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인형기계로 진화한 야바위

‘야바위’라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거의 볼 수 없게 됐지만 1980년대만 하더라도 길거리나 공원 같은 곳에서 쉽게 볼 수 있었지요. 컵을 3개 놓고 그 안에 주사위 같은 것을 넣습니다. 왔다갔다 하다가 주사위를 3개의 컵 중 하나에 숨깁니다. 손님이 그걸 맞히면 건 돈의 몇 배를 주고, 못 맞히면 야바위꾼이 건 돈을 가져가는 것입니다. 뒤에서 보면 못 맞힐 수가 없습니다. 주사위가 어느 컵 속에 들어 있는지 열이면 열 다 맞힙니다. 그 자신감을 바탕으로 돈을 거는 순간 ‘대박’의 욕망은 ‘쪽박’의 탄식으로 바뀝니다.

참 희한합니다. 뒤에서 볼 땐 질래야 질 수 없는 게임인데, 돈을 거는 족족 허탕만 칩니다. 백 퍼센트, 틀림없이, 저 컵 속에 주사위가 없는 게 도저히 불가능한 것 같은데, 돈을 걸고 컵을 들어보면 텅 비어 있습니다. 귀신이 곡할 노릇입니다. 제가 대학 다닐 때만 해도 야바위로 등록금을 날렸다는 비운의 학생 이야기를 심심찮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야바위가 다시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어딜 가나 야바위 천지입니다. 사라진 지가 언제인데, 길거리에서 하나도 안 보이는데 무슨 소리냐구요.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십시오. 아마 곳곳에서 야바위가 벌어지는 현장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얼마 전 야바위의 부활을 실감했습니다.

길을 가고 있는데 여중생처럼 보이는 여학생들이 상품이 진열돼 있는 기계 앞에서 끙끙대고 있는 것을 보게 됐습니다. 알고 보니 ‘인형뽑기’로 통칭되는 기계였습니다. 한 번 하는 데 1000원이었고, 5000원을 넣으면 6번의 기회가 주어집니다. 10만원대 무선조종 헬기, 피규어, 모형자동차가 지나가는 사람을 유혹합니다. 스틱으로 막대기를 조종해 상품을 떨어뜨리면 가져가는 것입니다. 잘만 하면 1000원으로 몇 만원짜리, 운이 더 좋으면 10만원대 상품을 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생각만큼 잘되지 않습니다. 조바심을 내고, 안달하지만 잡힐 듯 잡힐 듯하면서도 잡히지 않습니다. 실패하면 열 받아서, 아쉬워서,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다시 돈을 집어넣고… 인터넷에서는 30만원까지 집어넣었다는 얘기도 볼 수 있습니다.

인형뽑기는 인간의 욕망을 교묘하게 자극합니다. 1000원을 내고 만원, 10만원짜리를 가져갈 수 있다고 유혹합니다. 상품을 파는 게 아니라 인간의 욕망을 팝니다. 야바위가 사라진 게 아니라 기계로 진화한 것입니다. 사람의 손과 기술로 속이던 야바위가 기계의 메커니즘으로 바뀌었지만 욕망을 자극해 돈을 후리는 구조는 똑같습니다.

한 번 빠지면 늪에서 발이 빨려들어가는 것처럼 욕망의 늪으로 빠져들게 되는 것도.

야바위꾼이 아닌 야바위 기계가 오락실 앞에서, 술집과 편의점, 문방구점 앞에서, 아니 골목 어디에서나 떡 하니 자리를 잡고 지나가는 사람을, 특히 어린 학생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스타들이 인형뽑기를 하는 장면이 아무렇지도 않게 TV 전파를 타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그러나 ‘인형뽑기’는 오락도 게임도 아닙니다.

아이들이 잃는 건 돈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사행성에 너무 일찍 노출되고 익숙해지는 아이들은 더 큰 사행성의 유혹에 쉽게 빠져들 가능성이 큽니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실은 야바위가 어디 이것뿐이겠습니까. 정치도, 통치도, 국회도, 사회도 야바위 천지 아닙니까. “혐의가 나오면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는 눈 가리고 아웅 하는 말로 국민을 농락하고 야바위치는 게 이 나라의 정치인들, 고관대작들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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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바위 기계를 제한된 장소에만 설치한다면 그나마 최소한 아이들은 보호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야바위가 통하는 사회 분위기부터 바꿔야 하겠지만 말입니다.

<류형열 편집장 rh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