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이야기]희망을 차곡차곡 모은 ‘저축왕’ 김순자씨

지난 10월 30일 제49회 저축의 날에 최고 영예에 해당하는 국민훈장목련장을 받은 김순자씨(59) 부부는 4개의 통장을 갖고 있다. 정기예금과 보통예금 통장 각각 1개씩이다. 저축 꼴찌상을 수상한다면 유력 후보가 될 것 같은 필자가 갖고 있는 통장도 10개는 족히 될 듯한데, 어떻게 이런 일이? 궁금해서 알아보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비밀은 우체국금융에 있었다.

김씨 부부는 장애인이다. 김씨는 5급 지체장애인이고, 남편 정철우씨(64)는 1급 시각장애인이다. 정씨는 6·25전쟁 때 고아가 되어 영양실조로 실명했다. 돈이 없어 중학교를 끝으로 학업을 중단했다. 걸인처럼 전국을 떠돌던 중 경북 문경의 한 유지가 방을 하나 내줘 맹아학교에서 배운 안마와 침으로 생계를 이었다. 거기서 양장점에서 일하던 부인을 만났다.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다리가 불편한 김순자씨였다.

우체국 창구를 찾은 김순자씨(오른쪽). 김씨는 지난 10월 30일 저축의 날에 국민훈장목련장을 받았다.

이 대목에 이르러 궁금한 게 또 생겼다. 문경에서 사글세로 시작한 장애인 부부가 대전의 상가건물을 소유할 만큼 안정된 생활기반을 갖춘 데다 ‘저축왕’까지 된 사연이다. 정·김씨 부부는 1975년 처음 통장을 개설한 이래 지금껏 근검절약하는 저축생활을 해왔다고 한다. 이것만으로도 훌륭하지만 중요한 사연은 그 다음이다. 이들은 자기만을 위한 저축을 하지 않았다. 장애인을 위해 2만5000원짜리 저축통장을 개설해 일일이 찾아가 나눠주고 저축을 권장했다. 김씨의 통장은 좀처럼 가난을 벗어나기 어려운 극빈 장애인에게 삶의 기반이자 희망이 되었다. 그런가 하면 남편이 원장으로 있는 한강안마원의 손님으로부터 유행이 지나 입지 않는 옷을 기증받아 장애인의 몸에 맞게 고쳐 4200여명에게 나누어주었다. 해마다 어버이날에 몸 불편한 노인에게 실버카(보행보조기)를 기부하고, 장애인을 위한 장학금과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정기적으로 쌀·라면·연탄 등을 전달하고 있기도 하다.

정·김씨 부부가 문경에서 대전으로 터를 옮긴 사연도 색다르다. 제때 학업을 이루지 못한 김씨는 공부가 소원이었다. 한을 풀기 위해 대전으로 이사한 김씨는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학업을 마쳤다. 그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공부한 내용을 녹음해 남편 정씨가 대입 검정고시를 통과하도록 도왔고, 정씨가 광주에 있는 송원대학교 자연요법과를 졸업할 때까지 차를 운전해 통학시켰다. 정씨는 대전대 보건학 명예박사로서 현재 보건대 객원교수이기도 하다. 사회복지, 보건 분야의 공로로 그 역시 국민훈장석류장과 목련장을 받았다. 어려운 사람 2만여명과 국가대표 체육선수에게 안마와 침 등 무료시술을 베풀었고, 특히 마라토너 이봉주씨의 재활치료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들 부부가 안정되고 뜻있는 삶을 성취한 밑바탕에는 우체국통장이 있었다. 보통예금 통장에 일정액이 쌓이면 정기예금 통장에 넣는 단순한 방식으로 차곡차곡 돈을 모았을 뿐 기상천외한 재테크를 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 이들에게 우체국은 최고의 금융기관이었다. “우체국은 모든 면에서 공정하고 차별이 없으며 공신력이 있다”는 게 정씨 말이다. 우체국금융은 예금보호한도가 없기 때문에 여러 개의 통장을 만들 필요도 없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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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우리에게 저축은 옛날이야기처럼 돼버렸다. ‘재테크’라는 신조어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이번 저축의 날을 빛낸 김씨는 우리가 그동안 잊고 있던 저축의 의미를 섬광처럼 눈이 아리게 일깨워주었다. 김씨 부부가 저축한 것은 돈만이 아니라 ‘희망’이었던 것이다.

<신동호 경향신문 논설위원 hud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