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스타 성공 키워드]개그맨 남희석의 ‘장난과 능청’

유재석·강호동이 있기 전 남희석이 있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출연이 뜸해지면서 잊혀진 개그맨이 될 줄 알았지만 그는 성공적으로 컴백했다. <경향신문>

남희석의 표정은 묘하다. 장난기 반, 짜증 반이 공존하는 표정. 하회탈이라는 별명답게 환하게 웃다가도 금방이라도 툴툴댈 것 같은 악동의 이미지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그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슬그머니 웃음이 솟는다. 사석에서 남희석은 그렇게 웃길 수가 없다. 5개월가량 함께 프로그램을 해본 것 치고 친분을 많이 쌓은 건 아니지만 녹화날이 기다려질 정도였다.

사진 한 장을 찍어도 그냥 찍지 않았다. 빨랫줄에 널려 있는 빨래를 흉내내기도 하고, 어떻게든 소품을 구해 수건 한 장으로도 사람을 웃게 만든다. 상대를 웃겨야 본인의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일까. 무대 밖에서도 그는 기괴하고 엉뚱한 장난꾸러기였고 꿈틀대는 자신의 에너지를 가만히 누르고 있기가 힘든 개그 본능의 소유자였다.

주변을 웃게 만드는 천상 개그맨
혹시 세상에서 가장 참기 힘든 일이 ‘진지하거나 지루한 상황’인 건지 한 번 물어보고 싶을 정도였다. 개그맨이라면 늘 ‘주변을 웃겨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지 않는 사람이 없겠지만, 그는 스태프 한 명 한 명에도 특징적인 부분을 유머의 소재로 삼아, 주변을 웃게 만든 천상 개그맨이었다.

지금의 유재석·강호동이 있기 전 태초에 남희석이 있었다. 그를 섭외하려고 다섯 시간이나 쇼 프로그램 대기실에서 기다려본 적도 있고, 그의 냉대에 가슴을 쓸어내린 적도 있다. 최고의 인기를 구가할 때 인터뷰 멘트 하나 따보겠다고 대기실 밖을 서성이면서 겨우겨우 성사시키고 기뻐했던 기억도 난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텔레비전만 켜면 나오던 그가 차츰차츰 뜸해지기 시작했다. 그가 힘들어한다는 풍문이 돌았다. 그렇게 잘해주던 동료들조차 그가 일이 뜸해지자 돌아섰다는 말도 들려왔다. 희대의 톱스타는 술을 마시고, 사람을 멀리하고, 그렇게 한동안 힘든 시간을 보내며 잊혀 가나 싶었다.

그 무렵, 그는 다시 돌아왔다. “언제 없었나?”라고 느낄 만큼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짜잔~ 하는 이벤트 한 번 없이 소란과 요란을 자제한 컴백이다. 그를 향한 비난과 홀대는 없다 할지라도, 톱스타에게 예기치 못한 공백이란 안면 마비를 가져올 정도로 스트레스 그 자체였다고 한다. 다시 돌아온 남희석은 확실히 달라졌다.

남희석과 함께 를 할 때다. ‘왜 지금 남희석일까’ 스태프인 나조차 의문을 품으며 준비했던 게 미안할 정도로 그는 최선을 다했다. 가끔 전혀 웃기지 않는 농담으로 분위기를 썰렁하게 한 과도한 의욕을 빼고는 여전히 웃겼고, 친절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공백이 느껴지는 대목도 있다. 오래된 몸개그와 다소 올드한 유머 패턴이 가끔 어색하기도 했다. 단 하나 한이 서린 시간에 대한 오기나 독기도 없이, 그저 뭔가 삶의 섭리를 터득한 사람처럼 그는 부드러워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다시 돌아온 남희석은 달라졌다
결혼 후, 그가 아빠가 된 날, 병원으로 찾아간 적이 있다. 산고의 고통을 겪는 아내 곁에서 꼬박 시간을 같이 했던 그는 그 진지한 순간에도 우리를 웃겼다. 그 어떤 심각한 상황도 장난스럽게 만들어버리는 재주, 아내는 산고 중에 또 얼마나 웃었을까. ‘저런 사람이 정치인 토크쇼를 하면 얼마나 웃길까’ 하고 내심 생각한 적도 있다.

<미녀들의 수다>의 인기는 예민하지도, 가볍지도 않은 남희석의 진행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 kbs 제공

<미녀들의 수다>에서 남희석의 역할은 컸다. 너무 예민하지도 않고 너무 가볍지도 않게, 스리슬쩍 능구렁이마냥 산도 넘고 바다도 넘고, 동네 수다판처럼 술술 이야기를 끌어낸다. 그러다가 대어도 낚아낸다. 원래 자신의 자리인 것처럼 ‘남희석표’ 진행을 굳혀간 <미녀들의 수다>엔 그만의 공로가 컸다. 남희석이 제 아무리 능청스럽게 집요해도, 무례하다는 느낌을 덜 받는 이유는 농담처럼 진행하는 코드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출연자들과 격의 없이 지내기로 유명한 그는, 가끔 미녀들을 집으로 초대해 저녁식사를 대접하기도 한다. 함께 일한 제작진이 하나같이 말하기를 <사돈 처음 뵙겠습니다>나 SBS의 <잘 살아보세>를 진행할 때도 시골 어르신과 출연자 들에게 동네 어르신 모시듯 극진히 대접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가장 의아했던 대목은 아침방송 진행자로 나섰을 때다. 삶의 깊이를 논하기엔 너무 장난스러운 느낌이고, 쇼적인 요소가 전혀 없는 정통 토크쇼란 그에게 맞지 않은 옷 같았다. 토크쇼에서 진행자는 있는 듯 없는 듯 자신을 비워야 한다. 주인공은 게스트지 본인이 아니다.

그러기엔 남희석은 존재감이 눈에 띄는 진행자였다. 침묵하면 남희석답지 않았고, 끼어들면 상황은 갑자기 너무 밝아졌다. 특히 농담 따먹기나 말꼬리 잡기에 익숙한 그가, 나이 지긋한 분들이 울며 웃으며 고백하는 삶의 굴곡 앞에서 어떻게 대처할까 궁금했다. 남희석 특유의 장난기를 능가하는 어른스러운 매력을 발견할까 기대하기도 했다. 솔직히 별 다를 바는 없었다.
그에게 아침 토크쇼는 확실히 낯설었다. 상대방의 고백에 상응하는 본인의 코믹한 에피소드를 만들어내느라 여념 없는 모습이 불편하기도 했다. 부담을 좀 놓으라고 한다며 남희석만의 색깔을 놓으라고 하는 말과 같을까.

어쨌든 남희석에게 응원의 박수와 채찍을 함께 들고 싶다. 부디, 화려한 과거에 허우적대며 아집만 남은 모 개그맨의 전철을 밟지 말고, 노력하는 지금의 모습으로 승승장구하기 바란다.

톱스타 성공 키워드

물론 잔인한 공백기를 잘 버티어내고, 자신과 싸움에서 이겨낸 것만으로도 충분히 박수받을 자격은 있다. 또 자신만의 자리를 차근차근 다져가는 모습이 대견한 부분도 있다. 얼마 전 토크쇼에 출연해, 자신의 아픈 시절을 고백하는 모습을 보았다. 자신의 안면마비 경험마저 우스꽝스러운 에피소드로 쏟아내기까지 그는 얼마나 자신을 괴롭혀왔을까. 남의 아픔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그 모습을 두고 우리는 ‘성숙’이라고 부른다.

<남미영 방송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