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스타 성공 키워드]방송인 현·영

한정 없는 살가움과 다정함의 진수

방송가에서 현영은 ‘똑똑하고 착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간혹 그녀가 슬쩍슬쩍 내비치는 백치미로 그녀를 판단하면 오산이다. <경향신문>

보통 작가와 진행자가 대본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상대에 따라 여러 가지 재미있는 일이 생긴다. 내용을 통째로 외워서 해야겠으니 3일 전부터 달라며 하루에 한 번씩 독촉하는 조급한 사람. 반대로 사전에 보내도 녹화 당일 10분 전에 슬쩍 훑어보는 시늉만 하는 사람. 대사 3줄 이상은 소화하기 힘드니 3줄 아래로 써달라는 희한한 주문을 거는 사람. 거기다 어휘 한두 개가 마음에 안 든다며 불러서 훈계하는 사람도 있고, 자기 분량이 적다고 투덜대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

하지만 이 모든 사람 중 단연 눈에 띄는 사람은 군말 없이 자신만의 화법으로 대본을 소화한 후 대본 이상을 표현하는 사람이다. 특히 촉각을 다투는 생방송 프로그램의 경우, 대본은 팩트 정리만 해도 바쁠 정도로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간다. 연예뉴스의 경우 한쪽에서는 생방송을 하고 있고, 한쪽에서는 편집이 나오는 대로 팩스로 대본을 정리해 생방송 부스로 전송하는 상황도 생긴다. 그럴 때 진행자의 순발력과 재치는 방송의 톤을 결정할 만큼 중요하다. 그걸 가장 잘 하는 진행자 중 한 사람이 바로 현영이다.

실제로 연예뉴스 프로그램 작가들이 뽑은 ‘완소’ 스타는 현영이다. 단어 하나를 제시하면, 눈치 빠르게 열 문장을 표현해내는 사람. 자신을 치장하고 포장하는 데 애쓰기보다 함께 아이디어를 내고, 공생하는 방법을 터득한 사람이 현영이다. 그러니 간혹 슬쩍슬쩍 내비치는 백치미로 그녀를 판단한다면 실수다. 방송가에서 현영이 받고 있는 평가는 ‘똑똑하고 착한 사람’이니까.

한 5년쯤 됐을까. 필자가 MBC ‘활력충전 36.5’라는 건강 프로그램을 할 때였다. 그 시절, 가만히 있어도 에너지가 넘치는 20대 현영을 보았다. 깍듯한 인사로 자신을 소개하는 현영은 서러운 사연 하나 없어 보일 정도로 밝은 기운이 가득했다. 첫인상만 기억하자면, 성공 예감이 들기엔 아득바득 독한 면이 없어 보였고, 그렇다고 묻히기엔 너무 아까운 방송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는 정도. 당시 그녀에게 별 애정이 없던 나도 한 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목소리 때문에 방송인으로서 수명을 걱정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것은 만인의 기우였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현영은 최고의 방송인이 되어 있다. 세상에 그 목소리로, 눈부신 마스크도 아닌데다가 적지 않은 나이와 핸디캡을 극복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눈물이 있었을까. “방송에서 한 마디도 하지 마라”고 말하던 선배 방송인의 질타와 좋지 않은 시선의 뭇매를 맞으면서도 시종일관 웃을 수 있었던 현영이야말로 얼마나 강한 내공을 지닌 여자인가. 엄마 아빠가 가혹할 정도로 엄중한 벌을 내려도, 서러워하지 않고 눈물 맺힌 눈으로 엄마 품에 더 파고드는 아이 같다고 할까. 아무리 몰매를 맞아도 그늘을 품기는커녕 “더 노력할게요, 사랑해주세요” 하고 대중의 품에 파고드는 그녀의 살가움이 나는 좋아 보였다.

‘여걸파이브’였나. 그녀가 톱스타가 되고 난 후에야 눈물을 흘리며 “그때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노라”고 고백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지금 흘리는 현영의 눈물이 다이아몬드보다 반짝이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본 현영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백만불짜리 보디라인이 아니라 눈시울을 붉히며 마음을 고백하던 바로 그 모습이다.

