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스크린]여섯 개의 사건 ‘반격의 분노’

제목 와일드 테일즈: 참을 수 없는 순간 (Relatos salvajes)

제작연도 2014년

제작국 아르헨티나, 스페인

러닝타임 122분

장르 스릴러, 코미디

감독 데미안 스지프론

출연 리카르도 다린, 레오나르도 스바라글리아, 다리오 그란디네티

개봉 2015년 5월 21일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옴니버스’란 각자 독립되어 있는 이야기들이 한 편의 작품 안에 모여 있는 형식을 일컫는다. 쉬운 말로 ‘모음집’ 정도로 이해하면 적절할 텐데, 다방면의 창작매체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영화에서도 꾸준히 선택되어지는 제작형태다. 옴니버스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짧은 호흡에 있다. 장편에서 불가피한 치밀하고 균형 잡힌 서사와 일관성에 대한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대신 여기서 절약된 에너지는 응축해 특정 장면이나 감정을 강렬하게 부각시키는 데 유용하게 집중된다. 이런 특성은 다양한 시도의 실험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제작자 입장에서는 보편적으로 장편영화보다 제작의 부담을 줄일 수 있고, 관객 입장에서는 영화표 한 장으로 다양한 맛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으니 충분히 매력적이다.

2000년대 중반 즈음 세계적으로 옴니버스 영화 붐이 일었던 적이 있다. 유행은 국내외를 가리지 않았다. 장르를 불문하고 수많은 옴니버스 영화들이 만들어졌고 한 달에도 몇 편씩, 다양한 국적의 작품들이 꼬리를 물고 개봉되기도 했다. 촉망받는 신인들의 우열을 겨루는 평가대로, 때로는 저명한 감독들의 친선의 장으로서 옴니버스 영화는 매력적인 도구가 되었다. 하지만 그만큼의 단점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작품들이 얄팍한 기획에 의존하다 보니 저렴한 예산과 규모의 한계를 감추지 못한다거나, 하나 안에 모인 작품들의 완성도가 불균형한 경우도 많다. 또 장편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전달하는 정서의 깊이와 잔향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와일드 테일즈: 참을 수 없는 순간>은 과거에 비해 뜸해진 옴니버스 최신작이다. 영화의 시작은 마치 공포영화와 같은 괴기스런 분위기를 풍긴다. 각자 다른 목적으로 비행기에 탑승한 승객들은 모두가 공유하는 거북한 과거에 엮여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후 비오는 밤 부모의 원수를 손님으로 맞이한 웨이트리스, 시골길을 운전하다 사소한 시비로 생사의 기로에까지 이르는 도시남, 융통성 없는 공무행정으로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게 된 중년가장과 아들의 뺑소니를 무마시키려는 재력가 아버지, 그리고 행복한 결혼식장에서 남편의 외도를 눈치챈 신부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상영시간도, 이야기의 규모도 제각각인 여섯 개의 사건들이지만 당연히 각각의 종결을 가지고 있다. 모두 겹겹이 쌓여가는 분노와 더불어 이로 인해 촉발되는 그들의 ‘복수’ 또는 ‘반격’의 과정을 동반해 보여준다는 공통점은 있지만, 의외로 그 과정이나 결론이 제공하는 감정이란 시원스런 통쾌함이나 카타르시스와는 거리가 멀다. 이는 이 작품이 사회 고발의 목적이나 현실성 제고보다는 영화적 상상력의 확장과 창의적 재현에 더 무게를 싣고 있기 때문이다. 다소 과격한 묘사와 극단적 상황들이 나열되기도 하지만 영화적 기교 안에서 꽤나 실험적으로까지 보이는 감각적 장면들은 인상적이며 격양된 인물들의 과장된 행동과 예상 밖의 결말은 웃음을 유발하기도 한다.

터치스크린

결국 이 작품을 제대로 즐기는 방법이란 고전적인 이야기의 기승전결보다는 현실적 공감대로 시작하지만 어디로 튈지 모르는 전개와 이를 가지고 노는 작가의 상상력을 관전하는 것이다. 낯선 아르헨티나 국적의 이 작품이 국내 극장에도 걸릴 수 있었던 데는 아카데미 영화제, 칸 영화제 등 유수 영화제의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 지목된 화려한 경력 덕이 클 것이다. 단편영화와 TV시리즈 연출을 통해 기본기를 다진 데미안 스지프론 감독은 연출은 물론 각본과 편집까지 도맡아 자신의 남다른 재능을 십분 발휘하며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최원균 무비가이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