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 스크린]납치당한 소녀를 찾아나선 ‘옆집 아저씨’

오퍼스 픽처스

마약쟁이 클럽댄서 엄마를 둔 어린 소녀가 하나 있다. 이름은 소미(김새론 분). 부모의 기본적인 관심조차 받지 못한 탓에 학우들에게는 왕따 당하고 동네 어른들에게는 천덕꾸러기로 눈총을 받지만 덕분에 속은 너무 일찍 여물어 버렸다. 아이에게 벗이라고 할 만한 이는 전당포를 운영하는 이웃집 아저씨 태식(원빈 분). 그나마 벗이라 할 만한 유일한 사람이지만 그도 그리 녹록한 사람은 아니다. 늘 쌀쌀맞고 어느 날인가는 곤경에 처해 도움을 청하는 모습을 보고도 모른 척 그냥 지나쳐 버린다. 아이는 또 한 번 깊은 상처를 받았지만 괜찮다. 아저씨마저 미워한다면 이 세상에 좋아하는 사람은 ‘한 개’도 없게 되니까.

전당포에 틀어박혀 사는 그 남자 태식은 말 그대로 하루하루를 그냥 마지못해 연명할 뿐이다. 그의 과거에 대해 아는 사람은 없지만 동네에서 왠지 음울하고 칙칙한 그를 모르는 사람도 없다. 옆집 소녀도 그가 감옥이 잘 어울릴 것 같다고 당돌하게 말한다. 하지만 그녀는 유일하게 그의 존재를 인정해주고 따르는 존재다. 내색하진 않고 있지만 언제부턴가 너무 소중한 존재가 되어버린 아이. 그런데 그 아이가 납치당해 사라졌다. 그것도 너무나 사악하고 깊은 어둠 속으로. 남자는 아이를 찾아야 한다는 신념 하나로 오랫동안 등졌던 악한 세상으로 뛰어들어 달리기 시작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모처럼 만에 한국영화에서 고무적 성과가 나왔다. <아저씨>는 <추격자> 이후 가장 강렬한 스릴러이며, 모처럼 만나는 한국적 정서 가득한 드라마이자, 신선하고 색다른 액션영화다.

조금은 시큼하고 묵직하게 배가 나온, 말 그대로 흔히 마주칠 수 있는 한 아저씨가 납치된 옆집 소녀를 구하기 위해 나선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이런 단순한 아이디어가 작품의 시작이 되었다고 감독은 술회한다. 뜻밖에도 꽃미남 동안 배우의 대명사 ‘원빈’이 작품에 적극적으로 흥미를 드러내고 캐스팅까지 확정되면서 작품의 모양새는 꽤나 달라졌다. 하지만 산뜻하고 군더더기 없는 액션으로 밀어붙인다는 처음의 색깔은 변함없이 중요한 요소로서 더욱 보강되었다. 신랄한 문제의식을 저변에 깔아둔 멜로적 감성과 드라마 면에서도 흡족할 만한 결과물로 탄생됐지만, 태생부터 이 영화가 ‘액션’에 분명한 방점을 찍고 있다는 점은 작품을 더욱 면밀하고 풍성하게 즐길 수 있는 중요한 키워드다.

적잖게 차분한 분위기로 시작한 영화는 처음의 진중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점진적으로 사건, 인물, 액션의 균형 있는 심화를 통해 마지막까지 눈을 뗄 수 없는 두 시간을 제공한다. 마지막 장면의 다소 과잉된 감정선을 제외하면 모처럼 나무랄 데 없는 볼거리와 이야기의 전개는 흔치않은 재미와 카타르시스를 경험케 한다.

연출을 맡은 이정범 감독은 스스로 인간 사이의 관계와 소통에 끊임없는 관심과 애정을 지닌 감독임을 거듭 표명해온 인물이다. 역시 독특한 멜로 액션영화였던 장편 데뷔작 <열혈남아>로 섬세한 연출 감각을 인정받았던 그는 <아저씨>를 통해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해냄은 물론 소위 한국형 느와르의 옅은 명맥을 다시 한번 이어가고 있다.

잘 만들어진 작품은 뛰어난 연출을 기본으로 하고, 뛰어난 연출은 당연히 배우들의 연기까지도 극대화한다. 이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이미지로의 변신에 성공한 ‘원빈’은 영화를 이끄는 유일한 스타로서 짊어져야만 했던 부담을 충분히 만회해냈다. 감독은 연기력은 뛰어나지만 대중들에게 별로 알려지지 않은 배우들로 리얼리티를 보완하려 했는데 의도는 적중했다. 대부분의 캐릭터들이 비중을 떠나 인상적으로 각인되는데, 관객들은 각각의 인물들을 매력적으로 소화해낸 배우들에게 호감과 궁금증을 갖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영화 후반, 정체를 추궁하는 악당들에게 태식은 냉소적으로 내뱉는다. “옆집 아저씨”. 참으로 성의 없는 대답이다. 슬쩍 관객들의 웃음까지 유발하는 썰렁한 대사다. 하지만 이는 곧바로 관객을 향한 질문으로 치환되어 묘한 여운을 남긴다. 내일을 살기 위해 오늘의 도덕과 인륜마저 거침없이 저버리는 작금의 시대에 새삼 이 짧고 흔한 호칭이 상실한 정체성의 본질과 무게 감이란 결코 만만한 것도, 우스운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제목: 아저씨 (The Man From Nowhere)

제작연도: 2010년

러닝타임: 119분

장르: 드라마, 액션, 스릴러

감독: 이정범

출연: 원빈, 김새론, 김태훈, 김효서, 황민호

개봉: 2010년 8월 4일

터치 스크린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최원균<무비가이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