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책]두려움 없는 미래

미래의 위기를 어떻게 반전시킬 것인가

게세코 폰 뤼프케 지음 | 박승억 박병화 옮김 | 프로네시스 | 2만8000원

월마트 가문은 미국 하층계급 40%의 가계예산과 맞먹는 부를 소유하고 있다. 부의 절대적인 편중이다. 미국만의 일이 아니다. 세계 최고 부자 400명이 소유한 부의 규모는 전 세계 저소득층 총수입의 절반과 맞먹는다. 이런 가운데 매일 1만5000~3만명의 어린이들은 굶어 죽고 있다. 부의 과도한 편중이 낳은 참극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2008년 세계를 강타한 금융 위기는 한 체제의 종언을 알리는 신호였다. 기후변화의 위험은 이미 가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같은 전면적 위기의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정치학과 문화인류학을 공부한 독일 저술가 게세코 폰 뤼프케는 이러한 물음을 안고 전 세계 석학 21명을 만났다. 노벨상 수상자가 포함된 자연과학자, 인문학자, 철학자, 시민운동가인 이들 석학은 “우리가 이제껏 따로따로 생각해 온 위기들이 역사적으로 누적돼 수년 또는 수십 년 이내에는 어떻게 조정할 방법이 없는 어마어마한 위기로 번질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로마클럽 공동설립자인 에르빈 라슬로 교수는 “우리는 극복할 수 있는 위기의 끝에 서 있는 게 아니라 극복할 수 없는 수많은 위기의 초입에 서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그가 지적한 두 가지 위기는 사회적·경제적 양극화와 자연적인 생태순환을 파괴하는 생태학적 문제다. 약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다른 이들의 진단 또한 이와 비슷하다.

그렇다면 남은 건 파국인가. 아니다. 위기는 곧 기회다. 미래는 위기를 어떻게 기회로 반전시키느냐에 달려 있다. 책의 원제가 ‘미래는 위기로부터 열린다’인 이유다. 다만 전제가 있다. 인식의 혁명적 전환이 필요하다. 식량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 온 프란시스 무어 라페는 “모든 것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부족 패러다임’과 “인간의 마음속에 본래부터 선한 본성이 없다”는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양자물리학자 한스페터 뒤르는 근대 물리학의 인식과는 달리 “세계의 토대는 물질이 아니라 정신”이라고 강조한다.

저자가 대담을 통해 끈질기게 찾아내려는 것은 희망의 근거다. 저자는 때때로 회의한다. “우리가 인식을 바꾸는 것만으로 모든 게 잘될 거라는 생각은 지나친 낙관” 아닌가. 이 물음에 라페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일단 우리의 마음과 필요에 따라 행동하는 것입니다. 생존을 위해 활동하자는 말입니다. 무엇이 가능한지 아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이 세상을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창조할 수 있다고 자유롭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대담자들은 서로 다른 전공과 활동 반경을 지닌 사람들이다. 그러나 저자가 선택한 이들 석학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모두 경쟁보다는 협력, 물질보다는 정신, 생각보다는 행동의 힘을 강조한다. 인류가 목도하고 있는 위기 속에는 문제 해결의 씨앗이 움트고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들은 “결코 불가능하다고 말하지 마시오. 그런 불가능을 생각할 시간에 이 세계를 바꿀 씨앗을 뿌리시오”라고 말한다. 행동하는 낙관주의자들인 셈이다.

이주의 책

그러나 정치·경제 권력은 대안의 시발점이 될 수 없다. 권력은 현재 상태를 지키려 할 뿐이다. 저자는 근본적인 혁신운동의 힘은 시민사회에 있다고 본다. 한국식으로 번안하면 각성한 시민들의 실천과 행동에 우리의 미래가 달려 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