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호가 만난 사람]‘금연법’ 추진하는 외과의사 박재갑 서울대 교수

“국가가 독약인 담배 만들어 흡연자 중독시켜”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잿더미로 만든 원폭 한 개가 매년 우리나라에 떨어진다. 6·25 한국전쟁이 끝나지 않아 날마다 그때와 비슷하게 군인이 죽어나간다. KAL 858기 폭파사고와 같은 비행기 사고가 하루도 빼놓지 않고 연일 터진다. 5000만 전 국민이 모조리 신종인플루엔자에 걸린다.

최근 개봉된 할리우드 재난영화 <2012>와 어깨를 겨룰 만하지 않은가. 황당할 것 같은 시나리오는 놀랍게도 바로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상황이라고 한다. 외과의사이자 금연운동가인 박재갑 서울대 의대 교수의 말이다.

박 교수는 암 치료와 연구에 많은 업적을 쌓은 사람이다. 국립암센터 설립을 건의하고 추진했으며, 이를 세계적 수준의 암 전문 센터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서울대 암연구소장, 국립암센터 1·2대 원장, 대한대장항문학회장, 대한암학회 이사장 등을 지내고 한국세포주은행을 설립해 세계 4대 은행으로 키웠다. 국제사회에서도 그의 명성을 인정해 세계대장외과학회 회장으로 뽑았다. 박 교수는 내년 3월 서울 학술대회에서 정식으로 취임한다.

암은 현대 과학기술이 풀지 못하는 인류의 최대 숙제 가운데 하나다. 각종 미래 예측 시나리오에 필수 항목처럼 등장하는 암은 곧 정복될 것 같으면서도 먼 미래까지 인류를 괴롭힐 숙적으로 묘사된다. 마이클 화이트 등의 <가상역사 21세기>에는 2046년, 마이클 H 하트의 <서기 3000년>에는 2067년에 각각 암이 완전히 정복된다.

박 교수는 암과는 직접 칼을 들고 싸우는 최일선 전사다. 지난 30년 동안 6000여 회 수술을 했고, 지금도 한 해 약 300회 집도를 한다. 박 교수를 만난 것은 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색다른 암 이야기다. 그는 전선에서는 칼을 들고 암과 ‘전투’를 벌이지만 나머지 시간에는 펜과 마이크로 그보다 더 큰 ‘전쟁’을 치르고 있다. 바로 암의 큰 원인 가운데 하나인 담배와의 전쟁이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수술을 해도 1년에 300명밖에 살릴 수 없지만 담배를 끊게 만들면 1년에 5만명을 살릴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글머리에 소개한 시나리오는 흡연으로 인한 연간 사망자 5만명을 그가 알기 쉽게 예시한 것이다.

요즘 신종 플루 때문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담배는 그보다 더 심각하다면서요.
“신종 플루는 사망률이 0.1%가 채 안 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1000명 걸리면 한 명 정도 죽는다는 거죠. 흡연으로 인한 사망자는 연간 5만명인데, 5000만 전 국민이 신종 플루에 걸렸을 때 죽는 숫자와 같지 않습니까.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됐을 때 9만8000명이 즉사했는데 조잡한 원폭 하나가 즉사자 5만명을 낸 거잖아요. 담배로 매일 137명꼴로 죽습니다. 이는 6·25 한국전쟁 때 한국군 하루 사망자 122명, KAL 858기 희생자 115명보다 많아요.”

연간 5만명이라는 숫자는 어떻게 해서 나온 겁니까.
“암 발병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그 중 30%가 흡연이에요. 사망 원인 2위는 뇌혈관 질환인데 이로 인한 사망의 15%가 흡연으로 인한 것이죠. 3위인 심장혈관 질환도 20%가 흡연이 원인입니다. 통틀어서 5만명이 되는 거죠. 단일 아이템으로 이처럼 많은 국민을 죽이는 게 어디 있습니까. 석면이 어떻고 멜라민이 저떻고 하는데 그야말로 코미디입니다. 도대체 몇 명이나 죽는다고 호들갑을 떨고 난립니까. 5만명 죽이는 담배는 버젓이 팔면서 말이죠.”

5만명이 꼭 담배 때문에 죽는다는 주장은 믿기 어려운데요.
“수십 년 동안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이고, 엄청난 편수의 논문을 통해 나와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전체 암 사망자의 30%, 폐암 사망자의 85%가 흡연 때문이라는 얘기는 수많은 인원을 대상으로 역학조사한 결과예요. 이미 밝혀진 내용이고 교과서에 있는 것입니다. 어느 한 사람의 주장이 아닙니다.”

