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칼럼]가내수공업 2.0의 시대

화폐가 등장하기 전 경제활동의 주된 방법은 물물교환이었다. 사람마다 소유한 것과 필요한 것이 다르다보니 서로 가진 것을 교환하면서 필요한 것을 채울 수 있었다. 이 시기에는 직접 만들어 사용하는 가내수공업이 산업의 근간이었고, 장인정신으로 집안 대대로 가업을 물려받는 것이 직업이었다. 하지만, 산업혁명 이후 공장과 기계의 등장으로 분업화가 이루어져 한 분야의 전문 지식을 갖춘 전문가가 양산되기 시작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제품을 온전히 완성하는 장인의 존재가치가 이때부터 희석되기 시작한다. 창작에 대한 인간의 열망은 예술과 문학으로 승화해 예술가나 문학인들이 만들어낸 작품으로 이어지고 있다.

인간 본성에 존재하는 창조에 대한 열정이 디지털의 만개와 함께 부활하고 있다. 킥스타터(www.kickstarter.com)는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제품 개발을 지원해주는 사이트이다. 자금이 없어 제품을 생산할 수 없는 사람들이 킥스타터에 제품에 대한 아이디어와 용도, 특징 등을 올려두고 모금액을 제시하면 십시일반으로 사용자들이 참여해 투자를 할 수 있도록 해준다. 목표한 액수가 모금되면 제품 개발 및 생산에 착수해 제품이 완성되면 투자자들(예비 구매자들)에게 해당 제품을 제공하게 되는 구조이다.

제품 개발을 지원하는 모금 사이트 킥스타터에 올라온 다양한 프로젝트들. | 킥스타터 홈페이지

초기에는 책, 음반, 뮤지컬, 조각품 등의 문학과 예술 작품 위주로 모금이 됐지만 점차 생활이나 업무에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공산품으로 확대되고 있다. 특히 킥스타터의 ‘테크놀로지’ 메뉴에는 독특한 용도의 전자기기들이 소개되고 있다. 애플과 구글이 만들고 있다는 스마트 와치와 유사한 콘셉트의 전자잉크 기반 전자시계 페블(Pebble), 스마트폰을 이용해 움직이는 지능형 로봇 완구를 만들어주는 로모(Romo), 스마트폰을 이용해 색깔을 조작할 수 있는 전구 LIFX 등 다양한 제품들이 예비 구매자와 투자자들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큰 기업이 제한된 품목의 제품을 제조하던 대량생산·대량소비 시대의 시장이 변화를 맞게 된 것이다. 비록 소량이더라도 구매 수요를 명확히 파악해서 제품을 생산할 수 있게 되면서 보다 많은 제품들이 탄생될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졌다. 또한 컴퓨팅 기술의 발전으로 제품을 제조하지 않고도 디지털 설계만으로 가상의 제품을 만들어 동작시키면서 제품의 오류와 문제를 시뮬레이션할 수 있게 된 것도 다품종 소량생산의 가능성을 높여주었다.

게다가 수천만원이나 되던 3D 프린터가 수백만원대로, 또 100만원 미만의 가격으로 점차 저렴해지면서 일반 사용자들도 공산품을 쉽게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플라스틱 재료를 이용해 3D 프린터가 정교한 입체적인 모형물을 만들어주고 색상까지도 입힐 수 있어 스마트폰 케이스나 필통, 도시락 등 다양한 제품을 직접 만들어볼 수 있게 된 것이다.

IT 칼럼 구독

기술의 발전을 통해 필요한 것을 스스로 만들어서 사용해볼 수 있는 진정한 DIY의 시대, 가내수공업 2.0의 시대가 한층 다가오고 있다. 10년 전 신문과 방송이 지배하던 시기만 해도 누구나 기자가 될 수 없고 아무나 방송을 할 수 없었지만 블로그와 유튜브, 유스트림 등의 등장으로 시민기자와 개인방송이 가능해진 것과 비슷한 흐름이다. 이제 향후 10년 내에는 개인이 공장을 갖는 시대가 오는 것도 허황된 상상은 아닐 것이다.

김지현 <카이스트 정보미디어경영대학원 겸직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