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미의 공감 스토리텔링]대한민국만 몰라주는 정원예술가 성범영

1992년, 드디어 ‘분재예술원’이란 이름으로 황무지는 아름다운 한국 정원으로 재탄생했다. 세계 최초의 분재 예술원이 ‘두루외’ 성범영의 노력 끝에 대한민국 제주에 문을 연 것이다.

‘생각하는 정원’. 이름만 들어도 마음이 먼저 발걸음을 옮기는 곳. 세계에서 유일한 분재(盆栽) 정원이 제주에 있다는 건 그곳의 풍경과 참 어울리는 조화다. 제주시 한경면 저지리에 가면 돌과 나무를 가꾸는 일에 일생을 오롯이 바친 농부가 50년 동안 황무지를 일궈서 만든 무릉도원이 있다. 제주에 갈 때마다 그곳에 들러 곡선의 돌담길을 따라 걸으며 바람의 노래를 듣고, 무릎을 굽혀 분재나무와 눈높이를 맞추어 나무의 이야기를 듣는다.

“신선의 집이 별로 이에서 낫지 못할 것이니, 무슨 일 퉁소를 불고 푸른 하늘로 향하리오?” ‘생각하는 정원’을 거닐 때마다 <구운몽> 왕 학사의 시 구절이 떠오른다고 말했을 때, 성범영 선생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17년 전, 이 정원을 처음 찾았을 때 낡은 솜 누빔 한복에 벙거지를 눌러 쓰고 인부들과 돌담을 쌓고 있었다. 오늘도 그는 같은 차림으로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

정원예술가 성범영씨. 그는 1992년 제주도에 ‘분재예술원’이라는 세계에서 유일한 분재 정원을 만들었다.| 박상미씨 제공

육지 사람이 제주의 풍경에 반하고, 나무와 돌에 미쳐서 제주에서도 가장 척박한 땅에 내려와서 터를 잡았다. 맨손으로 가시덤불을 걷어내고 돌을 파내며 황무지를 일구기 시작했을 때, 제주 사람들이 “저 두루외!(미친놈) 낭이(나무가) 밥 멕여주나?” 걱정 반 조롱 반 혀를 끌끌 찰 때에도 마음 상한 적은 없었다. 고등학교를 도중에 그만두어야 했던 가난한 소년이, 옷 장사로 돈을 벌자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나무’였다. 어릴 때부터 나무가 좋았고, 특히 분재가 좋았다. 땅을 사서 나무를 가꾸고 정원을 만들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꾸었다.

“어려서부터 나무를 좋아해서 고등학교 다닐 때에도 분재원 구경을 다녔어요. 화분에 작은 나무가 섬세하게 가꾸어져 있는 모습에 반해버렸죠. 하지만 분재를 배울 수 없는 형편이었어요. 서울 친척집에 얹혀서 식당일을 도우며 고등학교를 근근이 다녔는데 끝내 졸업을 못하고 그만두었죠. 바로 군대에 갔다 왔어요. 돈을 벌어야 하는데 재주가 있나요. 남대문 자유시장 노점 가판대 반을 빌려서 옷 장사를 시작했어요. 1년 반 정도 지나니 돈이 조금씩 모였어요. 그때 제주도에 다녀온 교수들이 한라산의 수려한 경관과 사철 푸른 상록수와 고산지대의 나무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좌담 프로를 라디오에서 듣게 된 거예요. 제주로 가보자! 군에서 만난 제주 사는 친구가 떠올라서 그에게 편지를 쓰고 제주로 가는 배를 탔어요.”

황무지를 50년 일구어 만든 무릉도원
1963년, 북제주군 저지리. 그곳 사람들의 형편은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육지에서 볼 수 없는 푸른 상록수와 올망졸망한 돌담, 골목마다 노랗게 익은 귤이 매달린 귤나무를 보자 제주에 반해버렸다. 친구 집에서 맞은 제주의 첫날밤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돈을 벌어서 제주로 오리라. 땅을 일구고 나무를 가꾸면서 살아야지…. 청년 성범영은 분재 나무 수백 그루를 가슴에 그리며 새벽을 맞았다.

