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칼럼]인터넷, 초국가 민주주의를 이끄는가?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는 도시국가를 기본 단위로 했다. 근대화 이후 정치체제의 기본 단위가 영토 내 최고 권위를 갖는 주권국가로 발전함에 따라 민주주의 역시 이 체제 변화에 따라 새롭게 발전했다. 미국 선거와 그리고 12월 19일이면 우리가 참여할 대통령 선거 역시 이렇게 주권국가를 기본으로 하여 나타난 민주주의의 제도적 변화 중 하나다.

지난 1월 18일 ‘온라인 해적 방지 법안(SOPA)’에 맞서 위키피디아는 하룻동안 사이트를 내리고 SOPA를 반대하는 이유를 게시했다. | wikipedia.org 캡처

그렇다면 21세기에는 어떨까? 인터넷을 비롯한 정보통신기술의 혁신에 따라서 정치와 경제의 무대도 국제로 확장되고 있다. 국경을 넘는 정보·재화·서비스가 증가했으며, 그와 같은 초국가적 흐름을 규제하는 국내·국제적 기구들도 따라서 증대했다. 또한 이에 관련해 종사하고 활동하는 인적 네트워크의 상호 의존도도 높아졌다. 따라서 초국가적인 경제와 정치가 일상화되고 있으니 민주주의 역시 도시국가에서, 주권국가로, 이제는 초국가적인 규모를 기본 단위로 발전할 것으로 가정해볼 만하다.

그러나 아직 고민해야 할 영역이 남아 있다. 예를 들어, 초국가적인 활동과 관계를 기반으로 초국가적인 민주주의의 도래를 예측하려면, 사회가 어떤 성격을 갖고 있을 때 ‘민주주의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다양한 방식이 있을 수 있겠으나, 민주주의가 기본적으로 다수 지배이며, 기득권에 대한 다수의 견제와 양자 간의 합의에 기초한다고 일단 정의해보자. 이는 민주주의의 통치체제적 성격에 대한 정치·경제적 분석으로 다소 건조하긴 하지만, 지금의 제한된 분석을 위해서는 유용하다. 이와 같은 정의에 따라서 보면, 초국가적인 민주주의란 세계화의 흐름에 따라 기득권을 얻는 세력에 대한 국경을 초월한 다수의 견제가 가능할 때 성립된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렇게 보면 적어도 현 시점에서 초국가 단위의 정보·재화·서비스에 대한 견제는 시민사회를 통한 직접적인 참여보다는 국가를 통한 간접적인 규제로 나타나는 경향이 훨씬 강한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필자가 간여하는 인터넷 분야에서 지적재산권에 관련된 내용은 세계무역기구(WTO)의 지적재산권협정(TRIPS)을 통해 처리되는데, 그동안 선진국 위주로 진행되다 도하 개발 어젠다 출범 이후 개도국의 입장을 일부 반영하게 되었고, 여기에 국가 이외 행위자의 참여는 상대적으로 제한되어 있다.

물론, 표준 기술 설정에 관련된 부분은 상대적으로 민간이 주도했던 것이 사실이다. 인터넷 소사이어티(ISOC)의 네트워크 관련, 월드와이드웹컨소시엄(W3C)에서 웹 관련 기술 표준을 정한다. 그러나 이마저도 최근 인터넷 거버넌스 포럼(IGF) 등의 정부 간 기구를 통해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 이들 국가들의 의사 결정이 항상 국민의 민주적 선호를 반영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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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가, 이러한 분산된 개인의 목소리를 하나로 모아서 정치적 영향력을 제고하는 초국가적 시민단체의 영향력에도 한계가 있다. 2012년 초 미국의 온라인 해적 방지법안(SOPA)의 입법 반대 온라인 시위에 필자도 활동가인 크리에이티브 커먼스(Creative Commons)를 비롯한 많은 인터넷 자유 관련 국제 시민 단체가 참여했다. 그러나 문제의 법안과 비슷한 저작권 강화 조항이 포함됐고, 미국과 22개 EU 국가를 비롯한 31개 국가가 서명한 반위조품 무역조약(ACTA)이 통과될 때에는 저지 세력이 그만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내용이 방대했고, 저항의 대상이 분산됐고, 저항세력의 이해관계 역시 분열됐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인터넷 시대에 초국가 경제는 명약관화하지만, 초국가시민운동은 아직 한계점이 많다. 지난 시대 국가 단위의 경제적 독점력에 대한 시민사회의 저항은 투표권을 비롯한 시민권 확보와 복지국가의 초석을 쌓았지만, 국제사회의 수준에서 같은 전망을 하기에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김재연 ‘누가 한국의 스티브 잡스를 죽이나’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