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야기]생활 주변에 살아있는 아인슈타인

아인슈타인의 생전 모습.

아인슈타인은 유명한 물리학자이면서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처칠, 드골, 루스벨트같이 영향력 있는 정치인, 시인 타골, 철학자 러셀, 사르트르, 화가 피카소, 조각가 헨리 무어 그리고 지휘자 번스타인, 바이올린 연주자 호로비츠 등을 제치고 20세기의 인물로 선정된 것은 그의 영향력을 우리사회 구석구석에서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과학과 관련이 없어 보이는 곳에서조차 그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휴대전화부터 음주단속기까지

세기의 천재과학자 아인슈타인이 특수 상대성이론, 광전효과, 브라운 운동 그리고 E = mc2 등 네 편의 주옥 같은 논문을 발표한 지도 벌써 100년이 넘었다. 세계적인 학술지 ‘물리학 해설’에 1905년 6월 30일자로 접수된 ‘움직이는 물체의 전기 동력학에 관하여’라는 제목의 논문은 오늘날 ‘특수상대성이론’으로 알려진 획기적인 논문이었다. 그러나 당시 물리학계로서는 너무 앞선 생각이어서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아인슈타인이 같은 내용을 담은 논문을 스위스의 취리히 공과대학에 박사 학위 논문으로 제출했을 때 그 대학의 교수진들은 ‘엉뚱한 발상’이라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두 번째 논문인 ‘광전효과’는 바로 물리학계의 동의를 얻었고 훗날(1922년) 아인슈타인에게 ‘노벨물리학상’을 안겨준다. ‘광전효과’란 금속판에 빛을 쪼이면 전자가 튀어나오는 현상을 말한다. 아인슈타인의 광전효과 이론에 따르면 물질인 수소가 수소원자로 이루어져 있는 것처럼 빛도 역시 빛의 원자인 각종 색깔에 해당하는 ‘광량자’(光量子)로 이루어져 있다. 이 광량자가 금속판을 때리면 금속 속에 있는 전자를 튕겨 낸다는 것이다. 그런데 푸른빛 알갱이인 푸른 광량자는 금속판을 더 세게 때리고 붉은색 광량자는 더 약하게 때리는 성질 때문에 푸른빛 광량자는 전자를 튀어나오게 하고 붉은빛 광량자는 약하므로 금속으로부터 전자를 잘 튕겨내지 못한다.

별것 아닌 것 같은 이 이론이 현대 산업의 기본 요소를 만들어주고 있다. 디지털 카메라, 반도체, 휴대전화, 시계판, 계산기, 복사기 등 많은 부분에 응용된다. 아인슈타인의 영향은 이처럼 우리 주변생활 속 곳곳에 숨어 있다. 아인슈타인의 영향은 엉뚱한 곳에서도 나타난다. 음주운전을 적발하는 경찰관이 들고 있는 ‘음주단속기’ 속에도 아인슈타인이 있다. 술을 마신 사람이 음주단속기에 입을 대어 훅 불면 음주단속기 속에 들어 있는 테스트 가스의 빛이 숨 속의 알코올 성분 때문에 푸른 색깔로 변한다. 푸른 색깔의 빛의 알갱이는 둘러싼 금속판에서 아인슈타인의 광전효과 때문에 전자가 튀어나오게 하고 그 전자의 흐름 즉 전류를 증폭하여 음주단속기의 디지털 계기판에 음주 정도를 나타내게 한다. 휴대전화부터 음주단속기까지 아인슈타인은 생활 속 곳곳에 ‘유비쿼터스’하게 숨어 있는 것이다.

화가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 ‘기억의 지속’을 보면 죽은 시계가 죽은 해변에 널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시간이 정지한 것이다. 이 때문에 그림 제목처럼 기억이 각인돼 변하지 않는다. 어떻게 시간이 정지할 수 있을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빛의 속도로 달리면 시간이 멈추고 길이가 없어진다. 이런 물리학 개념은 미술에도 많은 영향을 줬다. 달리가 상대성이론을 정확히 이해하지는 않았겠지만 달리가 살았던 시대는 상대성이론이 과학계에 혁명을 일으키던 때였다. 젊은 사람들은 상대성이론에서 나온 새로운 우주관과 시공에 대한 개념을 흥미로워했다. 이런 분위기는 달리와 같은 미술가들에게도 사고의 전환을 일으켰다.

마그레의 그림 ‘유리의 집’도 마찬가지다. 이 그림을 보면 두께(길이)가 없어지고 뒷모습이 앞에서 보여 얼굴과 뒷머리가 하나로 합쳐져 있다. 이 그림에서도 상대성이론에 의한 길이 수축 원리가 강하게 투영돼 있다. 실제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기차가 빛의 속도의 3분의 2 수준으로 달리면 기차가 정지할 때보다 짧게 보인다. 만약 빛의 속도로 모든 물체가 달린다면 긴 물체도 길이는 없어지고 맨 앞과 뒤가 붙은 평면으로 보인다. 상대성이론의 영향은 파블로 피카소(1881~1973) 등 입체파 화가들에게 가장 많이 나타난다. 피카소는 1907년 여름 프랑스 파리에서 ‘아비뇽의 아가씨들’을 완성했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인정받을 때까지 긴 시간이 필요했듯 피카소의 그림도 1920년대 초에 가서야 걸작으로 인정받았다.

상대성이론 입체파 탄생에 기여

1.마그레의 '기억의 지속'(위)<br> 2. 살라도르 달리의 '사차원 십자가의 예수'(아래 왼쪽)<br> 3.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 (아래 오른쪽)

1.마그레의 '기억의 지속'(위)
2. 살라도르 달리의 '사차원 십자가의 예수'(아래 왼쪽)
3.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 (아래 오른쪽)

과학이야기

‘아비뇽의 처녀들’을 보면 피카소는 사각의 큐빅 모양으로 입체감을 표시했다. 또 한쪽 면에서만 대상을 보고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라 여러 방향에서 본 모습을 하나의 평면에 합쳤다. 아인슈타인이 3차원 공간에 시간이라는 새로운 차원을 더해 4차원 시공간 개념을 만들었듯 피카소는 새로운 차원을 첨가해 그림을 그린 것이다. 피카소가 아인슈타인에게서 상대성이론을 배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에게 상대성이론의 영감을 준 한 과학자가 피카소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아인슈타인과 피카소는 비유하자면 같은 정신적 스승의 사제 사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 과학자는 프랑스의 최고 과학자로 불리던 앙리 프앵카레였다. 피카소는 파리에서 후대에 ‘피카소 패거리’로 불리는 사람들과 카페에서 과학과 철학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어느 날 그들로부터 앙리 푸앵카레가 ‘과학과 가설’에서 다룬 비유클리드 기하학과 4차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아인슈타인 역시 ‘과학과 가설’의 독일어 번역판을 읽었다. ‘아인슈타인, 피카소‘라는 책을 쓴 런던칼리지대 과학철학과 아서 밀러 교수에 따르면 ‘눈에 보이는 것은 거짓’이라는 사실을 아인슈타인은 물리학에서 깨달았고 피카소는 화폭 위에서 깨달은 것이다. 당시 화가들은 4차원을 3차원에서 표현하려고 했다. 달리의 그림 중 ‘고차원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를 보면 십자가의 모양이 매우 입체적이다. 이는 4차원 십자가를 3차원에서 펼친 모습을 뜻한다.

<김제완 과학문화진흥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