제주에 땅을 사려면 돈을 벌어야 했다. 남성 와이셔츠를 외제처럼 견고하게 만들어서 팔면 경쟁력이 있을 것 같았다. 유명 브랜드의 와이셔츠를 사와서 국산과 꼼꼼히 비교를 하고, 1㎝ 안에 몇 바늘이나 꿰맸는지 돋보기로 세어가며 재봉상태를 분석했다. 모든 재료는 직접 고르고 최고급만 사용했다. 돈이 모이자 제주 친구가 권해준 밀감나무 밭 1500평을 샀다. 땅을 더 사기 위해서 24시간 가게 문을 닫지 않고 와이셔츠를 만들었다. 입소문을 타고 외국 손님들이 줄을 잇기 시작했고, 조선호텔 앞에 몇 개의 점포를 열게 되었다. 와이셔츠 공장까지 열었다. 사업이 불같이 일어날 때에도 마음은 온통 제주에 가 있었다. 꿈은 현실에 다가가고 있었다.

“드디어 저지리에 넓은 땅을 샀어요. 처음엔 한 달에 한 번 내려가서 땅을 개간하고 돌담을 쌓았죠. 마을 사람들이 저에게 ‘여긴 100년 지나도 발전할 수 없는 제주에서 가장 낙후된 땅인데 무슨 미친 짓을 하는 거냐, 분재 정원을 만들 거면 제주시나 서귀포로 가라’고 충고했지만, 제 귀엔 안 들렸어요. 꿈을 이루겠다는 마음을 먹은 후엔 남이 무슨 말을 해도 저는 흔들린 적이 없어요.”

1968년, 쇠망치로 때려서 돌을 캐고 빗물로 밥을 지어 먹으며 개척을 시작했다. 인부들과 함께 온종일 돌을 캐도 2평도 채 일구지 못했다. ‘분재를 길러보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이루기 위해서 밤새 책을 읽고 분재하는 사람들을 찾아가서 배우고, 유심히 지켜봤다가 반드시 그대로 따라해 보았다. 새로 태어난 듯했다. 나무도 조금씩 심기 시작했다. 잘 되는 사업을 뒷전으로 하고 돌밭을 일구는 모습을 본 서울 친구들은 “미쳤다. 정신병원에 같이 가자”며 심각한 표정을 짓기 일쑤였다. 1974년, 드디어 주민등록을 제주로 옮겼다.

“서울에서의 성공에 미련을 두지 않았어요.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나무들, 내 손이 닿으면 푸르게 변해가는 황무지, 씨앗을 뿌려 키운 소철나무, 잘 자라난 관엽식물은 판매가 되기 시작했죠. 나무가 천천히 자라는 거 같지만 나무처럼 빨리 자라는 것도 없어요. 한창 자랄 때는 며칠 사이에 가지가 웃자라기에 제때 솎아주고 철사걸이를 해주지 않으면 분재목을 만들 수 없어요. 육지에 갔다가 좋은 재목을 발견했는데 돈이 모자라서 사오지 못한 날이면 온통 그 나무 생각에 먹지도 자지도 못했어요.”

와이셔츠 사업을 맡아서 하던 아내도 아이들만 서울에 남겨둔 채 제주로 왔다. 농장 식구들의 뒷바라지를 혼자 다 하고 농장 일까지 돕느라 자주 쓰러졌다. 아이들도 방학 때 내려오면 쌀부대를 들고 자갈을 주워 나르느라 쉴 틈이 없었다.

‘생각하는 정원’에 있는 아름다운 나무들. | 박상미씨 제공

장쩌민 “농부의 개척 정신을 배우라”
“여보, 아이들과 저를 그만 놔주세요.”

어느 날 아내가 울먹이며 말했다. 잡지도 못하고, 차마 가는 뒷모습을 볼 자신도 없어서 온종일 일만 했다. 그러나 떠나기로 한 날 해가 저물도록 아내는 말없이 일만 하고 있었다. 그리고 울면서 함께 잠자리에 들었다. 오늘까지 아내는 그의 가장 든든한 동지로 ‘생각하는 정원’을 지키고 있다,

“아내가 정착하자 저는 본격적으로 전국을 돌며 분재와 정원수를 구입하기 시작했죠. 괭이 들고 한라산에 가면 수백 년 묵은 귀한 나무를 얼마든지 구할 수 있지만, ‘과정이 순수해야 좋은 정원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늘 되새겼어요. 행여 욕심이 생길까봐 한라산에 올라가지도 않았지요.”

