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스타 성공 키워드]개그우먼 조·혜·련

방전되지 않는 인간 배터리!

난데없이 골룸 분장을 하고 나와 전 국민을 웃겼을 때도, 과한 섹시 코드를 비롯해 온갖 비호감 퍼레이드를 펼칠 때도, 약점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맷집이야말로 그녀를 지탱해준 힘이 아니었을까.

개그맨 조혜련만 보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굳은살’이다. 단, 오래되고 방치된 사족 같은 의미의 굳은살이 아니라 첼리스트가 일생 동안 연습한 결과가 손가락 끝마디에 쌓인 굳은살이나 축구스타 박지성이 내보인 발가락의 굳은살처럼 혹독한 세월을 이겨낸, 강하고도 훈장 같은 굳은살이랄까. 그래서 조혜련을 보면 한편으로는 짠하고, 한편으로는 안심이 된다. 고생하는 엄마에게 안쓰러움과 믿음이 동시에 느껴지는 것인 양, 이 사람이라면 얕게 시작해도 결국은 깊게 끝낼 거라는 믿음, 사건이 생기면 왠지 정의롭게 해결해줄 거라는 믿음. 아이들이 ‘엄마’에게 가지는 막연한 기대처럼, 오랜 기대를 준 존재였다.

그 믿음 하나가 입증됐다. 일본 진출 2년 만에 프로그램 진행을 맡고, 일본 유명 드라마의 연기자로도 맹활약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한때는 남몰래 틈만 나면 영어공부를 하더니, 이제는 일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일본 열도를 움직인다. 일본어를 공부하기 위해, 일본인 룸메이트를 구해 숙식했던 그녀. 외국인이요 이방인이지만 어디서나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은 통하나 보다. 물론 아직 그 인기야 미미하다지만, 혼자 힘으로 일주일 중 3일은 한국에, 나머지 3~4일은 일본을 오가며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까. 윤아와 우주 두 피붙이를 떼어놓고, 홀홀단신 일본의 작은 방에서 연구하고 또 연구했을 조혜련이 대견하다.

감동, 진솔함이 주는 선물
여러 해도 더 지난 이야기다. 조혜련 부부를 주인공으로 하는 토크쇼의 사전 취재차 조혜련의 집에 초대받은 적이 있다. 조목조목 꾸며놓은 신혼집엔 여느 집과 다름없이 신혼만의 질서가 있었고, 듣기로는 살림 솜씨 하나만큼은 낙제라던 조혜련도, 알고 보니 살림꾼이다. 비록 살갑거나 따뜻한 인사 한마디 없었지만 툭툭 던지는 한마디에도 진심이 묻어났다고 할까. 욕쟁이 할머니들에게 느끼는 구수한 매력과 엇비슷했는데, 퉁명은 하더라도 투명한 느낌이었다.

연예인이라면 사람을 대할 때, 누적된 경계에 새로운 경계가 더해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조혜련만큼은 스스로 바닥까지 다 보여줘도 외부에 대해 걱정과 두려움이 없어 보였다. 최선을 다하는 데서 나오는 당당함이랄까. 아마도 네 다섯 시간쯤 흘렀나 보다. 거실에서 한참 동안 남편과 인터뷰가 이어졌는데, 그녀는 남편이 제작진을 향해 무슨 이야기를 하건 제동을 걸지 않았다. 그리고 본인이 민망할 법한 하소연이 쏟아지기 시작하자, 남편의 입단속을 하기는커녕 슬그머니 자리를 피해 안방으로 들어가버렸다. 대부분 연예인이라면 노심초사 주시하고 제재할 텐데, 사전 ‘검열’은커녕 자리를 피해주다니. 그 이후에도 방송에서도 이러쿵저러쿵 단서 조항을 달지 않았다. 솔직함을 넘어, 그녀는 카메라를 향해 그 어떤 필터링도 하지 않았다는 점이 당시에 무척이나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서 또 두어 번 마주쳤다. 아마 몹시 바빴던 모양이다. 찡그린 인상에 피곤함이 느껴졌지만, 카메라 앞에서는 ‘어떻게 하면 모두 원하는 바를 표현해낼까’에만 집중했다. 가난한 형편 때문에 생선장사를 하며 어머니를 도와야 했던 그녀는 스스로 학비를 벌기 위해 안해 본 일이 없을 정도로 강한 생활력의 소유자다. 그리고 한 번도 스스로 과거를 부끄러워 한 적이 없다. 왜 나는 팔다리가 짧은 거냐고, 왜 나는 웃긴 얼굴로 태어났냐고 볼멘 소리를 하지만, 웃음의 소재일 뿐 진정으로 타인을 원망하는 모습을 본 적은 없다. 난데없이 골룸 분장을 하고 나와 전 국민을 웃겼을 때도, 과한 섹시 코드를 비롯해 온갖 비호감 퍼레이드를 펼칠 때도, 약점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맷집이야말로 그녀를 지탱해준 힘이 아니었을까.

