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 스크린]원조아이돌의 생존분투기

쇼박스(주) 미디어플렉스

제목: 원더풀 라디오

감독: 권칠인

출연: 이민정, 이정진. 이광수, 정유미

제공: 쇼박스(주) 미디어플렉스

제작: (주) 영화사 아이버젼

관람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120분

개봉: 2012년 1월 5일

‘생계형 아이돌’은 그룹 카라가 지금처럼 뜨기 전에 내세우던 콘셉트였다. 하지만 또다른 아이돌의 사연도 우리는 안다. 미스 에이의 수지네 부모님이 운영하던 떡볶이 가게 같은 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노래하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고, 마침내 극적인 성공을 한다”는 서사는 슈퍼스타K와 같은 서바이벌 예능에서만 통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사당동 이발소 집 딸’ 이효리는 또 어떤가.

<원더풀 라디오>의 주인공도 생계형 아이돌이다. 정확히 말하면 ‘원조 아이돌’이다. 원조 아이돌 그룹 ‘퍼플’의 리더였던 신진아(이민정 분)의 현재 일거리는 매일 생방송으로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DJ다. 나름대로 꽤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고 자부했건만 청취율은 2%대에 머문다. 방송작가가 출산휴가를 간 틈에 라디오국장은 유능한 PD 이재혁(이정진 분)을 투입해 프로그램 분위기를 일신하려고 한다.

원래 가수 이승환과 호흡을 맞추던 이재혁에겐 아이돌이란 외모만 믿고 금붕어처럼 입만 벙긋벙긋하는 비주얼 가수들이다. ‘진정한 음악’이란 이제는 타계한 김광석이나 김현식 같은 이들이 추구하던 것이다. 비가 내리던 어느날 오후, 이 PD는 ‘비처럼 음악처럼’을 턴테이블에 거는데 신진아는 두 선배가수를 헷갈린다. 요컨대 신진아의 머릿속에는 이 PD와 다른 카테고리로 저 가수들이 분류되어 있는 것이다.

이 PD는 새로운 프로그램 기획서를 내라고 한다. 여기에 악덕 대형기획사 사장의 로비를 받은 국장은 여차하면 신진아의 하차도 간보고 있다. 그런데 신진아가 들고 온 새로운 기획. ‘당신에게 들려주는 노래’가 성공한다. 청취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아픈 사연들을 담아냈기 때문이다. 신진아도 앞에 거론한 이효리처럼 ‘알고 보면 사연 많은’ 아이돌이었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이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신진아를 쫓아내려는 ‘공작’은 마침내 성공한다. 통기타를 메고 ‘가수 신진아’로 돌아가려고 하지만 세상사람들의 눈은 차갑기만 하다.

영화는 아주 익숙한 내러티브다. 우리의 ‘착한’ 여주인공을 괴롭히는 악당 혹은 거대권력(여기서는 잘나가는 대형기획사다)의 음모는 성공한다. 하지만 여주인공의 진실을 알게 된 파트너 이 PD는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걸고 뛰어들며, 여주인공을 미워했던 과거의 동료는 그게 ‘오해’ 때문이었다는 걸 알고 용서한다. 흰눈이 내리는 가운데 두 주인공이 뜨겁게 키스를 나누면서 해피엔딩.

영화에는 수많은 카메오가 등장한다. 컬투. 장항준 감독, 그룹 부활의 김태원. 가수 이승환과 정엽. 터보의 김종국. 개리…. 견적이 나온다. 다름 아닌 ‘두시 탈출 컬투쇼’ PD 이재익의 인맥이다. 라디오방송 컬투쇼의 방송사인 SBS 건물은 아예 이 영화의 배경무대다.

지금도 1년에 한두권씩 활발히 소설 창작활동을 하고 있는 이재익 PD는 이 영화의 각본을 맡았다. 그래서인지 영화는 ‘방송가의 리얼 스토리를 담았다’는 걸 미덕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런데 이게 ‘리얼 스토리’인지는 잘 모르겠다. 일본 쟈니스의 경우, “소속사 탤런트가 빠지면 전체 방송사 예능프로그램이 안 돌아간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도 연예인 소속사의 위력이 과거에 비해 커진 건 사실이다. 하지만 감히(!) 방송사 생방송을 중단시키려는 시도를 할 만큼 간 큰 기획사 사장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니까 문제는 영화의 전체적 시각이 주인공이자 (각본가인) 이 PD 중심으로 짜여 있다는 것이다.

터치 스크린

그리고 이 시각은 상당히 유아적이다. 캐릭터의 깊이가 없다. 사전에 청취자 사연의 내용 점검을 철저히 하던 신진아가 자신의 운명을 가를 팀을 등장시킬 때는 전혀 점검하지 않은 이유를 알 수 없다. 그녀를 증오하던 미라가 오해를 푸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신진아를 맡은 이민정과 이재혁 역의 이정진의 연기가 영화의 부족한 부분을 메운다. 배우 이민정이 직접 부른 노래들도 꽤 들을 만하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