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와 문화]퇴임 때도 사랑받을 수 있는 대통령

영화 ‘프로스트 vs 닉슨’

영화 <프로스트 VS 닉슨>.

미국 역사상 첫 흑인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취임 후 첫 인터뷰를 아랍어권 방송인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위성채널 알-아라비아와 하면서 부시 정권 8년 동안 반미 감정이 폭발 직전이던 아랍권에 화해의 손짓을 보냈다. 미 국방부는 오바마 대통령의 대선공약인 ‘16개월 내 이라크 주둔 미군 철수’안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일주일 동안 쿠바 관타나모 기지 폐쇄, 중앙정보국(CIA)의 비밀 해외수감시설 폐쇄 등 부시 정부의 오류들을 과감히 시정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또 미국 자동차의 친환경·고연비 차량 개발 정책을 발표하면서 부시 정부가 등을 돌렸던 기후변화 문제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입장으로 선회했다. 취임 후 사흘간 오바마의 국정 수행에 대한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자 1500여 명 가운데 68%가 지지한다는 입장을 보여 존 F 케네디 대통령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반면에 부시 대통령은 퇴임 직전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22%의 지지율을 기록하면서, 퇴임하는 역대 미국 대통령 중 가장 최저 수치를 보였다. 지금까지 퇴임한 미국 대통령 중 가장 낮은 지지율은 해리 트루먼 대통령으로 33%였다. 부시 대통령은 그보다 11%나 낮은 지지율을 기록하며 퇴임하는 불명예를 안았다.

그러나 가장 불행한 대통령은 임기를 마치지도 못하고 불명예 퇴진한 미국의 37대 대통령 닉슨일 것이다. 그는 1968년 미국 대통령에 당선했고 1972년 재선됐다. 하지만 재선 당시 워터게이트 사건에 개입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1974년 임기 도중 사임했다. 미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임기 중 사임이다. 그 결과 닉슨은 그 어느 대통령보다 가장 불명예스럽게 퇴임한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 워터게이트 사건이란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둔 1972년 6월 17일 공화당의 닉슨 재선 위원회가 상대 후보인 민주당 본부의 워터게이트 빌딩에 불법 침입해서 도청하려 했던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닉슨 대통령은 1974년 8월 8일 사임했다. 닉슨 대통령은 <워싱턴포스트>의 기자들이 진실을 파헤쳐서 여론에 밀려 퇴임할 당시에도 자신이 워터게이트 사건에 어떻게 연루되었는지 정확한 진실을 국민들에게 밝히지 않았다.

론 하워드 감독의 <프로스트 vs 닉슨>은 연극으로 먼저 만들어진, 닉슨 대통령이 퇴임한 후 언론과 첫 공식 인터뷰의 비하인드 실화를 영화로 옮긴 것이다. 닉슨 대통령의 퇴임 기자회견은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뉴욕 방송계에서 밀려나 상투적인 리포트 프로그램이나 진행하던 토크쇼 MC 프로스트(마이클 쉰)는 그것을 보고 닉슨(프랭크 란젤라)과의 인터뷰를 기획한다. 이미 많은 방송사에서 닉슨과 인터뷰를 요청해놓은 상태였지만, 닉슨은 뉴스 진행 경험이 없고 정치인과 인터뷰 경험이 없던 3류 오락 프로그램 진행자 프로스트를 선택했다. 프로스트는 닉슨과 인터뷰를 성사시키기 위해 거액을 제시했지만 예상과 다르게 스폰서가 나타나지 않자 자신의 사재까지 털어 인터뷰를 진행했다.

하지만 닉슨과 4일 동안 인터뷰는 프로스트의 판정패였다. 베트남전을 비롯해서 닉슨 재임 시의 중요한 문제들에 대한 프로스트의 질문을 노련한 정치인 닉슨은 교묘하게 피해가면서 자신의 치적을 늘어놓는 것으로 예정된 인터뷰 시간을 무사히 넘겼다. 이제 남은 것은 마지막 하루, 프로스트는 마지막 반전을 노리며 최후의 인터뷰에 임한다. 론 하워드 감독은 프로스트와 닉슨의 캐릭터를 뚜렷이 하고 원작 연극 무대에서 좋은 연기를 보인 두 주인공을 영화에도 그대로 기용했다. 내러티브는 잔가지를 제거한 채 오직 4일 동안의 인터뷰에 초점을 맞춰 실제로 전 세계적인 커다란 반향을 불러왔던 프로스트의 닉슨 대통령 인터뷰를 박진감 넘치게 형상화하는 데 성공했다.

시사와 문화

대통령에 당선하는 순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임기를 마치고 퇴임하는 순간에도 국민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나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도 대통령으로서 임무를 모두 성공적으로 마치고 국민들의 아쉬움 속에서 퇴임하는 대통령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정권은 유한하고 명예는 무한하다. 닉슨 대통령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욕이 개입되는 순간, 대통령의 공정한 직무 수행은 불가능하다. 그 비극적인 예를 <프로스트 vs닉슨>은 보여주고 있다.

하재봉<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