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와 문화]뮤지컬 ‘대장금’과 경희궁의 만남

새로운 문화 실험

경희궁 숭전전을 무대로 공연한 ‘대장금’.

이탈리아 로마 외곽의 카라칼라 욕장터. 흔적만 남은 폐허니 이젠 목욕하러 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건만, 지금도 해마다 여름밤이면 수많은 인파로 장사진을 이룬다. 바로 야외 특설 무대를 즐기러 온 오페라 관객들이다. 유구한 역사를 지닌 유적지는 그 모습 그대로 훌륭한 무대이자 배경이 된다.

그리스 아테네를 찾아가도 비슷한 광경을 볼 수 있다. 파르테논 신전이 올려다 보이는 아크로폴리스의 야외공연장에서는 요즘도 많은 공연이 행인을 유혹한다. 색색의 조명을 받은 돌기둥과 석조 벽면은 그 자체가 이미 탄성을 짓게 만드는 볼거리들이다. 파리의 베르사유 궁에서는 여름마다 음악 축제가 있고, 스코틀랜드 에딘버러 성 앞마당에서는 페스티벌 기간 동안 밀리터리 타투가 열린다. 역사가 문화라는 향기로 포장돼 사람들을 매료시킨다.

최근 우리도 이런 시도를 하고 있다. 봄가을 도심 경희궁에서 열리는 고궁 뮤지컬이 그것이다. ‘화성에서 꿈꾸다’ ‘명성황후’ 등 창작 뮤지컬을 선보이더니, 올해는 드라마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 ‘대장금’으로 세인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가을밤의 정취가 고풍스러운 고궁과 잘 어우러져 뮤지컬 보는 재미를 배가시킨다는 후문이다.

뮤지컬 ‘대장금’과 경희궁의 만남은 여러 가지 면에서 흥미롭고 신선하다. 사실 드라마 ‘대장금’을 뮤지컬로 만든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대극장 버전이 첫선을 보였다. 하지만 드라마의 글로벌 흥행이 부담됐는지, 초연 무대는 아쉬움을 많이 남겼다.

고궁과 만난 올해는 초연 때와 사정이 180도 달라졌다. 기대에 못 미쳤던 줄거리와 음악이 전격 교체됐고, 덕분에 무대는 역사의 현대적 해석이라는 새 옷을 입게 됐다. 조광조를 등장시켜 민정호와의 우정과 정치적 좌절이라는 멜로적인 요소를 더했고, 사랑하는 이는 모두 죽는다는 장금이의 ‘업보’와 이를 이겨내기 위해 의술로 생명을 구한다는 내면적 성숙의 해석도 추가했다. 에피소드별로 전개되던 드라마의 서사 구조를 무대에 단순 재연하기보다 TV에서 미처 하지 못한 이야기를 무대에서 들려주는 보완적 관계를 선택한 셈이다. 물론 고궁과의 만남은 제작진의 새로운 시도와 실험에 방점을 찍는 역할을 했다.

시사와 문화

무엇보다 평가하고 싶은 것은 이런 문화상품의 탄생을 가능하게 했던 관계자들의 열린 사고다. 문화재를 그저 남기고 보존해야 하는 존재로만 여기는 것이 아니라 현대적인 감각들과 조우하고 소통하는 공간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시도는 단연 돋보이는 개가다. 공연장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 공연계의 현실을 감안한다면 더욱 의미가 있는 작업이다. 아울러 문화행정은 정치적 역량 못지않게 참신한 아이디어와 발상의 전환이 절실하다는 것도 다시 한 번 일깨워주는 좋은 사례가 됐다. 서울시 관계자들의 도전적인 문화 실험에 응원과 지지의 박수를 보낸다.

원종원<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뮤지컬 평론가> jwon@sch.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