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호가 만난 사람] ‘빈자의 미학’ 추구 20년, 승효상 이로재 대표

“서울시 디자인 행위는 공공영역 역행”

도시가 치장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근사한 건물, 예술적인 구조물, 알록달록한 벽화, 휘황찬란한 조명이 곳곳에 넘쳐난다. 도시를 아름답게 꾸미려는 욕구가 지금처럼 용솟음친 적이 언제 있었을까 싶다. 도시디자인이나 공공디자인이라는 말이 이제는 초등학생도 아는 일상적인 용어가 됐을 정도다.

도시 치장을 위한 노력에 점수를 매긴다면 아무래도 서울이 최고점을 받을 것 같다. 오세훈 시장의 의지가 얼마나 강한지는 옛 서울시 청사 외장막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밤낮 없이 시선을 끄는 각종 첨단 장식은 그냥 지나치더라도 거기에 걸린 ‘세계 디자인 수도’라는 커다란 글귀는 읽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과연 서울을 비롯한 우리 도시들은 새로운 디자인으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는 것일까.

건축 분야에서 철학을 이야기하고 많은 담론을 생산해 낸 사람으로 승효상 이로재(履露齋) 대표를 빼놓을 수 없다. 1990년대 4·3그룹전을 시작으로 한국 건축계에 새로운 철학과 담론을 만들어 낸 건축가다. 1996년 책으로 낸 ‘빈자의 미학’은 독보적인 건축 철학이자 하나의 브랜드가 됐다. 2002년 건축가로서는 처음으로 국립현대미술관이 주관하는 ‘올해의 작가’로 선정됐고, 같은 해 미국건축가협회로부터 명예 펠로 자격을 받기도 했다.

한국 건축계의 거장 김수근 문하에 있은 그는 1989년 자기만의 건축을 하기 위해 건축사무소 이로재를 열었다. 2009년 12월 27일은 이로재가 출범한 지 꼭 20년이 되는 날이었다. 성년이 되기까지 지나온 과정을 되짚어보고 2010년대를 새롭게 출발하는 의미에서 그는 최근 그동안 다져온 도시와 건축에 대한 생각을 담은 <지문(地文)>(열화당)을 출간했다. 그는 이 저서를 통해 또 한 번의 ‘새로운 시작’을 다짐했다.

각 도시가 디자인 개념에 눈을 떠 제2의 건설 르네상스를 맞은 때에 ‘승효상 건축’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그는 개념과 철학이 없는 도시 치장에 끊임없이 비판의 목소리를 내놨다. 도시는 어떻게 디자인해야 하고 건축물은 어떻게 세워야 하는가에 대해 그는 어떤 답을 갖고 있을까.

오세훈 시장이 서울을 ‘세계 디자인 수도’로 만들겠다며 많은 예산을 투입하고, 홍보에도 열심입니다. 승 대표는 여기에 얼마나 참여했나요.
“어…(잠시 뜸을 들인 뒤) 참여 안 했습니다, 허허. 비판만 했습니다. 그리고 대단히 비판적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오 시장이 당선될 때 디자인위원회를 만들자고 제안을 했죠. 도와주려고 한 것인데 나중에 보니까 오 시장의 디자인에 대한 개념이 제가 생각한 디자인과 다른 거예요. 공간위원회를 만들자고 했어야 되는 건데, 제가 용어를 잘못 선택했어요.”

디자인에 대한 개념이 어떻게 달랐다는 겁니까.
“도시의 디자인이라는 건 그게 아니거든요. 도시라는 건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서 이룬 공동체입니다. 익명성이 굉장히 중요하죠. 천륜과 인륜만으로도 통하는 농촌과 달리 도시는 법이 필요하고 법이 공간으로 나타난 게 공공영역이거든요. 도시디자인이라면 바로 이 공공영역의 디자인(승 대표는 요즘 흔히 쓰이는 ‘공공디자인’ 대신 ‘공공영역디자인’이라고 부르기를 고집했다)이 중요한 겁니다. 그러니까 공간을 재배치하고 연결하는 데 있어서 봉건적 도시에서는 공공영역이 한 사람에게 집중돼 나타나고 민주적 도시에서는 모든 사람이 다 점거할 수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거죠. 서울을 그렇게 공공영역을 조직하자는 뜻으로 저는 디자인을 이행하자고 했는데 그것에 대한 이해가 없었습니다.”