국립암센터 원장으로 있으면서 금연운동을 시작한 거죠. 어떤 계기가 있었습니까.
“개원식을 하면서 원장으로서 내가 할 일이 뭔가를 생각했죠. 암센터가 왜 만들어졌습니까. 국민의 암 발생률과 사망률을 낮추고 암 환자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죠. 어떻게 하면 될까 생각했는데 결국은 담배예요. 흡연이 30%이고 나머지는 다 5% 미만입니다. 감염이 20% 정도 되지만 이건 이미 다 잡혀간다고 보는 거죠. 담배를 안 피우게 하면 암 사망이 3분의 1이 줄어드는데 암센터 원장으로서 그걸 하지 않으면 직무유기가 아니겠습니까.”
한국인의 암 사망 기여도는 담배 30%, 감염 20%, 식생활 5%, 알코올 5%, 직업·화학물질 5%, 유전 5%, 방사선 3% 등이다. 박 교수는 담배 연기에 62종의 발암물질과 4000종 이상의 화학물질이 들어 있다고 말했다. 나프탈렌, DDT에서부터 청산가스에 이르기까지 독극물 덩어리라는 것이다. 특히 청산가스는 과거 사형실에서 사용하던 것으로, 담배 30갑 피워서 나오는 양은 몸무게 70㎏의 성인에게 치사량이 된다는 게 그의 말이다.

암 발병 외에도 인체에 나쁜 영향을 주는 게 많겠네요.
“이것 보세요. (환자를 촬영한 사진을 보여 주며) 폐가 썩어 들어가죠, 혈관이 막혀서 손발이 썩죠, 심장마비가 오죠, 남자는 발기가 안 돼 부부 간의 갈등이 생기죠, 여자는 나팔관이 막혀 임신이 안 되죠, 정신박약아를 낳죠…. 담배의 니코틴은 필로폰이나 엑스터시와 똑같이 뇌의 같은 부위에 작용해 도파민 농도를 높임으로써 정신병적 증세를 일으킵니다. 담배는 대마초보다 더 독한 마약이에요. 아편 정도의 중독성이 있고요. 한마디로 담배는 마약이고 독극물입니다. 국가가 이걸 합법적으로 판매한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거죠.”

“17대 국회에 입법청원을 했는데 담배 회사의 엄청난 돈과 로비 때문에…. 18대 국회에도 했지만 국회의원을 믿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특단의 다른 걸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시작한 게 ‘담배제조및매매등의금지에관한법률’ 입법 활동이었군요.
“담배 피는 사람들이 답을 준 것입니다. ‘담배가 그렇게 나쁜 것이면 만들어서 팔지 말아야지’라는 거예요. 2000년에 금연 심포지엄을 할 때 한국담배소비자협회도 참여시켰거든요. 그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얘기한 건데 나는 그대로 받아들였어요. ‘당신들 말이 맞다, 담배는 팔아서는 안 되는 독약이다, 내가 팔지 말자고 하겠다’고 했죠. 그래서 담배 제조·매매 금지운동을 시작한 겁니다.”
박 교수는 2000년부터 2006년까지 국립암센터 원장으로서 금연운동에 매진했다. 흡연자라면 꽤나 불편했던 그 시절을 기억할 것이다. 담뱃값이 오르고, 사무실 흡연은 꿈도 못 꾸게 되고, 식당·건물마저 전체가 금연구역으로 변했다. 신문과 방송에 흡연 장면이 사라지고, 군과 경찰에 면세 담배가 없어졌다. 청와대 내 금연구역 시행, 국회의사당 금연시설 지정, 담배꽁초 무단투기에 과태료 부과 등 많은 금연 정책과 캠페인이 흡연자를 궁지로 몰아넣었다.

