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경이 만난 사람]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총리 제대로 하려면 책임만큼 권한도 주어져야”

안대희 대법관이 새 총리로 지명됐다. 세월호 사건은 국가 시스템과 교육의 부재가 원인이라는 지적이 많다. 이 총체적 난국에 떠오르는 얼굴이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이다. 국무총리와 서울대 총장을 지낸 그는 유력한 차기 서울대 이사장 후보이기도 하다. 현 정부에 쓴소리를 많이 하는 정 전 총리를 만나 ‘총리’의 역할에 대해 들어봤다.

정 전 총리는 “책임 총리보다는 권한 총리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세월호 참사는 우리나라가 비록 경제규모가 크게 성장했어도 국가와 사회의 각 부문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하루 아침에 나락으로 추락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며 “기득권이 모든 것을 다 가지고 갑의 횡포를 부리는 나라는 민주국가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유인경이 만난 사람]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총리 제대로 하려면 책임만큼 권한도 주어져야”

박근혜 대통령이 안대희 전 대법관을 새 총리로 지명하며 ‘책임 총리론’을 강조했습니다. 세월호 사고 이후 새 총리가 더 많은 책임을 갖고 일해야 한다는 여론이 폭넓게 형성돼 있는 듯합니다.
“제 생각에 ‘책임 총리’보다 ‘권한 총리’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습니다. ‘책임 총리’는 말 그대로 사고가 나거나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지고 물러나는 자리 아닙니까. 저도 세종시 개선안이 부결되었을 때 책임지고 물러났죠. 총리나 담당자들은 누구나 국가와 국민에게 책임을 져야 하지만, 제대로 업무를 수행하려면 책임만큼 권한도 주어져야 합니다. 국가의 최종 컨트롤타워는 대통령이라고 해도 대통령 혼자서 다할 수 는 없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너무 혼자 모든 것을 주관하고 책임지려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대통령과 다른 의견도 수용해야 합니다. 총리에게 더 많은 권한을 줘 소신을 갖고 일할 수 있도록 만들어줘야 합니다. 총리가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결국엔 대통령과 의논하지 않습니까. 새 총리는 진정한 권한 총리가 되길 바랍니다.”

경험해 보니 총리란 어떤 자리던가요.
“총리건 대학 총장이건 다 ‘총’자가 들어갑니다. 이 총이란 말은 ‘꿰맨다’는 뜻이라고 하더군요. 각 부처의 일들을 꿰고 국민들의 마음을 꿰어서 건강하고 단단한 정부를 만드는 역할을 하라는 뜻이겠죠. 하지만 곳곳에 암초도 많고 손발을 묶는 일이 많았습니다. 2010년에 총리가 돼 곳곳을 다녀보니 양극화가 너무 심각해 대통령께 ‘양극화 해소를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가장 절실한 것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격차인 것 같으니 중소기업을 여러 군데 다녀보시라’고 건의드렸습니다. 저도 현장을 많이 다녔죠. 그런데 곳곳에서 ‘총리가 너무 앞서가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들리더군요. 총리가 중소기업 다닌다고 대통령이나 정부가 욕먹을 일이 있습니까. 다들 너무 과잉충성, 아니 알아서 기는 이들이 많더군요. 또 교육혁신을 추진하고 싶어서 학부형 대표, 당시 상공회의소 회장인 손경식 회장, 교수와 교사 등을 모시고 장시간 토론회도 열었습니다. 대학 자율화, 고교 다양화, 학력요건 강화 등이 주요 요구사안이었습니다. 그 후 고등학교 졸업자들의 취업이 늘어났지요. 총리실 사무실에 휴식용 침대가 있었는데 단 한 번도 누워본 적이 없습니다. 시간도 없고 여유도 없었습니다. 총리만 해도 정말 할 일이 많은데 대통령은 얼마나 일이 많겠습니까.”

대통령의 권한을 어떻게 나눠야 합니까.
“전문가들에게 나눠주고 믿고 맡겨야죠. 총장도 비슷합니다. 제가 서울대 총장 시절에 황우석 교수 사건이 났습니다. 제가 줄기세포에 대해 아는 게 있어야죠. 노정혜 교수 등 전문가에게 맡긴 후 수시로 보고를 받았습니다. 노 교수가 ‘총장님, 여론에 흔들리지 마시고 우리의 조사 결과를 기다려 주세요’라고 말해서 믿고 기다렸습니다. 이번 세월호 사건으로 해경을 해체한다는데, 국가 운용은 현실적으로 제도도 중요하지만 대통령과 각료들의 태도가 더 중요합니다.”

