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스타 성공 키워드]빈틈이 없는 남자, 가수 비

8월 24일 베이징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열린 폐막식 행사에서 한국 가수 비가 출연해 아시아를 대표하는 가수 입지를 굳혔다. <경향신문>

요즘, 공자의 <논어>를 읽고 있다. 퇴근 후에 읽는 고전의 맛이 아! 하는 탄식과 함께 마음과 머리를 친다. 읽어야 해서 읽을 때는 눈에도 들어오지 않더니만, 모든 구절을 곱씹고 또 곱씹을 정도로 음미하자니, 고전만큼 좋은 게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반듯한 고전 전집만 사서 바치는 것만 부모의 역할에 그치는 게 아니라 “왜 우리 아버지가 나를 때려서(?)라도 고전을 읽히지 않으셨나”로 생각이 미친다. 엉뚱하게도 화살은 부모에게 가니 이것도 참 우스운 일이다.

느닷없이 시대를 역행하는 고전에다, 공자냐고 하겠지만, 뒤늦게 영어 공부에 빠져 있는 ‘비’에게서 내 모습을 봤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서다. 그래서 숱한 인생 선배들이 “나중에 후회 말고 공부해”라는 말을 그토록 자신만만하게 하는 모양이다. 비는 학창시절 지독한 문제아였고, 춤에 빠져 있는 춤꾼이었고, 그런데도 누구 하나 야단치는 이 없는 고립된 아이였다. 영어 수업시간에 틈만 나면 안무 생각을 하고, 그도 아니면 졸던 비였다.

그러나 지금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영어 공부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단다. 영어를 잘 하고 싶은 방법이라면, 뭐든 흡수하겠노라며 열정을 불사르고 있다. 닥치는 대로 책을 읽고, 개인 교사를 붙여 공부를 하는 지금, 수업시간에 왜 졸았을까를 후회한단다. 무엇이든 자신만의 타이밍이 있나보다. 다소 신비주의로 일관하던 그가, “말이 하고 싶어 죽는 줄 알았다”며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일상을 적나라하게 까발릴 때, 또 한 번 자신만의 ‘때’를 실감했다. 그리고 비가 말하고 싶어지는 이 ‘타이밍’이야말로 팬으로서 고맙기까지 했다.

선정적인 코드에 기대지 말았으면
일찍이 지독한 가난을 경험하고, 세상으로부터 외면받은 사람은 빨리 철이 드는 법이다. 비를 처음 봤을 때도, 또래에 비해 참 단단하고 야무진 느낌의 인상을 받았다. 그를 처음 본 것은 박진영 컴백 동행 촬영을 나갔던 현장이다. 분명 주인공은 박진영인데 그 뒤로 눈길이 자꾸만 갔던 장면 하나. 촬영진을 의식하지 않고, 안무 연습실에서 무아지경이 되어 연습하고 있던 백댄서 비였다. 당시 이름 없는 백댄서였지만, 어쩐지 시선이 계속 갔다. 남자에게 쓸데없이(?) 눈길을 주는 스타일은 아닌데, 스스로 생각해도 참 희한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비’를 봤을 때, “아 역시”라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 오묘한 끌림의 기억을 더듬어 보니, 데뷔는 ‘D-day’여도, 오랜 시간 그날을 위해 차근차근 걸어온 것뿐이요, 지금이 당연한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왜 당연하다고 여겼을까. 그리고 지금까지 비가 할리우드에 진출하고, 미국 빌보드 차트 순위에 올라가는 동안 단 한 번도 “왜?”라는 의심을 던져본 적이 없다. 짧지만 그에게서 강렬한 에너지와 열정, 확고한 목표의식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는 무명 때나 지금이나 “언제 되도 될 사람”으로 남아 있다.

데뷔 전부터 지금까지 비는 누구보다 성실한 가수였다. 머리 좋고, 타고난 재능은 젊었을 때 잠깐이요, 노력하고 성실하게 준비하는 데 따라갈 자 없다고 하지 않았나. 비는 타고난 재능에, 노력을 덧입혀 스스로 발전시켜왔다. 뜨고 나서도 빈틈이 없다.