좀 더 알기 쉽게 예를 들어 설명해 주십시오.
“그냥 뭐 벽에 칠하고 예쁜 거 뭐 의자 갖다놓고…. 이런 걸 디자인으로 알아요. 이건 립스틱 칠하는 것밖에 안 되지요.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부단히 얘기했는데도 그냥 가시적 성과나 시각적으로 현란하게 나타나는 것에 얽매여 그 뒤에 숨어 있는 의미는 도외시하는 거죠. 대학로에 방송통신대학이 있는데, 벽으로 다 둘러싸여 있어요. 벽도 참 못 생겼어요. 허물어서 사람들이 통행하게 해야 하는데 어느 날 보니 벽화를 쫙 그려 놨더라고요. 앞으로 벽이 영원히 존재할 수 있는 권리를 획득한 것이 됐으니 오히려 공간 조직이 더 악화됐죠. 이 밖에도 공공영역을 역행하는 행위를 서울시가 계속 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광화문에다 도무지 상식 밖의 광장을 만들어….”
서울시의 도시디자인과 관련해 가장 널리 알려지고 또 가장 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 게 광화문광장일 것이다. 비판자 가운데에는 승 대표도 당연히 앞자리에 있다. 광화문광장의 문제점은 거기에 붙은 수많은 별명이 말해 준다. 세계 최대의 중앙분리대, 조립식 가설무대, 무늬만 광장, 시민 광장 아닌 서울시 홍보 광장, 이벤트 광장, 놀이 공원 등등.

광화문광장은 워낙 비판이 많아 서울시가 새해에 세 차례 토론회를 열어 개선 방안을 마련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광장의 운영은 토론을 해서 바꿀 수 있겠죠. 그 위에 설치된 장치물도 철거할 수 있고요. 근본적인 문제는 중앙에 광장을 만들었다는 겁니다. 그건 광장도 아니고, 발상 자체가 굉장히 보수적일 뿐만 아니라 아주 과시적인 바로크 시대적인 거죠.”

승 대표께서는 광화문광장 제안자이기도 하지 않습니까.
“지난 정부 때 안을 만들어 노무현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까지 했어요. 세종로는 일제가 만든 왜곡된 축에 따라 형성된 것인데, 제 안은 원래의 축을 따라 광장을 광화문에서 오른쪽으로 돌려서 세종문화회관 쪽으로 붙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육조거리의 축도 복원되고 광장 자체도 일반 빌딩들과 함께 붙게 돼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공간이 되는 것이었죠. 오 시장에게도 당선자 시절에 직접 찾아가서 브리핑까지 했습니다.”

이른바 중앙광장과 편측광장 가운데 편측광장을 제안한 것이군요.
“그 말은 제가 쓴 게 아닙니다. 나중에 중앙광장과 편측광장 가운데 어느 것이 좋으냐를 시민에게 물어 보겠다고 해서 딱 불길한 생각이 들었어요. 중앙이란 말보다 편측이란 말이 안 좋게 들릴 수밖에 없고, 까닭을 알 길 없는 시민이야 중앙광장을 하자고 할 게 틀림없으니까요. 그래서 제가 그랬죠. 외과의사가 수술하면서 위로 쨀까 아래로 쨀까 물어 보고 하느냐고 말입니다. 결국 중앙광장을 택해 저 모양 저 꼴이 됐죠.”

중앙광장의 문제점은 다른 분도 많이 지적했습니다. 승 대표께서는 어떻게 봅니까.
“접근하기 어렵고, 교통의 섬처럼 됐으며, 항상 소음에 시달리는 거죠. 이런 콤플렉스가 있으니까 그것을 덮기 위해 최소 시설물을 설치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죠. 일부러 사람을 끌지 않으면 아무도 안 가거든요. 비난받으니까 두려워서 자꾸 오라, 오라고 선전하고 아우성치는 것밖에 안 돼요. 시민의 건전한 생활에 아무 도움이 안 됩니다. 광장이라면 어느 광장이든 비어 있어야 하고, 시민들이 그 내용을 채워야 합니다. 저렇게 관제 광장이 돼서는 안 되죠.”

