책에서 북한산과 설악산으로 종횡으로 건너뛰며 펼친, 세상의 모든 예술과 아름다움의 실체를 누리고 즐긴 이의 아름다움에 대한 숙고이며, 그 아름다움에 살을 부비며 행복으로 충만했던 오감과 그 기억에 바치는 예찬이다.

이남호·생각의나무·2007

미국의 현대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철학으로의 이탈’이라는 메마른 풍경을 그린 그림에서 현대의 삶이 처한 고독과 혼란, 심각한 결핍의 기미를 읽어낸다. 전설적인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의 삶과 음악을 다룬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를 읽은 뒤 금속성이 느껴지는 그이의 피아노 연주를 좋아하게 된 사정을 적는다. 은둔과 고독으로 일관한 굴드의 삶을 안 뒤에 그이의 연주에 대한 거부감이 얇아지더니, 어느 날부터인가 “매력적으로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대니얼 페트리의 ‘로켓 지브랄타’를 본 뒤 그 영화에 대해 좋은 느낌을 갖게 된 사연을 쓴다. 아내와 사별한 뒤 롱아일랜드 바닷가 집에 혼자 사는 레비 록웰의 일생, 그리고 아름다운 가족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이 영화가 좋았던 것은 삶의 뒤안길에 소용돌이치는 아픔과 굴곡과 욕망들에도 불구하고 작중인물들의 삶에 대한 무한한 긍정, 끝까지 잃지 않는 존엄과 품위, 있는 그대로의 삶을 받아들이는 낙관주의에서 오는 이녁 마음의 감응이었음을 고백한다.

이남호는 미적인 것을 알아보는 밝은 눈과 예민한 감각을 가진 이다. 땅의 작은 울림에 진동으로 반응하는 지진계의 침(針)과 같이 아름다움을 지닌 것 앞에서 그이의 마음은 뛰어난 감지력으로 그 아름다움의 세목을 포착하고 떨린다. 그 떨림은 “욕망, 관능의 화려함과 고독의 정적”이 절묘하게 조합된 마티스의 ‘테라스에 앉은 조라’에 대한 감상을 적을 때, 헤르만 헤세의 ‘유리알유희’라는 소설 읽기를 고등학교 시절 몇 장 넘기지 못하고 중단하고, 다시 대학교 때 두 번 시도했다가 두 번 다 실패하고, 대학을 졸업하고 몇 년이 지난 뒤 비로소 감동적으로 완독하게 된 경위를 토로할 때, 박목월의 ‘봄비’라는 소박한 시에서 봄비 다녀간 뒤에 장독 뒤, 담 밑, 흙담 안쪽과 같이 뜨락의 후미진 곳에서 돋는 더덕순, 모란움, 호박순 등을 남성의 성적 욕구에 대한 상징으로 읽어낼 때 숨길 수 없이 드러난다.

오월의 어느 하루, 고요한 숲 속에서 책과 음악을 곁에 듣고, 차를 마시며 혼자 오롯하게 보낸 자기만의 시간이야말로 진짜 ‘일요일’의 시간일 터다. ‘북한산의 오월’이라는 글은 뜻하지 않게 공짜로 주어진, 매임과 죔에서 풀려나 비게 된 평일 하루를 북한산에서 황홀하고 몽롱하게 혼자 보낸 시간에 대해 적는다. “모든 호사(豪奢)는 어느 정도 뻔뻔하게 마련이다. 나는 뻔뻔하게 머리 위로 연녹색의 세례를 받으며 붉은 꽃잎들을 성큼성큼 밟고 지나가는 호사를 누린다.” 온전히 ‘나’만의 시간으로 주어진 그 무상의 시간은 호사를 누리는 시간이다. 나만의 성소(聖所)와 같은 숲 속에서 자연과 친하게 지낸 생물학자가 쓴 ‘숲에 사는 즐거움’을 읽고, 무위의 휴식 속에서 짧은 낮잠을 자고, 바흐의 음악을 듣는다. 그렇게 ‘나’의 호흡과 리듬에 평화를 주고 고급스러운 심심함을 선물했던 오월 어느 하루는 아쉽게도 사라진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위의 시간이었지만, 나의 모든 감각과 사유와 내면은 활발하게 움직인 바쁜 하루였다. 아마도 감각과 사유와 내면에도 피부라는 것이 있다면, 그 피부는 열탕에서 갓 나온 것처럼 발갛게 상기되었을 것이다. 숲에서 보낸 나의 하루와는 무관하게 세상의 하루도 저 어둑한 산등성이를 넘어간다. 나는 오늘 하루, 세상이라는 답답한 미궁의 어느 모퉁이에 나만 아는 조그만 환기구멍을 하나 만들었던 것 같다.” 일요일은 무위의 시간이지만, 아무 소득이 없는 쓸모없는 시간이 아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일요일은 뜻으로 충만한 시간이다. 왜냐하면 매임 없는 고독 속에서 자기를 탐구하는 데 바쁜 시간인 까닭이다. 아마도 키케로가 한 다음과 같은 말이 가장 적확하게 들어맞는 시간이 일요일의 시간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 때보다 사람이 더 활동적인 순간은 없으며, 고독 속에서만큼이나 혼자가 아닌 순간도 없다.”

잭슨 폴록, 푸른 기둥, 11번, 1952.

독서일기

한 철학자는 일요일을 두고 “수고와 여가의 교대는 세계의 시간 자체를 구성한다. 이 교대 속에서 우리는 수고를 통해 얻은 수확을 즐긴다. 이 시간은 일요일, 즉 그 안에서 세계가 주어지는 순수한 여가로서 흘러간다.”(레비나스)라고 쓴다. 추사 김정희의 고택에 “반나절은 책을 읽고, 반나절은 고요히 앉아 있는다.(半日讀書半日坐定)”라고 적힌 주렴이 있다 한다. 일요일은 쫓기지 않은 채 한가롭게 책을 읽으며 빈둥거릴 수 있는 때, 또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고요히 앉아 있는 고적함의 시간, 즉 비어 있음의 충만함에 이른 시간이다. 세속의 잡담과 소음에서 벗어나 고요를 관조할 때다. 예술은 현실의 답답함과 괴로움을 견딜 힘을 주고, 온갖 매임과 죔으로 헐떡이는 마음에 고요와 평화를 준다. 예술은 그 핵심에서 ‘순수한 여가’로서 일요일의 무위함과 자유로움에 통한다. 일요일은 일손을 놓고 게으름을 피울 수 있는 시간이다. 그러므로 ‘일요일의 마음’은 직장인들이 수고하며 활동하는 시간에 저 혼자만 빈둥거리는 것처럼 보이는 예술가의 마음과 가장 잘 통하는 같은 맥락의 시간이다.

〈시인·문학평론가 장석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