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스타 성공 키워드]포근하고 따뜻한 배우 김·정·은

제2회 서울충무로 국제영화제에 참석하기 위해 레드카펫 위를 걸어가는 김정은. 그녀의 힘은 주변을 밝게 하는 포근하고 명쾌한 에너지다. <경향신문>

살갑고 똑똑하고 현명하기까지 해서 어디 하나 흠잡을 데 없지만, 이해관계가 얽히면 절대로 손해볼 것 같지 않은 사람. 웬만해서는 NO라는 단어를 입 밖에 내지 않지만, 결정적인 순간만큼은 웃으면서 또박또박 “그건 안 되겠는데요”라고 말할 것 같은 사람. 싫은 걸 싫다며 정색하지 않고 유머로 감싸되, 세련되게 자신을 방어할 줄 아는 사람. 결정적으로, 인간적인 빈틈과 소탈한 모습 안에서 자신이 어떻게 하면 사람들한테 사랑받는지 아는 배우. 연예뉴스 프로그램 때문에 촬영장에서 스쳐 본 게 전부지만, 내 멋대로 쌓아온 김정은의 이미지는 이런 것들이다.

인상 찡그리는 모습 본 적 없어
공부도 잘하고 예쁘장하고 착한데다, 심지어 은근히 전략적이기까지 한, 그러나 밉지 않은 그 야무짐이 미안하게도 기분 나쁘지만, 한편으로는 질투 나는 ‘엄친딸’ 정도랄까. 그녀에게 뭔가 섭섭한 게 있다고 가정할 때, 인고의 시간을 거쳐 말하려던 바로 그 찰나. 예상 외로 가뿐하게 한 발 앞서 “이러이러해서 섭섭했지? 미안해” 하고 ‘선제공격’을 해 앙심 품은 상대방을 곧바로 떨떠름하게 만드는 천부적인 센스를 지녔다고 할까.

김정은을 두고 누군가는 ‘박제된 캔디’라고 했지만, 캔디보다는 세상 물정에 정통할 것 같고, 동일한 수법에 매번 당하는 캔디하고는 다르게, 마냥 뒤통수 맞을 것 같지는 않다.

검증받은 김정은의 힘이란, 주변을 밝게 하는 포근하고 명쾌한 에너지다. 지금까지 연기 외에 한 번도 그녀가 진심으로 인상을 찡그리는 것을 본 적이 없다. 피치 못할 사건에 연루돼 세상으로부터 누명을 쓸 때도, 인상 한 번 쓰지 않았다. 한동안 그녀가 생글생글 웃으면서 “부자되세요~” 하고 외칠 때 ‘아빠의 피곤함이 딸아이의 애교에 한순간에 녹는다는 차원이 바로 이런 거구나’ 하고 느낀 적이 있다. 타고났건 만들어졌건 그 밝은 기운과 에너지가 보는 사람까지 웃게 한다면 얼마나 대단한 능력인가. 그녀가 수년째 기업에서 선호하는 광고모델 ‘0순위’임은, 예의 그 밝고 포근한 에너지 덕분일 것이다.

옛말에 모든 소문은 현명한 사람에 이르러 멈춘다고 했는데, 흡사 그 어떤 분쟁이라도 김정은의 미소 앞에서는 멈출 것 같다. 이미지 좋은 스타 김정은이야말로 절대 도덕의 범주 안에서 움직이지 배신이나 파행 따위의 단어는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 호감도 높은 스타가 분명하다.

하지만 배우가 어떤 정형에 갇힐 땐(설령 그것이 좋은 이미지라고 해도), 배우로서 한계를 인정하는 일이 돼버린다. 같은 맥락에서, 김태희나 전지현이 아무리 호감도 높은 미소를 지녔다 한들 배우로서 그들을 신뢰하기는 힘들었다. 김정은 역시 아슬아슬하게 그 경계를 비껴나가긴 하지만 한 뼘만 더, 한 폭만 더, 배우로서 넓고 높은 성장이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드는 건 왜일까. 사실 뚜렷함 없는 필모그래피에, ‘배우 김정은’만 믿고 영화를 선택했던 적은 없다. 영화배우로서의 신뢰보다는 말랑말랑한 감각과 기분 좋은 아우라가 좋았을 뿐.

