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스타 성공 키워드]‘또 다른 존재감’ 개그맨 신동엽

신동엽은 치고 빠질 때를 알고, 촌철살인으로 웃음 포인트를 짚어내는 똑똑한 개그맨이다.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동료 중 한 명은 신동엽을 두고 “뇌를 꺼내서 보고 싶은 사람”이라고 했다. 순발력 있는 진행, 이를테면 예견하지 못한 돌발 상황에서도 마치 잘 짜인 각본인 양 매끄럽게 수습하는 실력만큼은 강호동이나 유재석도 따라올 수 없는 경지라고.

그동안 필자가 지켜본 신동엽의 이미지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신정환의 재치와 순발력이 재기발랄함 수준에서 머문다면, 신동엽은 재치에도 무게를 담아낼 줄 아는 사람이요, 치고 빠질 때를 아는,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촌철살인으로 웃음 포인트를 짚어내는 정말 ‘똑똑한’ 개그맨이다. 눈치가 너무 빨라서 오히려 얄미웠으면 얄미웠지, 느슨한 모습이라곤 신동엽과 연결시킬 수 없는 전혀 다른 세상의 얘기다.

그런데 어느 순간 화면에서 보이는 그의 모습에서 느슨함과 망설임을 보았다. 그게 의도적인 절제이건, 의도하지 않은 주눅이건, 왕년의 신동엽을 믿어온 시청자 입장에서는 아쉬울 따름이다. 방송가에서는 그가 사업을 시작하고부터 혹시 방송에 열정을 잃은 건 아닌지 등 말들이 분분했다.

변태 연기만큼은 지상 최고!
사실 요즘 신동엽은 예전만큼 자유롭지 못한데다가, 그의 최고 전성기 시절과 비교해 주춤한 것은 사실이다. 까다롭기로 소문난 신동엽이, 자신의 변화를 누구보다 먼저 고민할 텐데. 그 고민의 결과로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스스로 흘려보낼지, 깜짝 놀랄 만큼 새로운 시도를 할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분명 ‘신동엽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 있다. 요즘 방송 대세는 떠들고 웃는 ‘수다방 토크’지만, 신동엽은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고 확고하게 굳힐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극화된 코미디 연기를 가장 잘 하는 사람 중 하나가 신동엽이다. 시즌제로 제작했던 <헤이헤이헤이>는 신동엽을 위한 프로그램이라고 할 정도로 그의 인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신동엽은 있는 그대로 자신을 내어 보이는 리얼리티는 약해도, 연극적인 재능은 누구보다 강하다.

한 예로 그는 토크 중간중간 벌떡 일어나거나 몸을 많이 쓰는 편에 속한다. 연극적인 제스처로 말의 시너지를 살리는 사람. 가만히 앉아서 하는 말꼬리 잡기의 개그에는 낯설어도, 출연자에게 룰을 정확히 분배하고 진행을 이어가는 깔끔한 솜씨는 나무랄 데가 없다. 신동엽은 본인이 잘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정확하게 분별하고 욕심을 내지 않는다고 한다.

필자는 한때 그를 통해 슬랩스틱 유머가 보여주는 원초적인 즐거움을 경험했다. 누군가는 저급하다고 할지언정, 웃긴 건 웃긴 거다. 가끔 수다나 말이 주는 피곤함 말고 그런 즐거움이 그리울 때가 있으니까.

평소엔 과묵, 목소리조차 아끼는 사람

2006년 6월 신동엽은 선혜윤 PD와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 후, 그의 모습에서 안정적인 느낌을 받는다는 사람이 많다.

화면 밖의 신동엽은 과묵하다. 함께 하는 스태프조차 어느 정도 친하지 않고서야 제대로 활짝 웃는 모습을 보기 힘들다고. 대기실에서 인터뷰할 때도 예의바르면서 안전거리를 지키는 무표정한 모습이다. 말 한마디 주고받는 사이는 아니지만 오다가다 만난, 아니 목격한 신동엽의 표정은 늘 과묵하고, 왠지 모를 어둠의 아우라(?)가 있다.

아무리 친해도 막내 스태프들에게조차 존댓말을 하는 사람, 아무리 친해도 속내를 드러내지 않을 것 같은 사람. 함께 진행하는 진행자에게까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대하는 사람(그 때문에 모 진행자에게서 섭섭하다는 말을 수차례 들어야 했다고). 그러니 종종 동종업계 방송인의 불만을 살 때가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 이면엔 도도함이나 어떤 권위적 태도가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낯가림이요, 내성적인 성격이 빚어내는 오해일 뿐이라고.

<경제 비타민>을 함께 했던 남미경 작가는 신동엽의 성공 요인으로 ‘자기 관리’와 ‘타고난 순발력’을 꼽았다. 그는 “평소에 별로 말이 없고, 화면에서 모든 걸 쏟기 위해 속삭이거나 아주 작은 소리로 말하는 편입니다. 그게 곧 목소리를 관리하는 차원이란 걸 알았을 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함께 녹화할 때면 제작 방향을 정확하게 짚고 편집 포인트를 잘 잡히게 유도하는 면도 있어요. 순간순간 받아치는 재치 있는 멘트는 훈련으로 만들어낸 게 아니라 타고난 것 같아요”라고 설명했다.

결혼 후, 그의 모습에서 안정적인 느낌을 받는다는 사람이 많았다. 그의 지인들은 그에게 현재 삶을 뒤흔들 만큼의 열정은 없을지라도 소중하게 얻은 ‘안정’을 그 무엇과도 바꿀 의향이 없어 보인다고 했다. 그에게 가정은 결혼 전 보여준 ‘왠지 모를 어둠‘을 치유해준 구원투수였을까. 그와 함께 일했던 한 작가는 “언젠가 아이와 아내와 함께 인사동 나들이를 하러 간 적이 있대요. 그 순간을 말하는 신동엽씨 표정은 여태껏 그 어떤 표정보다 행복하고 진지해 보였어요. 그 순간 아, 이 사람은 가정 안에서 정말 행복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라고 털어놨다.

그가 안정을 찾은 것도, 잠시 주춤하는 것도 좋지만, 여기서 마음을 놓지 말고, 한 번 더 다지길 바란다. 남들 한다고 다 해야 하는 건 아니다. 남들과 다르니 더 멋진 일일지도 모르지 않나. 그러나 잠시 시류에 비껴날지라도 ‘신동엽 아니면 안 될’ 필살기에 두 배 이상의 노력과 헌신을 기울이길 기대해본다.

동명이인의 동엽과 동엽의 해프팅

톱스타 성공 키워드

취재 중 알게 된 <경제 비타민>과 관련한 재미있는 에피소드 하나. 프로그램 녹화를 마치고 차에서 낮잠을 자던 신동엽의 전화 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신문에 ‘신동엽이 갑작스러운 화재에 옆집 사람을 구했다’는 미담이 났는데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전화였다. 알고 보니 같은 프로그램의 조연출 이름이 ‘동엽’이었는데, 화재가 나서 옆집 사람을 구해낸 것도 동명이인의 ‘동엽’씨였다는 것. 마침 프로그램 PD가 병원에 전화해서 “동엽이가 그 병원에 입원해 있으니 신경 써달라”는 전화를 하고 있는데, 기자가 지나가다가 이 소식을 듣게 되었다. <경제 비타민>과 동엽. 당연히 기자는 기사를 전송했고, 덕분에 병원에 입원해 있던 동명이인의 PD는 갑작스레 자신을 신동엽으로 오인하고 찾아온 병원 관계자들 때문에 어안이 벙벙했다.

<남미영 방송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