“도시는 완성되는 게 아닙니다. 도시는 태어날 뿐이고 항상 변화하고 진화하는 것이죠. 거기에 기억이 있고, 기억에다 새로운 욕망을 덧대 계속 적층해 나가는 게 도시거든요. 사람들은 도시를 완성하려고 해요. 이런 조급증 때문에 자꾸 도시를 망쳐요.”

세종대왕 동상을 세운 데 대해서도 논란이 많습니다
“규모 판단을 착각한 것이죠. 가뜩이나 좁고 긴데 가운데 육중한 게 들어서서 더 좁아 보이거든요. 그리고 요즘이 어떤 시대인데 그런 엄청난 걸 세워서 사람들을 위압적으로 내려다보게 만듭니까. 요즘 동상은 그렇게 안 만들거든요.”

이순신 장군 동상 등 광장의 주요 상징물이 여러 개가 된 데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상징이야 북악산과 광화문 자체가 굉장하고 중요한 상징물입니다. 여기에 또 다른 상징을 두면 서로 싸우는 거예요. 이순신 장군, 세종대왕, 북악산, 광화문 등 이것들이 서로 으르렁거리며 싸우니까 그 사이에 우리는 더욱 불안하죠. 건설물이나 건조물이나 기념물이나 공간이나 도시를 보는 안목이 아주 낮다는 것을 증명하는 겁니다.”

문제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군요. 이 상태로 두면 계속 말이 많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시설물을 가지고 어떻게 하는 게 아니라 구조 자체를 고쳐야 합니다. 아까 말했듯이 세종문화회관 쪽으로 틀어서 붙여야 하는 거죠. 저는 언젠가 고쳐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구조를 바꾸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텐데요.
“조만간에 광화문이 복원될 것 아닙니까. 그러면 광화문광장이 (손으로 모양을 만들면서) 이렇게 삐딱하게 나타나지 않겠습니까. 이건 불합리하죠. 그러니까 고쳐져야 하고 얼마든지 고쳐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종문화회관 쪽으로 붙이면 교통 문제는 어떻게 됩니까.
“미국대사관이나 교보빌딩 쪽으로 땅이 많거든요. 미 대사관과 문화체육관광부 마당을 차도로 편입시키면 세종문화회관 쪽에 있는 차도를 없앨 수 있어요.”
도시디자인 측면에서 승 대표의 서울시 비판은 매우 날이 서 있다. 서울시는 그의 비판에 아예 귀를 닫고 있는 듯하다. 서울시의 도시디자인 정책 가운데 좋은 점수를 줄 만한 것이 그에게는 하나도 없는 것일까.

오 시장의 서울시정 청사진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북악산과 관악산을 연결하는 녹색 축이라든가 아파트 방벽으로 두른 한강변의 공공성 회복 등은 좋은 비전으로 보이던데요.
“오 시장이 한 얘기가 틀린 건 아니고 말은 다 맞아요. 다만 내용에 대해 그걸 본질적으로 이해하고 말하는 것인지는 하나하나 의심이 든다는 겁니다. 녹색 축 연결하면 좋죠. 한강의 공공성 회복도 명제가 너무 좋아요. 하지만 그게 서울이라는 도시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는 거예요. 녹색 축이나 한강변 주변에 사는 일부가 아니라 모든 시민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더 중요합니다. 중앙공원, 중앙숲과 같은 말은 봉건적 용어예요. 스펙터클한 그림이 아니라 곳곳에 퍼져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렇다면 더욱 근본적인 측면으로 돌아와서 볼 때 서울을 어떻게 디자인해야 합니까.
“서울은 다른 거대 도시와는 아주 다릅니다. 1000만명 이상 사는 도시가 세계에 스무 군데 정도 있는데 서울이 거의 유일하게 산이 있는 곳이지요. 다른 도시는 다 평지에 세워진 도시입니다. 평지에 지은 도시는 특색을 지니려면 랜드마크가 있어야 하죠. 하지만 서울은 산세에 의해 조선의 수도로 정해졌기 때문에 이미 랜드마크가 있는 겁니다. 이런 역사성과 더불어 도시가 확장돼 온 과정을 알게 해 주는 게 서울의 도시정책이자 비전이 돼야 합니다.”

