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그라운드 넷]1번의 매직

“제가 그동안 쓰던 글씨체가 북한체였군요. -_-;;; 자수라도 해야 하나.”
‘1번’ 글씨 사진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지난 5월 20일 열린 천안함 사건 민·군합동조사단 기자회견은 여러모로 관심을 끌었다. 그동안 합조단 관계자들은 이날 “북한의 소행임이 확실히 드러나는 움직일 수 없는 물증”을 공개한다고 누차 밝혀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날 공개된 그 ‘결정적인 증거’는 어뢰의 추진체 프로펠러 안쪽에 파란색으로 적힌 ‘1번’이라는 글씨였다. 합조단 측은 이게 북한 고유의 글씨체라고 밝혔다.

‘1번’글씨 패러디는 계속 진화한다. 4월 21일 한 누리꾼이 내놓은 ‘맑은어뢰체’ 패러디.

그러나 이 ‘결정적인 증거’에 대한 누리꾼의 반응은 시원찮다. 기자회견 직후 누리꾼은 ‘북한고유체.ttf’라는 제목으로 이 ‘1번’ 사진을 돌려봤다. ttf는 트루프 타입 폰트의 약자로 컴퓨터 한글서체다. ‘한양북한체.ttf’라는 의견도 나왔다. 하필이면 이 손 글씨가 역시 컴퓨터 서체인 한양체와 비슷한 모양이다.

누리꾼은 이 사진에 ‘1번의 매직’이라는 이름도 붙였다. ‘매직’은 중의적이다. 사진 상으로만 볼 때 1번이라는 글씨는 필기도구 매직으로 쓴 것처럼 보인다. 매직은 또 사전적으로 ‘마법’을 의미하기도 한다. 5월 20일 오후 인터넷문답 코너에 과거에 게시된 ‘유성매직 지우는 법’이라는 생활상식 글이 화제를 모았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솜이나 스펀지 또는 헝겊에 알코올을 묻혀서 닦아내 보세요. 2.(1의 방법이 안될 때) 소금을 적당히 놓고 젖은 걸레를 헝겊으로 닦아 보세요. 3. 콜드크림이나 버터를 헝겊에 묻혀 닦아 보세요.” 한 누리꾼은 ‘어머 2번 방법이 눈에 띄네요’라며 딴청을 피웠다. 즉 바닷물 같은 소금물에 매직 글씨는 지워진다는 설명이다. 다른 누리꾼은 “북한의 모든 테크놀로지가 집약된 매직입니다. 태워도 글씨체만 남는다는 전설도 있습니다”라고 반응했다. 누리꾼의 불신은 ‘북한제 아이폰’이라는 사진으로 집약됐다. 사진을 보면 아이폰 뒷면에 파란색 마커로 1번이라고 적어 놓은 것이다. 다시 말해 ‘1번이라는 말만 있으면 북한산으로 둔갑하냐’는 반론이다. 누리꾼은 1번 글씨의 색깔인 파란색에도 주목했다. 우연히도 이번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의 기호는 1번이며, 당 상징색은 파란색이다. 역시 선거용이 아니냐는 의심이다. 이를 반영한 ‘맑은어뢰체’라는 패러디도 나왔다.

물론 합조단이 내놓은 증거는 ‘1번’ 글씨만이 아니다. 그러나 공식 기자회견 전부터 각종 언론을 통해 ‘북한 고유 글씨체’ 등의 바람을 잔뜩 불어놨기 때문에 누리꾼의 불신을 자초한 측면도 있다. 합조단 측은 어떻게 생각할까. 합조단 관계자는 “글씨가 매직으로 썼는지, 다른 어떤 것으로 쓴 것인지 아직 밝혀진 것은 없다”고 말했다. 글씨를 무엇으로 썼는지는 아직 성분 분석이 안됐다는 것이다. 누리꾼의 ‘1번 매직’ 주장에 대해 “증거물이 확실하니까 음모론 쪽 동조 세력 내지는 추종 세력이 인터넷에서 장난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천안함에서 발견된 흰색 알루미늄 산화물이 어뢰의 프로펠러에 똑같이 달라붙어 있는 등 결정적 증거는 그 외에도 많다”고 덧붙였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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