다정함 뒤에 숨은 긴장

MBC ‘스타의 친구를 소개합니다’에서 현영은 이휘재와 함께 MC를 맡고 있다. 현영은 자신만의 화법으로 대본을 소화해 대본 이상을 표현한다. | MBC 제공

남에게 다정해도 정작 그 자신에게는 엄격한 모양이다. 주변에서 그녀를 지켜보는 같은 소속사 이대희씨는 “결국은 보통 사람보다 더 잘하면서 항상 걱정하고 긴장하는 태도가 옆에서 보기 안쓰러울 정도”라고 한다. 자신을 못살게 굴면서까지 긴장을 유지하는 게 이 자리에 있게 된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고.

몸매 관리를 위해 텔레비전을 볼 때조차 소파는 금물이요, 늘 사이클 위에서 운동을 하며 본다고 한다. 하루에 2~3개의 스케줄을 소화하며 야밤에 그 많은 대본을 언제 봤을까 싶고, “녹화 들어가면 과연 이 부분을 할까?”라고 생각되던 부분도 이미 현영 스스로 준비를 다 마치고 와서 놀란 적이 많다고 한다.

‘삼색녀 토크쇼’를 함께 했던 어윤정 작가는 “게스트가 하기 어려운 일을 스스로 먼저 애교스럽게 보이거나 터트리면서 게스트로 하여금 말하게 만드는 점이 너무 예뻐 보였다”고 했다. 사다리 타서 모창하기, 림보 대결 등 MC가 싫어하는 부분도 “싫다”고 말하기보다 “이렇게 하는 게 더 좋겠다”고 항상 대안을 제시하고, 막상 녹화에 들어가면 가장 앞장섰다고. 한번은 송승환을 게스트로 초청했는데, 난타에 대해 많이 모른다며 직접 자료 조사로 프린트를 해와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남다른 점을 느꼈다고 했다.

진짜 다정함은 지금부터 시작
SBS ‘헤이헤이헤이’의 콩트를 할 때였다. 멤버 중 가장 많은 스케줄이 있었지만, 모든 스케줄을 맞추고 아이디어를 가장 많이 내던 멤버도 현영이었다. 한번은 현영의 소속사에서 모 케이블은 출연하지 않기로 한 방침이 있었다. ‘섹션TV연예통신’을 함께했던 피디가 모 케이블로 옮겨가면서 인터뷰를 요청했는데, 방송사를 물어보지도 않고 친분으로 흔쾌히 수락했다고. 촬영이 끝난 뒤에야 방송사를 알게 되었지만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재미있게 편집해달라고 웃으면서 자리를 떴다고 한다(보통 이럴 경우 연예인들은 소속사와 갈등을 피하기 위해 원칙을 따르는 편이다. 안되는 건 안되는 것이니까). 요즘도 연일 쏟아지는 연인과 관련한 질문에, 당황한 낯빛 하나 없이 웃으면서 하나하나 재미있게 답하는 그녀를 보고 ‘진짜 다정함은 지금부터 시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톱스타 성공 키워드

교태와 애교는 종이 한 장의 차이다. 남자들은 열광하고, 여자들은 시기했던 ‘미녀들의 수다’의 자밀라의 교태는 불편했지만 현영의 애교는 유쾌하다. 얼굴 붉힐 상황도 유머로 포장해서 웃게 하는 힘이야말로 현영이 가진 가장 무서운 무기가 아닐까. 슈렉의 무시무시한 괴물도 장화 신은 고양이가 전략적으로 지은 눈빛 한 방에 마음이 무너지지 않았던가. 단, 슈렉의 고양이와 현영이 다른 점은 하늘이 내린 애교에다 일본어에 도전해 중학생 수준의 회화를 해내고, 밤 열두 시가 되도 항상 러닝 머신을 뛰어야 잠자리에 든다는 노력까지 합해졌다는 점이다!

<남미영 방송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