서울시 도시정책 방향은 그렇지 않다는 말입니다.
“지금 서울에서 만든 마스터플랜은 이를 깡그리 무시하고 있어요. 서울을 강남과 강북이 아니라 4대문을 기준으로 구도시와 신도시로 나눠야 합니다. 4대문 안은 비움이 자라는 도시로 설정하고, 고층건물도 억제해야 해요. 이미 있는 것은 수명이 다하면 없애서 고도의 풍경이 보존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반면에 4대문 밖에 100층, 200층 건물이 들어서도 관계가 없는 거죠.”

최근에 피맛골을 재개발하면서 어물전 터도 나왔더군요.
“서울 4대문 안은 전부 다 보물단지입니다. 어느 곳을 파도 그런 유의 유구가 엄청나게 깔려 있을 거니까요. 서울 전체를 문화재 보존지역으로 설정하는 게 저는 맞다고 생각해요. 서양의 도시들은 평지에 지어지니까 선을 정방향으로 좍좍 잘 그어요. 선은 통행만 하는 데고, 선에 사람들이 모여드니까 광장을 만들게 됩니다. 우리나라 도시는 산지에 있으니까 선을 잘 그을 수 없어요. 그러니 영역과 영역을 면으로 점거하면 면과 면 사이에 있는 공간이 길도 되고 공공영역도 되고 골목길도 되는 등 아기자기하게 나타납니다. 이런 부정형 구조의 골목길이 굉장히 재미있는 데거든요. 사람이 다니는 곳일 뿐만 아니라 장사도 하고 운동도 하고 모이기도 하고 놀기도 합니다. 이걸 보존하는 게 서울의 정체성을 보존하는 거죠.”

도시디자인을 말하면서 자주 거론한 ‘동양적 가치’와 일맥상통하는 내용이군요.
“동양만 하더라도 베이징과 도쿄와 서울은 다릅니다. 일본 도쿄는 매축지 위에 건설한 도시여서 직선이 많아요. 중국 베이징도 평원에 건설한 도시고, 세계 중심이라는 자부심 때문에 중심을 꽉 잡고 만든 도시죠. 그런데 서울은 굉장히 아기자기한 풍광이에요. 서울이 망가져 있다고 하지만 지금도 북악산에 올라가서 서울을 남쪽으로 바라보면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가 세계에 없습니다. 서울은 아직도 돌아갈 지점들이 있는 겁니다. 산들이 있고 물들이 있으니까 타고난 지형이 자연 상태대로 있는 거지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원형을 복원하기는 쉽지 않겠지요.
“물론 옛날 시대로 돌아가는 것은 시대착오예요. 조선 시대의 도시를 재현하자는 게 아니라 새로운 건물과 시설을 짓되 도시가 지니고 있었던 원칙과 철학, 원래의 방법을 감안해 하자는 거죠.”
이로재는 도시를 디자인하는 것과 같은 큰 프로젝트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많이 수행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도시를 계획하고 건설하는 전 과정에서 건축가가 개입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승 대표의 건축 철학은 중국, 말레이시아, 중동, 베를린 등 국외에서 더 많이 구현되고 있다. 최근에는 베이징 ‘798 예술지구’에 20만㎡ 규모의 공공영역을 디자인하는 일도 맡았다. ‘798 예술지구’는 중국의 문화지형을 바꾸고 나아가 세계의 문화지형에도 영향을 줄 새로운 문화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다.

신동호가 만난 사람

도시디자인과 공공영역디자인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핵심적인 개념은 무엇입니까.
“도시는 완성되는 게 아닙니다. 도시는 태어날 뿐이고 항상 변화하고 진화하는 것이죠. 거기에 기억이 있고, 기억에다 새로운 욕망을 덧대 계속 적층해 나가는 게 도시거든요. 사람들은 도시를 완성하려고 해요. 이런 조급증 때문에 자꾸 도시를 망쳐요. 도시는 내가 사는 곳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이 살 곳이라고 인정할 필요가 있어요. 채우려고 하지 말고 가능하면 많은 부분을 비워 놓아 물려주려고 노력하는 것이 도시의 가장 중요한 디자인 정책이라고 할 수 있는 거죠.”

<글·신동호 기획위원, 사진·김석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