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TV]뱀파이어 바람, 더위 식혀줄까

안방극장에 ‘뱀파이어’ 즉 흡혈귀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날씨가 더워지면서 흡혈귀를 소재로 한 각종 드라마가 시청자를 만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전설의 고향> 등의 납량 특집극이 방송됐지만 요즘에는 단순히 흡혈귀가 등장한다는 설정을 넘어서 다른 장르와 결합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죠. 올해 흡혈귀 드라마 포문을 열었던 작품은 지난 4월 종방한 KBS2 <블러드>였습니다. 이 드라마는 흡혈귀 설정에 의학 드라마를 얹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피가 가장 난무하는 장소인 병원에 흡혈을 하는 의사가 들어가는 설정이었던 거죠. 하지만 드라마는 5% 정도의 비교적 낮은 시청률로 막을 내렸습니다.

지금 방송되는 드라마는 두 편입니다. 하나는 KBS2에서 매주 금요일에 방송되는 <오렌지 마말레이드>이고, 나머지는 9일 첫 방송을 한 MBC <밤을 걷는 선비>입니다. 두 작품은 흡혈귀 설정과 사극 또는 학원물이 섞였습니다. 먼저 방송된 <오렌지 마말레이드>는 가상의 미래를 배경으로 인간과 흡혈을 하는 흡혈족이 공존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초반 현대의 이야기를 하던 드라마는 5회부터 과거로 돌아가 인간과 흡혈족이 공생하게 된 계기를 사극으로 보여줍니다. 주인공 여진구와 설현, 이종현 등의 배우들은 초반에는 교복을 입었다가 나중에는 사극 복장을 하고 나옵니다. 하지만 이 드라마 역시 3% 남짓의 낮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KBS

<밤을 걷는 선비>는 유명 웹툰(글 조주희, 그림 한승희)을 원작으로 제작됐습니다. 본격적으로 흡혈귀와 사극의 접목을 보여줍니다. 줄거리는 흡혈귀에게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두 잃은 선비가 흡혈귀가 돼 어둠 속을 떠돌아다니면서 정의를 실현한다는 내용입니다. 웹툰 팬들로 하여금 가장 적합한 캐스팅이라는 지지를 받았던 배우 이준기가 출연합니다. 흡혈귀는 서양에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영국의 소설가 브람 스토커가 쓴 소설 <드라큐라>가 시작이라 여겨집니다.

15세기에 현재 루마니아의 일부였던 왈라키아에 실존했던 잔혹한 지배자 블라드 체페슈를 소재로 한 소설이었습니다. 이 소설이 나온 것도 서양이고, 갖가지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서 흡혈귀의 캐릭터가 확대 재생산된 것도 서양입니다. 드라마 속 흡혈귀의 속성은 기본적으로 피를 마셔야 살 수 있는 사람이고, 사람에게서 피를 빨아 마시기 쉽도록 송곳니가 날카롭게 발달해 있습니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힘이나 속도 등 신체능력이 향상되는 모습도 보입니다. 그러나 태양을 직접 맞을 수 없어 어둠 속을 헤매고, 인간과의 감정교류에서도 자신의 처지를 한탄해 쉽게 나서지 못합니다.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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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걷는 선비>의 경우처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피를 마셔야 하는 상황이 되면 비극의 정도는 심해집니다. 흡혈귀의 모습은 인간의 근원적인 고독과도 궤를 같이합니다. 늘 정체를 숨기고, 혼자 다니면서 비극의 일종일 수 있는 분위기를 잘 냅니다. 하지만 현재까지 안방극장에서 시도한 흡혈귀 드라마들은 공통적으로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피를 마셔야 하는 흡혈귀의 설정은 한국적인 설정과는 다르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한국의 공포는 근원적으로 피가 직접적으로 나온다든지 하는 부분과는 다릅니다. 한(恨)이 서린 캐릭터가 음산한 모습을 보이는 것만으로 무서움을 주기 때문이죠. 어쨌든 흡혈귀물의 안방극장 유행은 많은 창작자들이 흡혈귀에게서 극에 적합한 요소를 봤다는 증거가 됩니다. 흡혈귀는 앞으로도 코믹, 멜로 등 많은 장르와 접목할 가능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더워졌습니다. 그래서 흡혈귀의 시대인 모양입니다.

<하경헌 경향신문 엔터·비즈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