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그라운드 넷]H여중 시화전

“힘을 잃어버린 날개/재가 되어 버릴 것만 같은 날들/비상하리란 꿈의 파편들로 맞은/나의 아침엔 반짝임이 없는데…(중략)… 가슴 안에 가득 차오르는 순수함/불꽃은 밝게 타오르고/떠오름이 찬란한 태양이 되고 싶어라.”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른다. 1월 중순 각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여중 시화전’이라는 이름의 이 이미지 파일이 올라왔다. 이 이미지의 ‘시’ 제목은 ‘비상’. 이 학교 3학년 학생이 냈다. 시는 ‘새장을 뚫고 비상하는’ 새 그림과 함께 제시돼 있다. 아는 사람은 바로 알았을 것이다. 그룹 동방신기가 2006년에 발표한 ‘라이징 선’의 가사다.

별다른 설명은 없지만 이미지를 본 누리꾼들은 ‘사태’를 바로 알아차렸다. 동방신기의 노랫말을 베껴 낸 ‘시화’가 당선돼 학교 교지에 실린 것이다. 그러나 색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도 있었다. “선생님이 동방신기 안티”(아이디 찻차최고), “편집 담당 선생님이 어디 한 번 쪽팔려 보라고 올려 본 것일 수도…”(아이디 투플). 교지에 실린 것처럼 보이지만 조작된 이미지라는 의견도 있었다. 한 누리꾼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확장팩이네.”

“어머니는 짜장면이…”는 인터넷에서는 고전 유머다. 한 학생이 시 창작 수업 시간에 그룹 GOD의 ‘어머님께’라는 노래가사를 적어냈는데 ‘교사만 모르고 학생들은 다 아는’ 그 노랫말의 절정 부분(난 당신을 사랑했어요/한번도 말은 못했지만/사랑해요.이젠 편히 쉬어요/ 내가 없는 세상에서 영원토록…)을 낭독하던 선생님이 그만 울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여중 시화전’을 본 누리꾼이 쏟아내는 경험담을 보면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던 모양이다. 안재욱의 노래 ‘친구’ 가사를 그대로 베껴 내 대회 2등을 했다는 누리꾼도 있고, 미국에서 살다 온 아이가 한 메탈 그룹의 노래를 그대로 해석해 시장 또는 구청장상을 받아 상금 40만원을 받았다는 목격담도 있다.

그나저나 저 시화전 이미지는 진짜일까. 부산 동래구에 위치한 H여중에 문의했다. 기자가 연락할 때까지 이 학교 선생님들은 인터넷에서 진행 중인 ‘사태’를 몰랐던 것 같다. 뒤늦게 진상 파악에 들어간 학교 측 설명에 따르면 이 이미지는 이 학교가 발행하는 문집 ‘학소대’에 실렸던 것. 2007년의 일이다.

이 설명이 맞다면 ‘시화전-비상’을 낸 학생은 벌써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다음은 이 학교 문예담당 교사의 말. “자신이 맡은 학년과 반은 제외하고 채점하기 때문에 당시 저런 내용이 당선된 지도 몰랐다. 하지만 내가 채점했더라도 저게 노랫말인지는 몰랐을 것 같다.” 이 학교 교감은 “현재 교장·교감이나 담당 부장교사 모두 2007년 이후에 부임·승진해 자세한 경위는 모른다”면서 “표절을 한 학생도 가사가 너무 좋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베낀 것 아니겠냐”며 학교 측의 피해를 우려했다. 어쨌든 확실하게 규명된 것은 편집을 담당한 교사가 동방신기의 안티이거나 일부러 올린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언더그라운드 넷

사실 세대 차이가 나는 교사들에게 학생들 사이에 인기 있는 아이돌 가수의 노래를 다 따라잡아 알기를 요구하기는 무리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세대를 초월해 알려지기 위하여 분발해야 하는 쪽은 동방신기일까. 그냥 한 번 해 본 소리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