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 TK’ 제치고 ‘범 TK’ 의 핵으로
이상득 의원, 최시중 방통위원장, 이병석 국회 국토해양위원장.(왼쪽부터)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 이병욱 환경부 차관, 박영준 총리실 국무차장.(왼쪽부터)
원세훈 국정원장 내정자, 이주호 교육부 차관, 주상용 서울경찰청장 내정자.(왼쪽부터)
"대통령도 TK이고, 대통령실장도 TK인데 어떻게 TK정부가 아니냐.”
여권의 한 의원이 정정길 대통령실장을 만나 TK 문제를 따졌다고 한다. 대구지역에서 ‘이 정부는 TK정부가 아니다’라는 말이 나온다는 이야기 때문이다. 이 의원은 “대구·경북에 가서 (TK정부임을) 제대로 홍보해달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이 정부는 TK정부가 아니다’라는 말이 나올 만큼 실제로 대구지역은 현 정부에 대해 냉담한 편이다. 야당이나 언론에서 이번 집권 2년차 개각을 ‘TK인사’라고 부각시켰지만 피부로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대구지역의 친박(親朴) 분위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명박 정부에서 여권 프리미엄을 얻지 못한 친박 인사들은 오히려 소외감을 토로한다. 대구지역 의원 대부분은 친박계로 분류된다.
한 여권 의원은 “지금 여권에서 힘을 가진 세력은 신PK와 PK”라고 말했다. 이 의원이 말한 ‘신PK’는 ‘포항·경북’을 말한다. 이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과 이상득 의원의 고향인 포항·경북지역 인사들이 청와대와 정부에서 힘을 갖고 있으며, 국회에서는 김형오 국회의장, 박희태 대표 같은 PK(부산·경남) 인사들이 부각됐다는 점을 비유한 것이다. 친박계의 박종근 의원은 “이번 인사가 TK인사라고 인정할 수 없다”면서 “지금은 TK가 득세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T(대구)가 빠진 K(경북)가 득세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구 지역 아닌 포항 인근 출신 득세
TK는 노태우 정부 이후 한때 상실감에 빠진 적이 있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재임하는 동안 정부 권력의 중심에 있었지만 김영삼 전 대통령이 권력을 잡으면서 권력의 축은 TK에서 PK로 대체됐다. 이후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TK는 야당 의원만 있는 지역이 됐다. 과거 섬유공장을 주축으로 유지했던 대구지역 경제는 그 사이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지 못한 채 20여 년간 정체 상태에 머물렀다. 공무원 사회에서 진급의 프리미엄이 됐던 TK상표는 오히려 진급의 장애물로 치부됐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TK는 다시 권력의 중심에 섰다. 하지만 예전의 TK가 아니라는 말이 많다. 대구지역의 한 정치인은 “TK라고 한다면 강재섭·박근혜 전 대표 정도가 TK라고 볼 수 있다”면서 “여기에는 경북에서 태어나 대구의 경북고를 나온 인사가 엄밀한 의미에서 TK라고 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경북고는 대구·경북지역의 명문고로 평준화 이전까지 대구·경북에서 태어난 인재들이 몰려들었던 학교다. 자연스럽게 ‘TK=경북고 출신’이라는 등식이 성립됐다. 대구 영남고를 졸업한 홍준표 원내대표는 TK라는 명함을 꺼내지 못할 정도였다. 대구지역 국회의원 중 절반 이상이 경북고 출신이다.
경북고 출신 인사 중에서도 ‘경신회’가 TK사단의 핵이었다. 노태우 전 대통령뿐 아니라 당시 내로라하는 정치인과 관료, 교수, 경제인 들이 ‘경신회’의 멤버였다. 경신회는 한 기수 중 20여 명만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경신회 역시 TK의 몰락과 함께 명성을 잃었다.
