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업무용 스마트폰, 중장년엔 ‘짜증폰’

40·50대 직장인, 조작법 어려워

‘테크노 스트레스 증후군’ 겪기도

최근 인터넷에서 한 대기업 회장의 스마트폰 개봉 동영상이 화제를 모았다. 주인공은 두산그룹의 박용만 회장. 스마트폰뿐만 아니라 트위터 등 최신 IT 제품에 관심이 많아 얼리어댑터로 알려진 박 회장이 구글의 스마트폰인 ‘넥서스원’이 공개되자마자 이를 구입해 제품 개봉기를 손수 찍어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것. 두산그룹은 이미 그룹지주 부문 임직원 150여 명에게 아이폰을 지급한 터였다.

구글의 스마트폰은 아직 국내에 출시되지 않았지만 박 회장은 개인 자격으로 넥서스원을 구입하고 KT를 통해 개통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회장은 또 외국 출장 중 자신의 트위터에서 “넥서스원을 오늘 개통했다. 서울에서 내 귀국을 기다리고 있겠네. 주인이 가려면 멀었는데”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고 한다.

아이폰 강좌 수강 경쟁률 90대1
그러나 ‘손 안의 작은 컴퓨터’라 불리는 스마트폰이 모든 사람에게 환영의 대상은 아니다. 이 그룹의 한 간부는 “회장님이 하니 안 할 수도 없고…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너무 어려워 머리에 잘 들어오지는 않는다”고 난감해 했다. 코오롱그룹도 ‘움직이는 사무실’ 환경을 구축한다는 목적으로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쇼옴니아’와 ‘옴니아팝’ 8000여 대를 전 임직원에게 지급했다.

회사의 인트라넷과 스마트폰을 연동시켜 실시간 서류 결재 및 연상회의, 자료 송수신에 활용할 방침이라는 것. 이 회사의 한 간부도 “회사 내에서 젊은 친구들이 너도나도 스마트폰을 이야기할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는다. 자꾸 뒤처지는 것 같기도 하고. 생각보다 쓰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스마트폰이 확산되면서 첨단정보기기(IT)에 익숙지 않은 대기업의 40~50대 중견간부들이 이른바 ‘스마트폰 스트레스’ 에 시달리고 있다. 스마트폰이 지난해 말 국내에 첫 출시된 이후 스마트폰 열풍이 일면서 기업들이 앞다투어 직원들에게 스마트폰을 지급하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급을 받는 직원 입장에서는 이것은 또 다른 스트레스 요인으로 다가오고 있다.

어렵게 배워서 익숙해질 만하면 새로운 버전, 새 제품으로 업그레이드된 것으로 바뀌어 다시 처음부터 손에 익혀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까다로운 스마트폰 사용법 때문에 일부에서는 스마트폰 공포증까지 호소할 정도로 극심한 스마트폰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현상까지 생겨나고 있다. 실제로 IT 신기술에 적응하지 못해 스트레스를 느끼는 일명 ‘테크노 스트레스 증후군’을 겪는 직장인이 상당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취업 포털 잡코리아가 최근 857명을 대상으로 ‘테크노 스트레스 증후군 체감 유무’에 관해 조사한 결과 남녀 직장인 65.8%(564명)가 현재 테크노 스트레스로 인한 증후군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의 스마트폰 관련 서적코너에서 직원이 책을 정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현상이 아니다. 영국의 한 휴대전화 관련 시장조사업체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영국인의 약 43%가 ‘스마트폰 때문에 스트레스가 심해졌다’는 설문조사가 나왔다. 스마트폰 사용자의 5명 가운데 1명은 업무 외 시간에 비즈니스 관련 이메일에 답장하는 것이 스트레스이며, 35%는 고객사로부터 온 이메일을 읽고 저녁시간을 망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스마트폰을 지급받은 코오롱그룹의 김 모 과장(36)은 “비교적 젊은 세대인 과장급까지는 스마트폰에 대한 부담감이 그리 크지 않지만 50대로 접어든 중견간부나 임원급이 스마트폰을 얼마나 활용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면서 “스마트폰 사용하기가 너무 어려워 사용법에 대한 교육을 따로 받는 직원도 많다”고 말했다.

활용도 떨어지고 퇴근 후 업무 부담
상황이 이렇다 보니 최근 통신사와 제조사 등은 스마트폰 사용법 강좌를 마련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애니콜 옴니아 아카데미를 통해 옴니아 사용법 및 GPS, 트위터 등의 이용법을 사용자들에게 알려 주고 있다. KT는 최근 두 차례에 걸쳐 개최한 아이폰 사용법 강좌에서 회당 30명 모집에 신청자가 2700여 명이나 몰리는 등 홍역을 치렀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스마트폰이 너무 많은 기능과 콘텐츠를 담고 있어 대중화를 위해서는 좀 더 사용하기 쉽게 만들 필요가 있다”면서 “40대 후반에 접어들면 사용법을 배워도 활용이 힘든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최근 급격한 증가세를 보이는 스마트폰 관련 서적 판매량도 ‘스마트폰 스트레스’의 한 단면을 반영하고 있다. 인터넷도서판매업체인 인터파크도서에 따르면 아이폰 출시일인 지난해 11월 28일을 전후로 스마트폰 관련 서적의 판매 추이는 출시 전인 11월 초반에 비해 출시 이후인 12월 첫째∼둘째주에 최고 21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워낙 스마트폰 열풍이 크다 보니 시대에 뒤처진다는 말을 들을까 봐 대놓고 말은 못하지만 스마트폰 도입에 따른 역효과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이도 적지 않다. 스마트폰이 도입되면서 업무 강도가 더 강화됐다는 불만이 그것. 한 생보사에서 고객관리 업무를 담당하는 이 모씨(41)는 “스마트폰을 지급받고 나서 장소와 상관없이 업무를 해야 하는 부담감이 생겨 퇴근 개념이 없어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불평을 털어놨다. 평소 ‘기계치’에 가깝다는 말을 많이 듣는 직장인 양강진씨(41)에게는 최근 회사 업무상 지급받은 애플의 아이폰이 공포 그 자체이다. 200쪽에 이르는 사용설명서는 던져버린지 이미 오래다. 기능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 지를 몰라 고심하다 지인들과 직원들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면 ‘이것도 모르느냐’는 싸늘한 시선이 느껴져 속앓이만 하고 있다. 이씨가 할 수 있는 것은 기존의 휴대전화로도 가능했던 통화와 동영상 감상이 전부. 이씨는 “이 기능을 다 익히고 익숙해지려면 몇 달은 걸릴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제약업체 영업사원인 박승진씨(43)도 스마트폰이 ‘스트레스폰’이 된 부적응자 가운데 한 명이다. 외근 중에도 수시로 휴대전화로 이메일을 확인하고 상사에게 보고하다 보면 마음이 조급해진다. 그는 “처음엔 편하다고 생각했지만 족쇄가 따로 없다”며 웃었다.

사회

스마트폰은 이미 대세다. 최근 SK텔레콤과 KT는 올해 각각 200만대, 180만대의 스마트폰을 공급하겠다고 밝혀 올해 국내시장에서만 400만명이 넘는 스마트폰 사용자가 등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만큼 ‘스마트폰 스트레스’ 사례는 더욱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김태열 기자 yol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