“방송할 때는 늘 씩씩했어요. 한두 시간 전에 바로 일본에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탔으면서도 녹화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몸을 던졌어요. 잠시 쉬는 시간에는 너무 힘들어 해서 매니저가 근육을 풀어줄 정도로 고된 상황이기도 했는데, 방송에서는 절대로 표내지 않더라고요.”

함께 일하던 모 작가는 조혜련의 성공 에너지를 ‘체력과 노력’으로 꼽았다. 일본 방송가에서는 이름만 불러도 톤업된 밝고 큰 목소리로 대해야 비즈니스에 대한 예의라고 한다. 국내에서 대중에 인지시켜놓은 조혜련의 목소리가 아니라 항상 두 단계 더 높이고 볼륨을 키워서 웃으며 밝은 모습을 보여줘야 했던 점이 가장 큰 스트레스였다는 조혜련. 몸이 아파서 눈물이 나올수록 더 밝은 모습으로 무대 위에 섰던 게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이쯤에서, 태보와 운동 마니아로 알려진 조혜련의 체력 괴담(?) 하나. 모 연예뉴스 프로그램에서 무에타이 관련 영화 홍보차 한국에 내한한 ‘옹박’과 조혜련의 대결이 있었다. 옹박이 워낙 강한 상대라 재미있는 상황만 연출하면 되었는데 이변이 일어났다. 당시 태보 전도사로 맹활약하던 조혜련이 특별한 워밍업도 없이 가뿐하게 옹박을 이겨버린 것. 아무도 예상치 못한 결말에 옹박도 웃고 연예프로그램 제작진도 웃었는데, 더욱 놀란 것은 그녀의 정체가 ‘개그우먼’이라는 사실에 옹박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고 한다.

표현에 서툴러도, 속정 깊은 ‘울엄마’
아이들 사랑이 끔찍하기로 유명한 조혜련. 대기실서 종종 그녀가 농담삼아 하는 말이 있다. 아이들이 엄마 얼굴을 못 알아보고, 남편과 오랜만에 단둘이 있으면 서먹서먹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남편은 그녀의 빈 자리를 누구보다 잘 채워준다. 아내 몰래 일본어를 공부해서 아내를 놀라게 했다는 일등 외조의 주인공.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쉴 틈 없이 방송에만 전념하다 보니 아무래도 가정생활에 소홀한 게 인지상정이지만, 아이들 얘기만 나와도 금새 눈에 눈물이 맺힌다. 프로그램에 동반 출연한 아이가 “엄마, 우리랑 많이 놀아주세요”라고 말할 때 눈물 흘리던 조혜련의 모습에서 일하는 엄마의 비애를 느꼈다. 한편으로는 일 욕심이 너무 과하지 않냐는 생각도 들었지만, 개인의 삶을 희생하지 않고서야, 그렇게 어느 한 분야에 올인하지 않고서야 남들과 다른 결과를 얻기 힘들지 않은가.

그래도 조혜련은 비극을 희극으로 바꾸는 힘. 골룸이 되어 아이들을 웃게 하는 상황 역전의 내공이 있지 않은가. 그녀가 방송에서 아무리 미운 짓을 골라서 해도, 곧장 웃음으로 변모하는 이유는 누가 봐도 열심히 사는 그 생활력에서 기인하지 않을까?

톱스타 성공 키워드

그러니 지금까지 만들어온 구수한 굳은살, 코미디 프로그램 <오늘은 좋은날>에서 보여준 ‘울엄마’만의 시큰한 ‘한국 엄마’의 정서가 그녀를 통해, 일본을 강타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남미영 방송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