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와 문화]피겨 요정이 만들어내는 음악 이슈

가수를 인터뷰하면 꼭 물어보는 것이 있다. 가수를 하게 만들었고, 나아가 인생을 바꾸게 된 음악이 무엇인지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질문이라 흥행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다. 아무리 평론가 직함을 달고 추천해도 듣지 않던 사람들이 가수나 유명인이 추천한 곡은 호기심을 갖고 꼭 들어본다. 당장은 안 들어도 일단 기억엔 잘 남는 것 같다.

김연아는 피겨 스케이팅 선수고 스포츠인이란 점에선 음악과 무관하지만, 그녀가 음악계에 미치고 있는 영향을 생각하면 웬만한 매체 하나보다 낫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우선 소녀시대 ‘지(Gee)’를 들 수 있다. 1년 만에 새 음악을 들고 나온 소녀시대는 과잉경쟁으로 치열한 아이돌 시장에 확실한 화두를 던져야 했는데, 이 수고를 김연아가 덜어주었다. 김연아는 자신의 미니홈피의 배경음악으로 소녀시대의 신곡 ‘지’를 선곡했고, 이것이 빠른 속도로 기사화되어 여러 매체를 덮었다. 신곡을 알릴 기회가 알아서 생겨난 것이다.

이것이 이슈로까지 번졌다는 ‘행운’ 차원에서만 다뤄질 문제는 아니다. 이 사건에서 사람들은 김연아가 소녀시대를 ‘응원’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국민동생이자 자기 분야에서 최고의 일가를 이뤄낸 ‘실력파’ 아이돌 김연아의 응원은 어떤 평론가나 전문가, 혹은 선배 가수의 칭찬보다 더 신곡 ‘지’의 이미지를 업그레이드시켰던 것이다.

김연아의 배경음악 선곡은 다른 영역에서도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번엔 미니홈피가 아니라 은반의 배경음악이다. 김연아가 2008~2009 시즌 프리스케이팅에서 열연을 펼친 뒤, 클래식에 전혀 관심이 없던 사람도 ‘세헤라자데’를 알기 시작했고, 경기 중 배경음악으로 사용되었던 클래식 곡을 편집해 모은 앨범 <페어리 온 디 아이스(Fairy On The Ice)>는 발매 2주 만에 1만 장 한정량이 모두 팔렸다.

일각에선 너무 시류에 편승한 이슈 마케팅이란 지적도 있지만 클래식이란 음악 장르가 처한 현재 상황을 고려할 땐 긍정적 효과가 더 많다. 음악은 알려지고 들릴 때 가치가 상승한다. 들리지 않는데 그것이 전승될 리 없고, 그를 통한 숙련되고 진지한 감상이 피어날 수도 없다. 과도하지만 않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대중화되는 것이 일단은 중요하다. 매일같이 재탕되는 비발디의 ‘사계’, 모차르트의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 같은 곡들로만 채워지지 않은 것도 클래식 레퍼토리의 다양화에 공헌할 것이다.

음악은 그 자신의 힘 못지않게 전달자의 힘도 중요하단 생각이 든다. 이때 전달자의 힘이란 그 사람이 가진 능력뿐 아니라 사람들이 그에게 갖고 있는 이미지도 포함된다. 친근감, 신뢰감, 편안함, 이런 것들을 두루 갖추고 대중의 지갑을 쉽게 열 만한 음악 매체 종사자가 우리에겐 몇 명이나 있을까.

시사와 문화

김연아를 찬양하는 것도, 그녀의 미니홈피가 음악 홍보의 대안이라고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피겨 요정이 만들어내는 숱한 음악 이슈를 보면서 우리는 대중의 새로운 신뢰 방식을 읽어야 한다. 뚜렷한 주관, 박식한 전문성, 확고한 철학, 이런 것뿐 아니라 친근감, 미소, 건강한 매력 역시 음악계를 휘젓고, 대중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이대화<대중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