나무를 사기 위해서 돼지와 소를 키우느라 부부는 밤잠도 자지 못했다. 귤나무, 소철과 종려나무, 야자나무를 키워 판 돈으로 정원수와 분재를 키우는 데 집중했다. 점점 꿈꾸던 정원의 모습이 갖추어지기 시작했다.

“돌밭이 차츰 정원의 모습을 갖추어 갈 무렵, 제주도청에서 사무관이 와서 제주시 근처에 땅 2만~3만평을 대체해줄 테니 옮겨가서 ‘분재 관광지’를 만들어 보자고 권유했어요. 20년을 함께한 이웃들, 저지리에 ‘분재 정원’을 만들어 보겠다는 꿈을 가지고 ‘두루외’로 살아온 시절을 배신할 수 없었어요. 그때도 ‘두루외’ 소릴 들으며 거절했지요. 아무리 험한 한라산 계곡이라도 향기 좋은 꽃이 피면 벌과 나비가 찾아와 꿀을 따 가리라 믿었어요.”

1992년, 드디어 ‘분재예술원’이란 이름으로 황무지가 아름다운 한국 정원으로 재탄생했다. 세계 최초의 분재예술원이 ‘두루외’ 성범영의 노력 끝에 대한민국 제주에 문을 연 것이다. 세계 어디에도 없는 제주의 기생화산인 오름, 오름을 살려서 정원을 만들고 분재를 전시하는 대한민국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정원이었다. 분재는 저절로 그 모습을 갖춘 게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서 사람들이 갖게 된 미의식을 기준으로 가지와 잎의 모양을 다듬어서 만들어낸 자연 경관의 축소판이다.

‘생각하는 정원’에 있는 아름다운 나무들. | 박상미씨 제공

‘생각하는 정원’이 경매에 넘어가다
수목을 화분에 옮겨 심어서 줄기와 가지를 다듬고 나무의 모양을 변형시켜서 극치의 아름다움을 연출해낸 예술작품인 분재. 작은 화분에 숲을 연출해낸 것이라 할까? 작은 나무에도 큰 나무와 똑같은 꽃이 열리고 열매가 매달린다. 여러 그루의 분재를 심은 화분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소인국의 사람이 되어 작은 숲속을 거니는 환상 속으로 빨려드는 것만 같다.

1995년에는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이, 1998년에는 후진타오 국가부주석이 ‘생각하는 정원’을 방문하고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이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장쩌민 주석은 “한국 제주도에 있는 생각하는 정원은 일개 농부가 정부의 지원 없이 혼자서 세계적인 예술작품을 만들어낸 곳이다. 가서 보고 그 개척정신을 배우라”고 국가 간부들에게 연설을 했다고 한다. 95년 인민일보에 <신병매관기>라는 ‘생각하는 정원’ 관람기가 특집으로 실린 이후에 성범영 선생에 대한 기사는 중국 언론에 수백 차례 보도되었다. 베를린종합대학 조경학과 게어트 그뢰닝(Gert Groening) 교수는 ‘예술적인 분재 작품들이 잘 설계된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이곳을 관람한 건 한국 여행의 백미였다’는 글을 남겼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국내외 관광객들이 밀려왔다. 하지만 1997년, IMF 외환위기로 인해 ‘생각하는 정원’도 경영난에 빠졌고, 결국 3차 경매로 생면부지의 육지 사람에게 소유권이 넘어갔다. 가장 믿고 의지했던 사람들이 브로커가 되어 있었고, 은행을 찾아다니며 매달렸지만 융자신청은 거절당했다.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가치를 지닌 분재들, 그리고 손으로 쌓아올린 돌담과 돌문들을 담보로 잡아주지 않았다. 30년간 가꾼 분재는 ‘장작’ 가격으로 책정될 뿐이었다.

MBC <시사매거진 2580>과 각 신문사 논설에서 “개인의 자산이 아니라 우리나라 문화유산이 잘 보존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안타까움을 호소해 주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안타까워하는 개인들은 많았지만, 은행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오히려 아내는 씩씩하게 웃으며 골목 어귀에 작은 갈비탕 집을 열어서 돈을 다시 벌고 아빠를 응원하자고 아이들을 다독였다.

3차 경매에 넘어갈 때에도 국가에선 도움을 주지 않았나요.
“그 시절은…(울음) 말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죠. 원래 내가 하던 일을 계속하기로 했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쉬지 않고 돌담을 쌓고 나무를 만졌어요. 분재와 정원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은행은 우리를 외면했고, 헐값으로 경매 받으려는 사람들과 브로커들만 득실거렸습니다.”

