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4대강 자전거 도로로 녹색뉴딜?

이 대통령 ‘5년 내 3대 자전거 생산국가’ 발언 논란

“왼쪽 페달 없애고 왼쪽 핸들 안 돌아가는 ‘명바이크’가 나온단 말이냐” “MTB(산악용 자전거)의 M과 B가 자기 이니셜인 줄 알 것.”

지난 5월 3일 폐막한 ‘대한민국 자전거 축전’에서 이명박 대통령 발언에 대한 누리꾼 반응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우리의 IT 기술과 부품소재 개발 잠재력을 활용한다면 우리는 차세대 자전거 선진국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위의 ‘반응’은 그냥 정치적 반대파들의 말이 아니다. 25만여 명의 회원을 둔, 국내 최대 자전거 동호회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하 자출사) 동호인들의 반응이다. 동호인들은 이 대통령의 자전거에 대한 ‘관심’을 그리 환영하지 않는 분위기다. 한 동호인은 “자전거 산업은 발전해도 누구누구는 자전거를 안 타면 좋겠다”고 극단적인 반응을 보였다.

“나도 놀랐다. 어떤 반응인가 지켜봤는데 굉장히 비판적이더라.” 서울환경연합 이지언 간사의 말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자전거’에 의미를 부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신년연설에서 “전국 곳곳을 자전거 길로 연결하겠다”고 밝혔고, 라디오 연설에서는 “자전거 시대를 열겠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자전거축전 폐막 연설에서 “자전거는 녹색성장의 동반자이자 녹색뉴딜 사업의 핵심 사업”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 주변에는 ‘자전거 마니아’들이 포진하고 있다. 이 대통령의 최측근인 이재오 전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2007년 9월 ‘한반도 큰 물길 자전거 탐방’이라는 이름으로 대운하 예정지를 완주한 적 있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지난해 8월 15일 이 대통령이 ‘녹색성장’을 표방하기 전부터 1주일에 1회 정도 문광부 청사에서 반포 집까지 자전거로 출·퇴근했다. 이명박 대통령 후보 시절 환경특별보좌역을 맡았던 이상원 4대강살리기범국민협의회 대표는 올 초 전국 자전거길잇기국민연합이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그는 현재 녹색성장위원회 민간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동호인들 ‘명바이크 나온단 말이냐’
서울환경연합은 지난 2월 발표한 성명에서 “매년 1245억 원씩 들여 2018년까지 총 3114㎞의 전국 자전거도로를 잇는다는 계획이 내포하는 개발 논리의 위험성을 경계한다”고 대립각을 세웠다. 대규모 토목공사를 통한 하천변 자전거도로 건설은 녹색교통으로서 자전거 의미가 오히려 퇴색할 것이라는 비판이다. 이 간사는 “자동차도로처럼 ‘로드킬’ 위험은 크지 않겠지만 생태적 단절도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자출사 동호회 회원 박태호씨(36·회사원)는 “결국 4대 강 사업을 미화하고 포장하기 위해 자전거정책을 이용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동호회 회원들은 출·퇴근이나 등·하교 등 자전거를 탈 환경을 마련하고 난 다음에 레저용으로 가는 것이 맞다는 데 대부분 의견을 같이 한다.