사랑스러움만큼은 변치 말아 주시길
오래전 김정은을 발견할 때만 해도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드라마 <해바라기>에서 삭발 투혼을 보이고, 영화 <가문의 영광>에서 걸쭉한 사투리를 연기하는 김정은이 대견했다. 여배우가 “내가 어떻게 하면 예뻐 보일까”에서 자유로워 보이는 그 ‘쿨’함이야말로 그렇게 예뻐 보일 수 없었다. 이후 드라마 <파리의 연인>에서는 여자인 나조차도 설레게 하는, 또래만의 건강함이 있었다. 그런데 거기에서 오래 머문다. 기대치가 너무 높아서일까. 한동안은 기분이 좋아서 일부러 그 미소를 찾아보았건만, 이제는 조금 지루해질 무렵이다. 착하고 예쁘고 똑똑하고, 노력까지 한 그녀에게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갈증을 느꼈다.

<김정은의 초콜릿>에 동반 출연한 이서진과 진행자 김정은. |sbs제공

연기자는 연기에서 자기 자신을 얼마나 철저히 버리느냐에 따라 연기의 색깔이 달라진다고 한다. 그 사람을 연기하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게 아니라 실제 ‘그 사람이 되는 일’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얼마나 노력하는 배우인지는 알겠으나 김정은의 연기를 보면 정극과 코믹의 그 어디 중간쯤 서 있는, 모든 캐릭터 안에서 김정은 그 자신이 보이는 건 나만의 얘기일까.

삼순이의 질퍽함과는 또 다르게 자기 자신을 잘 표현하는 ‘애기’가 가슴 뿌듯할 정도로 좋았지만 후드득 쏟아지는 트렌디 드라마 덕분에 ‘애기’에게 내성이 생겼다. 그러니 배우는 얼마나 힘든지 내 알 바 아니요, 더 강한 그 무엇 또는 전혀 다른 그 무엇을 자꾸 요구하게 된다. 아, 스타로 사는 일은 얼마나 많은 부담과의 싸움일는지!

음악토크쇼 <김정은의 초콜릿>을 보면, 참 사랑스럽다. 프로그램에 대한 애정, 게스트에 대한 배려가 눈빛 하나, 말투 하나에도 묻어난다. 프로그램 홈페이지에 녹화 현장을 스케치한 다이어리를 직접 꾸미는데, 김정은 특유의 말줄임표를 자주 사용한 코멘트들이 잔잔한 중독성이 있다. 실제 녹화 때도 디지털카메라를 챙겨서 일일이 사진으로 기록한다는데. <김정은의 초콜릿>의 메인작가 이지은씨는 “준비가 너무 철저한 MC예요. 오히려 제가 몰랐던 부분을 정은씨를 통해서 알기도 할 정도니까요. 그리고 뭐든 수용을 잘 하는 편인데요, 톱스타 중에 그렇게 마음이 열려 있는 분을 보기는 드물거든요. 항상 제작진 제의에 귀를 기울이고, 이서진씨와 동반 출연 문제도 프로그램에 필요하다면 마다하지 않는 걸 보고 놀랐어요”라며 김정은의 성공 키워드를 ‘열정과 배려’로 꼽았다. 충무로 시사회 현장에서도 프로그램에 섭외하기 위해 동료 배우들을 러브콜한다고. 함께 일할수록 “기분 좋은 MC”라며 칭찬이 마르지 않았다.

모 배우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선배 배우가 그랬단다. “이제 네가 진짜 연기를 할 수 있겠구나.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의 심정을 알았으니 가까운 이를 잃었을 때의 연기를 네가 가지겠구나”라고.

톱스타 성공 키워드

여배우에게는 세월의 이랑이 패인 주름 하나까지도 다 의미가 있다. 때론 혹독한 대중의 매나 상처가 남긴 흔적마저도 아름답게 숙성시키는 게 그들의 남다름이다. 머지않아 자랑스럽게 ‘연기파 배우 김정은’의 반가운 변신을 또 한 번 쓸 수 있을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그게 어떤 ‘파격’이든 반갑게 기다릴 용의가 있다. 그녀가 생각보다 너무나 빨리 ‘애기’의 열풍만큼 또 다른 시도로 우리를 찾아오리란 걸 믿는다. 아니 ‘붐’이 되지 않아도 좋으니, 차근차근 그리고 깊게 걸어주기를 바란다.

<남미영 방송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