3차 경매에서 주인이 바뀐 뒤에도 새벽부터 밤까지 하던 일을 계속하셨다구요. 7년 동안 ‘생각하는 정원’을 떠난 적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중국의 대기업 두 곳에서 비밀리에 저를 만나러 왔어요. 한국을 떠나서 중국으로 가자, 우리가 충분한 경제적인 보상을 해주겠다, 중국에 가서 ‘생각하는 정원’을 만들어 달라…. 대한민국에 대한 원망의 마음이 컸지만, 이 땅에 ‘가장 아름다운 한국 정원’을 만드는 게 제 꿈이고 아직도 만들어 가는 중이었는데, 제가 어딜 가겠어요…. 사양했어요.”

그 7년 동안 정원의 돌담을 더 높게 쌓아올리셨어요. 여섯 번이나 허리·척추 수술을 하면서 월급 한푼 받지 않고 ‘남의 정원’에서…. 되찾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정원 관리를 계속하신 건가요.
“아니오. 가능성이 어디 있나요. 돈이 어디 있나요…. 태풍이 몰아칠 때, 분재들을 보호하려면 돌담을 높이 쌓아야 해요. 이 귀한 분재들이 동상 걸리면 어떡해요? 제가 아니면 누가 하나요? 언제 뿔뿔이 흩어질지 모르는 나무들이지만, 바람에 시달리게 둘 수 있나요. 그리고 기도했어요. 내가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하던 일을 그대로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내가 만약에 이곳을 떠나더라도 돌담이 있으면 나무들이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테니 돌담을 쌓을 힘을 달라고….”

기적처럼 되찾은 ‘생각하는 정원’
주인이 바뀐 정원에 나가서 하던 일을 계속하는 그를 역시 ‘두루외’라고 비웃는 사람이 있는 반면, 눈물로 격려해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7년째 되던 해에 모 은행에서 나온 간부가 은행 임원진을 설득해서 대출 가능성이 열렸으니 만나자고 했다. 더 이상 사람을 믿을 수 없던 시기였기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아들이 그를 대신해서 은행에 다녀왔다. 그들의 말은 사실이었고, 7년 만에 ‘생각하는 정원’은 죽음의 문턱에서 다시 살아났다. ‘하던 일을 계속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기도에 대한 응답은 예상치 못한 기적이었다.

“요즘은 유럽의 분재 전문가들이 단체로 관람을 옵니다. 단순히 분재만 보는 게 아니라, 우리 정원의 전체적인 구도와 조경, 그 속에 담긴 철학과 만든 이의 정신을 평가해주는 것 같아요. 외국의 저명한 조경학자들이 오셔서 저에게 분재에 대한 질문을 많이 하십니다.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조경이 그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는 것 같아서 더욱 책임감을 느낍니다. 아직 완성이 아니에요. 꾸준히 돌담을 높이고, 관람 온 사람들이 정원을 즐기고 분재를 체험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려고 노력 중입니다.”

‘생각하는 정원’의 문을 연 지 23년째, 황무지를 개척한 지 47년째를 맞는 2015년. 이제는 더 쌓을 돌담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오늘도 성범영 선생은 돌담을 쌓다가 나를 맞았다. “아직도 더 할 공사가 남아 있냐”고 묻자 “앞으로 할 일이 더 많다”며 어린아이처럼 해맑은 웃음을 짓는다.

고사리손으로 쌀부대에 자갈을 담아 나르던 큰아들이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지금도 정원 곳곳을 온종일 다니며 ‘잔소리’를 멈추지 않는다. 싫을 법도 한데 직원들의 표정이 밝다. 잃어버린 7년 동안 ‘하던 일을 계속하던 두루외 성범영’과 함께한 이들이었다.

박상미의 공감 스토리텔링

척박한 땅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이라는 찬사를 받는 땅으로 가꾼 사람 성범영. 정부의 지원 없이 나무와 돌에 미친 농부가 만들어낸 이 아름다운 정원의 이야기는 올해부터 중국 중학교 3학년 <역사와 사회> 교과서에 실린다. 대한민국이 세계에 단 하나밖에 없는 분재 정원의 가치를 그동안 너무 몰랐던 것은 아닐까.

<박상미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