이명박 정부의 집권 2년차 개각에서 경북고 출신은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권태신 신임 총리실장, 김재수 신임 농촌진흥청장, 변무근 신임 방사청장이 경북고 출신이다. 한 TK 의원은 “우리가 야당 시절 핍박을 받으며 그 당시 정부를 비판했지만 이들은 대부분 관료로 그 당시 정권과 영합한 측면이 없지 않다”면서 “이들이 승진한 것을 TK 인사라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경북고 출신으로 ‘정통TK’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김경한 법무부 장관이 유임된 것이 TK 인사라면 TK 인사라고 할 수 있다. 정정길 대통령실장 역시 경북고 출신이다. 경북고 출신으로 검찰의 2인자였던 권재진 대검차장은 서울고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최근 검사장급 이상 검찰 인사에서도 경북고 출신의 TK 인사는 세력이 약화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명박 정부의 집권 2년차 개각에서는 ‘정통 TK’ 대신 ‘범 TK’가 도약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영주 출신의 원세훈 신임 국정원장 내정자와 영일 출신의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다. 원 내정자는 서울고를 졸업했고, 김 내정자는 대구 대륜고를 졸업했다. 특히 김 내정자는 영일 출신으로 포항·영일 출신에 쏟아지는 최근의 관심사를 반영하듯 주목을 받았다. 포항 출신인 이춘식 한나라당 의원은 “김 내정자는 부친이 영일에 있었을 뿐 엄밀한 의미에서 영일 출신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 내정자는 경주에서 자랐다.
포항·영일은 성골, 경북 출신은 진골
서울시 정무부시장 출신인 이춘식 의원은 서울시 행정부시장 출신인 원 내정자에 대해 “원 내정자의 원적이 경북일 뿐 원 내정자는 서울에서 학교를 다녔다”면서 “원 내정자를 TK 인사라고 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덧붙였다.
‘차관급 인사’에서 두드러진 TK 인사는 이주호 교과부1차관과 총리실 박영준 국무차장이다. 이 차관은 대구 출신으로 대구 청구고를 졸업했다. 박 국무차장은 경북 칠곡 출신으로 대구 오성고를 졸업했다. 이 대통령의 최측근인 두 사람이 차관에 임명된 것을 두고 ‘차관 정치’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특히 박 국무차장은 이상득 의원의 보좌관을 역임해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와 함께 대표적인 ‘신PK(포항·경북)인사’로 볼 수 있다. 어떤 식으로든 이 의원의 입김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추측 때문이다.
하지만 여권의 한 친이 핵심인사는 “이번 인사에서 ‘형통’은 없었다”면서 “대표적인 예인 원 내정자라든지, 현인택 통일부 장관 내정자, 김석기 내정자 등이 이상득 의원과 친분이 있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 인사는 “박 국무차장의 경우 차관급 자리 중에 한직에 가까운 국무차장을 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청 인사에서 경북 울진 출신의 주상용 대구경찰청장이 서울경찰청장으로 내정되면서 TK 인사가 다시 부각됐다. 주 청장은 대구고 출신이다. 공무원 사회에서도 TK는 이명박 정부 들어 크게 부상했다. 포항·영일 출신의 영포회 관료 외에도 경북 출신의 많은 관료가 청와대에 파견돼 권력의 핵심에 다가섰다. 포항·영일 출신이 성골이라면 경북 출신은 진골이라고 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 들어 부각된 TK 인사 대부분은 ‘정통 TK’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비(非) 경북고 출신이다. 특히 경북고에 오랫동안 눌려왔던 제2의 명문고 출신들이 주를 이룬다. 대륜고와 대구고, 동지상고, 청구고 등이 대표적이다. 대륜고 출신으로는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에 이어 이병욱 환경부 차관,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가 있고 대구고 출신으로는 주상용 서울경찰청장 내정자가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이상득 의원, 이병석 국회 국토해양위원장은 동지상고 출신이다. 대통령의 측근인 이주호 차관은 청구고 출신이다. 오랫동안 대통령의 옆에 있었던 이춘식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은 일로 사람을 평가하지, 학교 출신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는다”면서 “정정길 대통령실장의 예에서 보듯 경북고에 대해서 특별히 우호적이거나 적대적인 생각이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윤호우 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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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커지는 채 상병 의혹
‘이채양명주’ 의제로 올려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