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그라운드 넷]그분이 오신다

“공부 잘하고 나왔습니다.” 모 인터넷 언론이 전한 ‘그분’의 출옥 일성(一聲)이다. 허경영 민주공화당 총재. 대선 당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의 결혼설, 미국 부시 전 대통령 취임축하파티 초청설을 퍼뜨린 혐의 등으로 2008년 1월 23일 구속됐다. 적용된 혐의는 명예훼손 및 공직선거법 위반이다. 징역 1년 6개월 기한을 정확히 채우고 7월 23일 오전에 출소했다.

사실 타이밍도 절묘했다. 22일, 61년 만이라는 개기일식을 두고 누리꾼은 ‘능력자가 출현할 것인가’를 궁금해 했다. 미국드라마 ‘히어로즈’의 영향이다. ‘히어로즈’에선 개기일식 때마다 새로운 능력자가 출현한다. 주요 커뮤니티 게시판 마다 누리꾼은 주변에서 어떤 ‘능력’이 생긴 사람이 없는지 잡담을 주고받았다. 이날 오후에 기습 상정된 미디어법을 두고 여의도에서 어떤 ‘능력자’가 탄생할 지도 모른다는 기대도 나왔다. 야당 의원 몇 명이 ‘공중부양’을 시도했지만 법 통과 저지에는 실패했다. 논란은 ‘그분이 오신다’는 기사 링크 글로 평정됐다. 본좌의 ‘재등장’은 향후 정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일단 그의 흔적을 추적해 봤다. 17대 대선의 발판이었던 경제공화당 홈페이지는 한 인터넷도메인 전문회사에 넘어갔다. 위키백과의 기록에 따르면 원래 당명인 ‘민주공화당’으로 2008년 10월 29일에 다시 돌아갔다. 민주공화당 홈페이지는 아직도 공사 중이다.올 하반기에 개통될 예정이다. 대신 제시한 링크는 허경영씨의 싸이월드 미니홈피. 출옥소식은 빠르게 전파됐다. 벌써부터 중·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많은 누리꾼이 허씨의 일촌평을 부탁하는 글을 올리고 있다. 디시인사이드에 개설된 ‘허경영 갤러리’ 유저들은 “본좌님 드디어 출소! 허갤러들도 하나 둘 깨어나고 있도다”고 기염을 토했다.

당분간 큰 선거가 있기 전까지 정치권에서 그의 행보를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허씨의 한 측근은 인터넷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정치일정 재개 계획은 아직 없다”라고 밝혔다. 대신 감옥 생활을 하면서 집필한 ‘동방의 등불’이라는 책이 있는데, 이 책에서 “시대의 아픔에 대한 해결 방안을 제시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허씨는 과거 옥중인터뷰에서 책이 “1000만 부가 팔릴 것”이라는 예언을 내놓은 적도 있다. 중·고등학생을 비롯한 젊은 층이 주 독자라는 것이다. 실현 여부는 물론 미지수다.

허씨는 케이블방송을 통해 ‘허경영 쇼’ 진행을 구상 중이라고 이날 출옥 인터뷰에서 밝혔지만 구체적으로 접촉 중인 방송은 공개하지 않았다. 어찌됐던 언론 협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과거 ‘허본좌 신드롬’의 중심엔 딴지일보가 있었다. 딴지일보 ‘너부리’ 편집장은 출옥인터뷰를 하지 않느냐는 본지 질문에 “아직 계획이 없다”라고 밝혔다. 그는 “물론 허씨만도 못한 정치인도 있지만 (딴지 인터뷰를) 허씨 지지자들이 악용해서 물의를 빚지 않았느냐”며 “처음에는 (한국정치 현실에 대한 ) 반어적 의미로 허씨 인터뷰를 내보냈지만 실제로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지지자도 생겨나 조심스럽다”고 덧붙였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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