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한국의 대중문화인, 할 말은 많아도 꾹 참는다

4·11 총선이 끝나고 한 시사잡지의 초청으로 서울대 조국 교수와 대담을 한 적이 있다. 그때 조국 교수는 “앞으로도 보수가 우위에 설 것”이라고 했는데, 필자는 “앞으로는 진보가 우위에 설 것”이라고 했다. 여기에 착안해서 잡지는 ‘이상돈과 조국, 서로를 부러워하다’라는 부제를 달았다. 필자가 진보 우위를 예측하는 근거 중의 하나는 대중문화에서의 진보의 압도적 우세 때문이다.

<소셜테이너>
장윤선 지음·오마이북·1만5000원

대중문화에 진보니 보수니 하는 게 있느냐고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중문화 스타들이 인권, 환경, 노동권, 동물권 같은 이슈에 앞장서면 자연히 진보의 외연을 넓히게 된다. 인권, 환경, 동물권 같은 가치는 본질적으로 진보적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보수가 생존을 하기 위해서는 인권, 환경 같은 어젠다에 보다 적극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오마이 뉴스의 장윤선 기자가 펴낸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 ‘소셜테이너’라고 부르는 19인을 인터뷰한 것이다. 저자가 인터뷰한 소셜테이너는 김미화, 권해효, 김여진, 김장훈, 박혜경, 윤도현, 이상은, 이은미, 임순례, 탁현민씨 등 19인이다.

‘소셜테이너’라는 낯선 용어가 우리에게 친숙해지게 된 계기는 배우 김여진씨가 한진중공업 타워크레인에서 고공시위 중인 김진숙씨를 만나기 위해 희망버스 원정을 주도하고 난 후이다. 김여진씨야말로 ‘파워 소셜테이너’라고 할 만한데, 그를 위시한 몇몇 소셜테이너들의 방송 출연이 중단되어 물의를 빚었다. 특히 김미화씨가 MBC 라디오 프로그램을 떠나야 했던 일은 큰 사건이었다. 김여진씨를 인터뷰한 부분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김여진씨는 대학을 다닐 때 극좌라고 할 만한 민중연대학생회 소속이었다고 한다. 민중을 해방시키겠다는 생각으로 철거촌 등을 다녔지만 행복하지 않아서 그만두었다고 한다. 그리고는 여성, 인권, 환경운동을 했고 지금은 4대강 사업 반대와 북한 어린이 돕기 운동을 하고 있다.

저자는 소셜테이너라고 할 만한 문화예술인을 찾아서 인터뷰를 신청했는데, 의외로 인터뷰를 사양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저자는 동물보호운동을 하는 임순례 감독을 만난 후에 비로소 그 이유를 알게 됐다고 한다. “대중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사는 문화예술인들이 간혹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표출했다가 도리어 역풍을 맞는 경우가 많아서 선뜻 나서기 힘들어하는 것”이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한계에 이르렀을 때에야 고작 한두 마디 꺼낼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것도 엄청난 용기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무엇이든 문제적 발언을 하는 순간 문제적 인물로 취급받는” 것이 현실이라는 분석이다. 개고기 반대운동 등 동물보호운동을 벌이면서 임순례 감독은 그런 경험을 많이 했다고 말한다. 한국 사람들은 연예인의 사회적 책임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도 이들이 자신의 기대를 벗어나면 무조건 비판부터 하는 습성이 있다는 것이다. “개고기를 먹지 말자”고 하면, “소는 왜 먹느냐?”고 비아냥거리면서 인신공격을 퍼붓는다는 말이다. 이런 풍조가 만연해 있으면 논쟁적인 사회 이슈에 대해 말을 하기가 어렵다. 우리나라에서 대중문화인이 사회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기가 쉽지 않은 이유가 이런 데 있는 것이다.

북리뷰

필자가 고등학교에 다니던 1960년대 말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 깊숙하게 개입하고 있었고, 미국 전역에선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시위가 뜨거웠다. 그 시절 필자 세대는 미국 팝송을 즐겨 들었는데, 그 중에는 피트 시거, 조안 바이에즈 같은 반전(反戰)가수들이 부르던 노래도 있었다. ‘그 많던 꽃들은 어디로 갔을까?’ 같은 노래를 부른 이들이야말로 필자 세대가 겪었던 최초의 소셜테이너였던 셈이다.

이상돈 <중앙대 교수·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