이번 세월호 사건 때 정흥원 총리가 현장에 내려가 유가족들에게 사과도 했지만 결국 사퇴했습니다. 총리 시절에도 사건·사고가 많아 사과할 일도 많았지요.
“총리에 임명된 후에 제일 먼저 간 곳이 용산참사 유가족들이 모인 곳이었습니다. 청문회 당시에 이정희 의원이 ‘용산에 가볼 거냐’고 묻기에 간다고 약속을 했었고, 당시 가장 심각한 현안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청와대 일부와 서울시에서 절대 가지 말라고 하더군요. 총리가 가면 그들이 내건 조건을 다 수용해야 한다면서요. 약속을 지키는 것도 중요했고 제대로 해결해 드리고 싶어 갔는데 절로 눈물이 나더군요. 사실 용산은 정부보다 김삼환 목사 등 종교계 분들이 유가족들을 다독거리고 자녀의 교육문제나 취업을 도와줘서 그나마 수습이 된 것입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진정한 소통이 되고 해결방안이 나옵니다. 또 곧바로 부산 사격장에서 사고로 밤에 일본인 관광객 8명이 사망해서 다음날 아침에 달려갔습니다. 일본인들이 무릎을 꿇고 있기에 저도 무릎꿇고 애도를 표했는데 ‘일본인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는 오해를 받기도 했지만, 당시 일본 TV에도 ‘한국 총리가 직접 와서 사과했다’는 기사가 보도되는 등 사고 자체에 큰 문제를 삼지 않아 조기에 수습되었습니다. 사과는 진심이 담기면 다 받아줍니다.”

박 대통령이 참석하는 청와대 수석회의나 국무회의를 보면, 물론 TV에서 잠시 비춰주는 장면이긴 합니다만 다들 고개 숙이고 받아 적기만 하던데요. 국무회의 때 다들 그렇게 말을 안 하는 것이 관습법인가요.
“국무회의의 경우 대부분의 의안은 차관 회의를 거쳐 올라온 내용들이라 따로 활발하게 논의할 일은 없습니다. 장관이 힘이 있고 자신이 있는 경우에는 또렷하게 소신발언을 하기도 합니다. 당시엔 이재오 장관이 실세여서 그랬는지 가장 말을 잘했고 대통령에게 제안도 많이 한 걸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업무와 상관없는 아부성 발언을 많이 하더군요. ‘이번 대통령의 해외 순방이 성공적이었다’ 등등….”

많은 장관들이 전문가가 아니라 정치인 출신이어서 더욱 그런 것은 아닐까요.
“저는 장관은 꼭 전문가 출신이어야 할 필요성은 없다고 봅니다. 부처의 사령관에게 필요한 것은 건전한 상식, 그리고 유능한 전문가를 잘 활용하는 거죠. 부처를 변화시키려면 오히려 그 부처와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이 사령관이 되어 조직의 핵심 화두를 밀고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장군은 병과가 없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자의반타의반 총리에서 물러났는데 아쉬움은 없습니까.
“청문회 때부터 세종시 문제를 떠안아 본의 아니게 세종시 총리란 별칭까지 얻었습니다. 당시 여러 이유들로 세종시 개선안이 부결되었지만 전 지금도 개선안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확신합니다. 얼마 전 시사평론가로 활동하는 이영작 박사도 방송에 나와 ‘세종시는 원점으로 돌아가는 게 맞다’는 말씀을 하더군요. 독일이 통일될 무렵을 제외하고는 그 어느 나라도 이렇게 행정수도가 분리된 국가가 없습니다. 국정의 원활한 수행을 위해서는 화상회의다 뭐다 해도 입법·사법·행정부처가 4~5㎞ 안에 있어야 합니다. 또 이제 세계는 ‘도시 경쟁시대’입니다. 미국과 중국의 대결이 아니라 워싱턴과 베이징, 뉴욕과 상하이의 경쟁입니다. 충청도를 위해서라도 세종시는 행정부처가 모인 행정도시보다는 기업, 교육, 문화의 도시로 거듭나는 것이 훨씬 유익한 일인데…. 당시 계파 이익 등을 이유로 개선안을 부결시킨 국회의원들은 여전히 존경하기 힘듭니다. 제가 박근혜 대통령과 각을 세우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박 대통령이 원칙과 소신을 주장하면서도 개선안을 부결시켰기 때문입니다.”

곧 서울대 총장도 바뀝니다. 평소 총리보다 총장으로 불리길 더 좋아한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총장은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가능한 자리입니다. 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하는 역할이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드뭅니다. 서울대 총장이 서울대를 개혁하면 다른 대학에 파급효과가 크고 결국 대학 전체의 위상이 올라갈 수도 있습니다. 물론 개인적 의견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보직교수나 직원들, 학생들의 의견을 다 수렴하는 것이 중요하죠.”