흡연자의 원성이 꽤 높았지요.
“담뱃값 150원, 500원 올린 건 사실 제가 숨은 장본인이죠. 담배 피는 사람들은 욕할지 모르지만 제 생각은 달라요. 올리되 올린 돈은 전액 흡연자를 위해 쓰라는 게 제 주장입니다. 담배 피는 사람이 봉이 아니거든요. 어찌 보면 희생자예요. 저는 직설적으로 말합니다. 국가가 지금 사기를 치고 있다는 거죠. 담배회사도 욕할 게 아니에요. 합법적으로 만들고 영업하는 거니까요. 국가가 마약이자 독약인 담배를 만들어 팔게 하고 흡연자들을 중독시킨 겁니다. 책임은 대통령과 국회의원에게 있습니다.”
박 교수가 펼치는 금연운동의 결정판이 바로 이것이다. 그는 2006년 2월과 2008년 11월 국회에 담배 제조·매매 금지 입법청원을 내는 데 앞장섰다. 17대 국회는 물론 이번 18대 국회에서도 이 법안에 대한 진지한 검토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법안의 핵심 내용은 담배 제조·매매 금지에 앞서 10년 동안 흡연자 금연 치료와 더불어 잎담배 경작농가, 담배 소매상, 담배제조회사 등의 업종 전환을 지원하는 것이다.

흡연자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텐데요. 흡연권이라는 것도 있지 않습니까.
“제조·매매 금지는 국민의 행복추구권과 사생활의 자유를 무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위헌이라고 하죠. 제가 대법관부터 헌법재판관까지 만나서 다 상의했어요. 법을 만들면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의 대전환이기 때문에 위헌이 아니라는 겁니다. ‘1000만 담배 소비자를 범법자로 만들 거냐’라고도 해요. 대한민국 국민인데 어떻게 제가 범법자로 만듭니까. 금연자로 만들자는 거지요.”

현실적으로 가능하겠습니까. 못 끊는 사람도 많을 텐데요.
“제가 국립암센터 원장에 취임할 때 1300만명이 피웠어요. 6년 만에 800만명으로 줄었습니다. 이렇게 흡연율을 계속 낮춰 50만명까지 줄면 그때는 국가가 관리할 수 있습니다. 전국에서 (흡연자) 등록을 받는 겁니다. 못 끊어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국가가 관리해 주니까요. 예를 들어 5년 동안 못 끊었다고 합시다. 그래도 할 수 없는 겁니다. 환자니까요. 그게 제 개념입니다.”
우리나라 흡연율은 박 교수가 국립암센터 원장으로 재직하던 2000년부터 2006년까지 6년 동안 67.6%에서 44.1%로 급격히 떨어졌다. 그 뒤 감소폭이 둔화돼 지난해 40.4%로 바닥을 치더니 올해에는 41.4%로 오히려 증가했다. 박 교수는 금연 열풍이 주춤해진 점을 우려해 지난 1월 ‘맑은 공기 건강 연대’라는 시민단체(NGO)를 만들었다. 흡연자뿐만 아니라 비흡연자도 금연운동에 참여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담배 제조·매매 금지를 법제화한 나라가 있습니까.
“아직 없어요. 그래서 제가 국제사회로 나간 겁니다. 부탄이 공공장소 흡연을 금지하고 있지만 너무 작은 나라이고, 요즘 밀수가 성행하고 있다고 해요. 저는 부탄처럼 하면 안 된다고 봐요. 못 끊은 사람을 다 등록하게 하여 끊을 때까지 지원해 줘야 합니다. 관리를 해야 하는 거죠.”
박 교수는 2004년 프랑스 리옹에서 열린 세계암센터원장회의에서 담배 제조·매매 금지를 처음으로 국제사회에 제안했다. 그해 11월11일 ‘담배 없는 세상 연맹’(ToFWA, Tobacco Free World Alliance) 결성과 이듬해 10월 같은 회의에서 채택한 ‘담배 제조와 매매 금지를 위해 노력하자’는 리옹 선언이 그 결실이다. ToFWA는 ‘토파’로 읽는데, 우리말로도 담배(토)를 부수는(파) 것을 연상시키기도 한다는 게 박 교수의 말이다.

ToFWA 출범 후 5년 동안 국제사회에 변화가 있었습니까.
“제가 처음 국제사회에 담배 제조·매매 금지를 들고 나왔을 때 ‘왜 이런 제안을 수십 년 동안 아무도 하지 않았을까’라면서 ‘당신이 리더다’라고 하더군요.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있어요. 미국에서는 2007년에 뉴욕 시장을 지낸 분이 ‘이제 미국에서 담배의 제조 및 매매를 금지시킬 때가 됐다’는 내용의 칼럼을 썼어요. 나 혼자 떠드는 게 아니에요. 얼마 전 아시아 암센터원장회의에 갔더니 싱가포르 대표가 2000년에 태어난 아이부터는 담배를 살 수 없도록 하는 방안을 얘기하더라고요. 사회적으로 반대할 명분이 없으니 그것도 좋은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무리 명분이 좋아도 법제화는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17대 국회에 입법청원을 했는데 담배 회사의 엄청난 돈과 로비 때문에…. 18대 국회에도 했지만 국회의원을 믿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특단의 다른 걸 생각하고 있어요. 저도 17대 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기록은 남겨 놨습니다. 그러면 18대에는 될까요. 무참하게 날려버리지 않고 검토할 가치가 있다는 정도로만 해 줘도 성공이라는 거죠. 그래서 19대 국회에서라도 되면 괜찮아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앞으로 몇 십 년이 걸릴지도 모르니까요.”