돈 없어 어머니 잃었던 불우한 유년
아무도 손을 내밀어주지 않던 인생의 쓴맛을 경험했기에 최고가 되어야 하고, 성공을 해야 하는 목표가 분명했을 것이다. 내가 노력하는 것 외에 이 세상 누구 하나 믿을 곳 없다는 것도 너무 이른 나이에 터득했을 것이다. 언젠가 방송에서 돈이 없어 어머니를 잃어야 했던 불우한 유년을 고백하던 그의 눈에서 ‘한’을 보았다. 세상을 거머쥔 지금도 그는 세상에 대해 원망과 분노가 있어 보였다. 혹시 그 분노야말로 더 나은 춤을 추게 하고, 더 나은 비를 만드는 엔진이 되어 준 게 아닐까.

가창력이나 퍼포먼스 어느 한 분야에만 치중하지 않고 50 대 50으로 균형을 갖추어 성장하는 것 같다. 또 현란한 춤을 추면서도 안정감 있게 노래하는 최초의 댄스가수가 되는 것 같다. 비가 주었던 신선함, 풋풋함, 박진감이 좋았다. 시간이 지나자, 비만의 색깔이 만들어졌다. 유행 코드를 만들어내는 발빠른 감각도 톱스타다웠다. 이따금 가창력이 안 되면 퍼포먼스로, 퍼포먼스가 안 되면 영화나 연기 같은 이벤트로 사람들의 시각을 만족시키는 것까지 그는 영리한 스타였다.

얼마 전 연말 각종 시상식에 예외 없이 초대받은 비의 일화다. 2008년 청룡 영화상을 진행한 이효정 작가는 비의 무대 열정에 놀랐다고 한다.

“전적으로 초대가수들에게 하고 싶은 퍼포먼스의 자유를 줬어요. 다른 아이돌은 고민하는 모습이 없었습니다. 준비된 시간에 와서 기존 방식을 답습하고 간다는 느낌이었어요. 다른 곳에서 쓴 음원을 그대로 보내온다든지 제작진의 수많은 제안도 깊이 고민하지 않고 거절하는 모습이었거든요. 하지만 비만큼은 여러 번의 전화통화와 회의 끝에 무대 제안을 먼저 많이 해와서 놀랄 정도였어요. 영화와 관련한 무대 세팅 등 수많은 제안을 먼저 하더라고요. 그 아이디어가 기발했습니다. 결국 제작비 문제로 많은 부분은 시도하지 못하고 노래만 길게 하기로 정리됐는데, 시상식 날 장미꽃 한 다발을 직접 마련해 김혜수씨에게 전달하는 깜짝 이벤트에 놀랐어요.”

2008 대한민국 영화 대상을 진행한 모 작가는 비의 무대 매너가 아찔할 정도였다고 했다.
“생방송 중에 갑자기 상의를 찢어서 스태프들이 다 놀랐죠. 사전에 얘기된 바 없었거든요. 하지만 무대 카리스마나 비만이 지닌 특유의 무대 매너가 문제가 되기는커녕 관객의 열기만 더 채워줬어요.”

비는 평범한 무대를 보여주지 않는다. 그를 믿고 찾은 팬을 허탕치게 한 적이 없다는 얘기다. 늘 쇼적인 요소를 고민하고, 입체적인 무대를 위해 고민하는 비의 태도는 가수로서 훌륭하다. 단 하나 선정적인 코드에 기대지 말고 조금 더 다양한 음악 세계를 보여주었으면 한다. 사실 은근한 성적인 코드는 용납이 되지만 가끔 너무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과할 때가 있다. 상의를 찢고 식스 팩 근육을 보여주는 정도야 깜찍하다. 그러나 레이니즘의 선정적 가사는 분명 과했다.

톱스타 성공 키워드

젊은 남자의 호르몬 그 자체로 상징되고 싶은 걸까? 성에 관해 터부시하고 금기하는 시대도 아닐진대,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반항하듯 노래할 필요가 있을까. 진짜 남자다움은 페로몬 팍팍 발산하는 땀에 전 모습보다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는 그 자체에 있다는 것을 비처럼 영리한 스타가 모를 리 없을 것이다. 한 가지 더 비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그 무엇도 완전하거나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와 인품을 조금 더 갖추었으면 한다”는 것이다.

<남미영 방송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