사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번 연설에서 동호인들의 요구를 두루두루 다 언급했다. 그러나 한 자전거 동호회 운영자는 “인도가 아닌 차도에 자전거도로 설치 등을 시행하겠다고 이전부터 나온 것”이라며 “하지만 언제 시행하겠다든지와 같은 구체적인 계획이 없이 몇 년째 같은 이야기만 되풀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운영자는 “정책을 내놓은 사람들 중 정말 자전거를 타고 한 번이라도 도로에 나간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라며 “책상머리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매번 같은 이상론만 되풀이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4월 30일, 자전거 라이더들은 용산 사건 책임자 처벌 자전거 투어 행사를 열려고 했지만 봉쇄당했다. 이날 수원에서 서울까지 자전거를 타고 행사에 참석하려 했지만, 막상 달릴 수 없었던 김산 다산인권센터 활동가는 “정치적 목소리는 말할 것도 없고, 평상시에도 경찰이 협조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라고 말했다. 현행 도로법상 자전거는 엄연히 도로를 달릴 수 있지만 경찰조차도 “왜 도로를 달리느냐”는 식으로 말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1990년대 후반부터 매월 셋째 주 토요일 모여 함께 도심도로를 ‘라이딩’하는 ‘발발이 행사’는 10년이 다 되도록 경찰 협조를 받은 적이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네이버 자출사 카페 매니저 김지회씨(47·회사원)는 “1년에 한두 번 행사 때를 제외하고 접이식이 아닌 자전거를 들고 지하철을 타면 벌금을 내는 경우도 있다”라고 말했다. 환경연합 에너지기후팀 이성조 간사는 “덴마크나 북유럽의 경우 심지어 신호등에 자전거 신호가 따로 있어 자전거가 자동차보다 먼저 가게 되어 있지만, 아직 한국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라고 말했다.

“환영하지만 한국 현실과 거리 있다”
동호인들은 “한국이 5년 내에 3대 자전거 생산국이 될 것”이라는 이대통령의 주장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부품 시장의 80%를 차지하고 있는 일본의 ‘시마노’나 기술력에서 각 분야를 꿰차고 있는 외국 기업을 넘어선다면 몰라도 현재 자전거 생산의 대부분을 아웃소싱하는 국내 현실상 가능한 계획인가라고 의문을 제기한다. 김지회씨는 “국산브랜드에 대한 수요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인지도 등의 이유로 (동호인들이) 외국 브랜드를 선호하는 것은 사실”이라며 “예전처럼 정책적으로 천대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하지만 현실과 거리가 있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업계는 어떻게 볼까. 1944년 창립한 삼천리자전거는 가장 인지도가 높은 대표 국산 브랜드다. 2005년 내·외부의 조건 악화로 중국으로 현지공장을 이전했다. 대통령의 ‘자전거’ 발언으로 이 회사의 주가는 상승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지식경제부 사람들과 자전거업계 현황에 대해 이야기한 적은 있지만 (이 대통령의 발언만으론)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이 나올지 몰라 아직 입장을 밝히긴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동호인들 주장도 일리는 있지만 1~2년 내에 모든 분야에서 최고품질을 만들어 시장을 석권해야 한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수요가 늘어나면 R&D 부문에서도 선순환이 일어나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코렉스 강승림 홍보팀장은 “국내 자전거 보급률이 아직 해외보다 낮다”며 “시장의 잠재성 등을 볼 때 고부가가치 산업과 자전거를 접목하면 성장 가능성이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민만기 녹색교통 사무처장은 정부의 자전거도로 건설계획 등에 대해 “의도나 진정성에 신뢰가 가지 않더라도 일단 자전거를 정책중심으로 끌어들였다는 점을 환영한다”라며 “다만 그 언급이나 의지가 어려운 현실에서 제대로 실현할 제도를 갖추고 있는가는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전거 3대 생산 국가’ 주장과 관련해서도 “현재 국내 제작 산업 기초가 붕괴되어 있는 것은 다 알려진 사실”이라며 “그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나 대책을 정부가 갖고 있는지는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사회

현재 관련 내용을 다루고 있는 자전거활성화법의 주관부처는 행정안전부다. 하지만 각 부처에 흩어져 있는 정부의 자전거정책에 대한 총괄은 녹색성장위원회에서 맡고 있다. 하인오 녹색성장위원회 서기관은 동호인·전문가 비판과 관련해 “한순간 뜨거운 냄비가 아니냐는 식의 말도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확보된 관련 예산으로 보나 청와대의 의지로 보나 이전 정부보다는 추진력 있게 관련 사업을 진행할 것”이라며 “구체적인 계획은 각 부처가 내놓은 안을 취합해봐야겠지만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달라”고 말했다. 과거 “닌텐도 같은 거 만들 수 없나”라는 발언으로 IT업계에서 ‘명텐도’ 논란이 일었던 것처럼 아직은 ‘명바이크’라는 농담이 들어맞는 것 같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