서울대 교수협의회가 총장 선출이 끝난 후 역대 직선제 총장 7명에 대한 평가를 진행한다고 하던데요. 정 전 총장은 ‘지역균형선발제’ 도입이 좋은 평가를 받는 것 같습니다.
“과찬도 있고 오해도 있습니다. ‘지역균형선발제’의 경우 당시에 동반성장이란 단어는 안 썼지만 같은 맥락입니다. 총장이 되고 서울대 학생의 구성비를 보니 43%가 서울 출신이고 강남 3구가 26%였어요. 그러다 진짜 ‘서울 지방’ 대학이 되겠다 싶어 지방 출신 학생을 고루 뽑도록 했습니다. 어떤 조직이 창의적이 되려면 구성원들이 다양해야 하고, 서로 다른 이들이 부대끼는 가운데 다채로운 의견을 수용하고 서로 이해해야 합니다. 다행히 그런 처음 의도가 적중해서 나중에 보니 지역균형선발로 들어온 지방 출신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적극적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입학정원을 줄인 것은 대학생이 너무 많아 질적 향상을 위해 단호하게 결정한 것입니다. 하지만 연구 중심의 대학원 정원은 줄이지 않아서 연구인력이 축소되었다는 비판은 받아들이기 어렵군요. 총장 시절에 현금만 1600억원의 기금을 마련했는데, 당시 자연과학대학장에게 100억원을 주며 마음대로 활용하라고 했더니 화학 전공인데도 생명과학부에 그 기금을 돌려 결국 김빛나리 교수 등 인재가 나오는 데 도움이 됐습니다.”

대부분의 관료들이나 대기업 간부들도 서울대 출신이 대부분인데 우리 국가의 비리나 악행에도 서울대 출신이 가장 활발하게(?) 연루된 이유는 뭘까요.
“그건 서울대 입시 기준이 고3 때 성적에 의존하기 때문에 학교 공부만 잘하는 이들을 뽑아서일 겁니다. 인성교육이 참 중요한데, 그건 대학의 힘이 아니라 가정에서 어린 시절부터 지도하는 게 중요합니다. 존 로크가 1690년에 쓴 교육론을 보면 영국 국민을 민주시민으로 만든 교육철학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1장이 신체의 건강이고, 2장부터 19장까지 인성교육·예절·상벌이 나오고, 20장에 가서야 학습에 관한 내용이 등장합니다. 이제 우리의 대학교육은 신분 상승의 사다리 역할을 해온 폐단을 끊고 배움의 길이 곧 인간적 성숙과 사회적 기여로 이어질 수 있도록 건강한 시민의식을 길러줘야 합니다. 그래야 지식의 재판관으로 키워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죠. 서울대만이 아니라 전 대학이 이런 사명감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

2012년 동반성장위원회 초대 위원장을 지냈고, 요즘은 동반성장연구소를 만들어 동반성장 전도사로 불립니다. 동반성장에 집착하는 이유가 뭡니까.
“동반성장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양극화를 해소하고 해결하는 정답이라는 확신이 있어서입니다. 동반성장을 주장하니 저를 빨갱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고, 특히 현 정부나 재벌들에게는 배척을 당하기도 합니다. 많은 이들이 동반성장을 있는 사람 돈 뺏어서 없는 사람에게 나눠주는 것으로 아는데 엄청난 오해입니다. 경제 전체의 파이를 키워서 분배를 공정하게 하자는 것입니다. 기득권이 모든 것을 다 가지고 갑의 횡포를 부리는 나라는 민주국가가 아닙니다. 미국의 경우 2009년의 경제파동은 물론 1%대 99%를 주장하며 격한 시민운동이 일다가 멈춘 것은 조지 소로스, 워런 버핏, 빌 게이츠 등 부자들이 거액의 자산을 환원하고 동료 갑부들을 설득해 빈부격차를 줄이고 동반성장하자는 진심이 통해서입니다. 동반성장은 나눠주기가 아니라, 사회 곳곳이 제대로 작동하는 것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나라가 비록 경제규모가 크게 성장했어도 국가와 사회의 각 부문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하루 아침에 나락으로 추락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몇 사람이 자리를 독점하는 관피아 역시 동반성장을 하지 않아서입니다.”

얼마 전 서울대 교수들이 시국선언을 했습니다. 정 전 총장도 1986년 대통령 직선제에 반대한다는 시국서명에 주도적으로 동참해서 진보적 학자로 불렸는데요. 여전히 진보인가요. 아니면 보수로 성향이 바뀌었나요.
“나라에 도움되는 일에 진보와 보수가 따로 있을까요. 또 어떤 사람이 매사에 다 진보적이거나 보수적일 수 있을까요. 사안마다 입장과 철학이 다를 겁니다. 상황을 이데올로기로 구분하는 시대도 아니고 회색분자란 비난을 받을지 모르지만, 제 나이가 되면 이념적 잣대보다 ‘어느 것이 나라에 유익할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유인경이 만난 사람

정운찬 전 총리와 인터뷰를 하기 위해 자료를 살펴보니 온화한 외모와 달리 그는 항상 “아니오”를 주장한 사람이었다. 서울대 교수 시절의 시국선언, 총장 시절의 3불정책 반대. 총리 시절의 세종시 행정수도 반대 등이 그것이다. 그는 현 정부의 창조경제나 경제정책에도 “뚱딴지같다”며 “NO”라고 한다. 시간이 흐르면 정답이 드러날 게다.

<글·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사진·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