특단의 다른 방안이라는 건 뭡니까.
“적게는 800만, 많게는 1000만명의 흡연자가 있고, 표와 돈과 로비가 있기 때문에 쉽지 않은 거죠. 저는 어느 순간에 힘 있는 NGO들이 돌아서면 된다고 봅니다. 입법청원을 경실련·소시모 등과 같이 했는데 NGO 내부에서도 흡연자가 있는 만큼 담배 제조·매매 금지를 과격한 것으로 보는 정서가 있거든요. 이들이 담배의 심각성을 깨닫고 사회정의 차원에서 금지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면 그때는 되는 겁니다. 저는 시간을 기다리는 거죠.”

법적 대응은 어떻습니까.
“법적 절차도 계속 윗사람들하고 상의하고 있지만 저는 대통령을 걸고 싶은 겁니다. 그런데 임기 중에는 면책특권이 있다나요. 그래서 누가 보건복지가족부 장관 얘기를 해요. 그건 아무 의미가 없죠. 복지부 장관이 무슨 힘이 있나요. 통수권자가 책임이 있죠.”

솔직히 담배 제조·매매 금지가 실현될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까.
“쉽지 않죠. 비행기를 처음 만들 때는 어디 쉬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비전을 갖고 하면 월드컵 4강 때처럼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거죠. 우리 국민은 화끈해서 어느 순간에 민심이 돌면 천심이 됩니다. 역사는 긍정적인 사람이 이루어가는 것이지 항상 안 된다고 하는 사람들이 만드는 건 아니거든요.”
금연 이야기에 몰두한 나머지 박 교수의 본업(?)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일은 뒤로 밀리고 말았다. 그는 세계 굴지의 암 전문의이자 의료개혁가이기도 하다. 최근 의료계의 강한 반발을 사고 있는 국방의학원법 입법 과정에도 그의 역할이 크게 보인다.

군 의료 개선 사업의 하나로 국방의학원법이 추진되고 있는 가운데 의료계가 시끄럽군요.
“그건 제가 마지막 국가에 대한 봉사로 하는 작업입니다. 제가 공공의료 부문에서 성공한 경험이 있고, 군 의료를 개선하는 방법을 알고 있거든요. 우리나라 42개 3차 의료기관이 국립의료원 빼고 다 대학병원입니다. 게다가 모두 법인이에요. 그래서 다른 나라는 다 있는 국방의대를 우리가 뒤늦게 만들자는 것인데 의사들이 반대하는 거죠. 그러니 의사가 욕을 먹습니다. 전부가 밥그릇 싸움…. 이것도 외로운 싸움이에요.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요. 금연운동하고 똑같습니다.”

신동호가 만난 사람

암으로 고통 받는 사람이 많잖아요. ‘암, 정복할 수 있다’는 강의로도 유명한데, 지금의 의술로 암을 극복할 수 있습니까.
“저는 십중팔구라고 말합니다. 70%는 예방할 수 있습니다. 간암 사망이 17%인데 B형 간염 백신 접종으로 70%가 예방되고 금연하면 12%가 줄지요. 또 위·대장·유방·자궁암은 조기진단으로 95% 완치되니까 28%가 극복된다는 계산이 나와요. 이제는 내시경으로 떡잎을 잘라낼 수도 있으니까요. 다시 말하면 담배 안 피고, 백신 접종하고, 정기검진만 해도 70%가 극복되는 겁니다. 그리고 나머지 30% 가운데 절반은 열심히 치료하면 고칠 수 있어요. 그러면 85%예요. 이미 십중팔구가 됐습니다. 생명 현상에서 십중팔구는 다 되는 겁니다. 100%는 절대 없으니까요.”

<글·신동호 기획위원>
<사진·김석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