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그라운드 넷]왕의 오솔길

Gabirulo/Flickr

여름이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른다. 오늘 소개할 장소는 탐험 영상만 봐도 오싹하고 아찔한 느낌을 주는 곳이다. 그렇다고 무슨 귀신 들린 집 같은 건 아니다.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에 있는 유명한 ‘길’이다. 이름하여 ‘왕의 오솔길(Caminito del Rey)’. 인터넷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는 한 ‘용자(勇者)’의 동영상을 보자. 발 길 아래는 천길 낭떠러지다. 까마득한 아래에 유유히 흐르는 강이 보인다. 문제는 길이다. 콘크리트는 곳곳에 구멍이 나 있으며, 난간은 떨어져 나간지 오래다. 게다가 곳곳에 길은 끊겨 있다. 길을 만들 때 박아 놓은 철골만 남아 있을 뿐이다. 이곳을 찍은 용자는 그 철골을 밟고 조심스럽게 건너간다. 길은 끝없이 이어져 있다. 그래도 어떤 곳은 정상적으로 계단도 있지만 비디오의 주인공은 일부러 위험한 길을 찾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왕의 오솔길’이 처음 소개된 것은 2008년께.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 한 누리꾼이 ‘세계에서 가장 무서운 도보여행길’이라는 제목으로 찍은 영상을 올렸다. ‘왕의 오솔길’이 등장하기 전에 이 분야의 ‘본좌’는 중국 화산의 ‘장공잔도(長空棧道)’였다. 절벽에 쇠사슬이 박혀 있고 나무로 된 발판이 위태하게 걸려 있는 사진이 ‘대륙의 등산’ 등의 이름을 달고 꽤 유명세를 얻었다.

‘왕의 오솔길’은 진짜 아무런 대책이 없다. 지금까지 이곳에 도전했다가 세상을 떠난 사람은 집계된 경우만 해도 20명이 넘는다. 올해 6월께 또 다른 ‘용자’가 도전해 2010년판 왕의 오솔길 도전 비디오를 만들어 인터넷에 올렸다.

비디오를 본 누리꾼은 이런 반응이다. “어딜 봐서 저게 오솔길이라는 말이냐.” “왕이 ‘몸도 찌뿌듯한데 산책이나 한번 갈까~’하면 시중들은 오금이 저리겠군요.”

이 길이 만들어진 것은 1901년. 위키피디아의 설명에 따르면 초로 폭포와 가이타네조 폭포 사이에 만들어진 수력발전소를 짓던 노동자들이 자재를 나르고 상태를 점검하기 위한 용도로 만든 길이다. 길의 건설엔 4년이 걸렸다. ‘왕의 오솔길’이라는 이름이 붙은 건 1921년 당시 스페인 국왕 알폰소 13세가 댐의 축조를 축하하기 위해 이 길을 걷고 난 뒤다. 문제는 그 후 이 길이 방치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위험한 여행’을 즐기는 마니아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고 실제 사망자도 나오자 이곳 지방정부는 길 입구를 폐쇄했다.

한국사람 가운데 이곳을 다녀왔다는 인증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외국 누리꾼, 특히 유럽 누리꾼들은 이곳에 다녀온 ‘인증샷’을 인터넷에 많이 올려놓았다. 비디오 속 용자는 별다른 보조 등산용구를 사용하지 않지만 누리꾼들이 올린 인증샷을 보면 자일이라든가 피크 등 등산용구의 도움을 받아 이 길을 탐험한다. 한국 누리꾼들의 공감을 얻은 소감 가운데 조금 특이한 반향도 있다. “우리나라 왕도 다녀왔으면….” 뭐 불행한 사고(?)를 바란 댓글은 아닐 것으로 믿는다.

언더그라운드 넷

한편 지난해 2월 스페인의 영자신문 ‘유로위클리’는 이곳의 지방정부가 환경부, 문화부, 관광국, 대학들의 협조를 얻어 길을 복원할 계획을 밝혔다고 보도했다. 문제는 660만 유로로 예정된 비용. 그 후 아직까지 복원 작업에 착수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