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TV]8090 음악의 추억을 말하다

트렌디한 예능에 집중해 온 방송사가 추억을 반추하는 프로그램을 내놓았다. 3월부터 방송된 tvN <근대가요사 방자전>은 90년대 최고의 MC인 주병진을 내세운 음악 토크쇼다. 그 시절 활동하던 그룹 소방차 정원관과 김완선·변진섭·김태원 등 연예계 생활 30년 이상되는 8090대의 방송가 스타들이 가세해 당시 가요계를 추억한다.

재미있는 건 ‘한물간’ 스타들이 나와 흘러간 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얘기가 된다는 거다. MC들의 과거가 워낙 화려하다 보니 이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전설이다. 주병진이 이소라·이성미·노사연과의 스캔들에 대해 직접 이야기하고, 고3이었던 김태원이 현재의 아내와 만난 사연도 말한다.

댄스가수 정원관은 “마음에 드는 여성의 귀에다 대고 노래를 불러줄 수 있는 발라드 가수 변진섭이 부러웠다”고 말한다. 돌아보면, 노련한 방송인들이 ‘그땐 그랬다’고 구두 증언할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 각각 연예계 생활 30여년씩 도합 179년의 경력을 자랑하는 스타들이 모였으니 이야깃거리를 고민할 필요가 없다. 주병진이 영화 <건축학개론>으로 ‘국민 첫사랑’이라는 닉네임을 얻은 미쓰에이의 수지 이름은 몰라도(심지어 미연이라는 뜬금없는 이름을 말해도), 8090시절의 이야기라면 누구보다 잘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tvN <주병진의 방자전> | tvN 제공

추억의 매개체는 음악이다. 변진섭은 “음악은 타임머신”이라며 “음악만큼 그 시절로 빠르게 순간이동시켜주는 게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은 20대 청년 이승철이 부르는 ‘희야’를 듣는 것만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제작진도 일부러 말을 시키지 않고, 추억을 음미하는 이들의 얼굴을 클로즈업해 보여준다.

추억의 음악은 경쟁이 없다. 2회에서는 고 김현식과 유재하의 명곡 대결로 꾸며졌다. 김현식의 ‘사랑했어요’는 ‘위대한 노래’로,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를 ‘불멸의 노래’로 선정하긴 했지만 대결구도는 아니다. 그저 두 노래에 얽힌 추억을 이야기하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화법이다. 정원관이 부러워하던 발라드 가수 변진섭은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나훈아의 ‘사랑’을 부른다. 부활의 김태원은 송골매의 배철수에게 존경심을 스스럼없이 드러내면서 그 시절을 추억한다.

추억의 댄스음악을 틀어주고 춤출 공간을 마련해 ‘3040세대’ 직장인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술집 ‘밤과 음악사이’는 본래 모습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밤과 음악사이’는 1990년대 가요를 틀어주면서 이곳을 찾은 30~40대 직장인들이 무대에서 춤 출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밤과 음악사이가 식품위생법상 일반음식점으로 지정됐음에도 춤출 수 있는 무대를 설치해 법을 위반했다고 관할구청에 통보했고, 구청은 “올해 1월까지 일반음식점에 맞게 시설을 고치라”고 명령했다. 이제 90년대 가요를 들으면서 춤출 수 있는 공간은 없어질지 모르겠으나, TV 속에서는 건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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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가요사 방자전>이 <주병진의 방자전>으로 정규 편성돼 방송을 이어간다. 노사연이 1991년 이후 23년 만에 주병진과 다시 호흡을 맞춘다. 노사연은 주병진과 함께 <일요일 일요일 밤에>를 진행하며 프로그램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노사연은 이무송과 결혼했으니, 이젠 주병진과 노사연이 스캔들에 시달릴 염려도 없다. 마음껏 추억을 되새김질할 일만 남았다.

<박은경 경향신문 엔터·비즈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