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와 문화]여론의 된서리 맞은 ‘나라사랑 랩송’

당대 최고의 인기가수가 나라를 위해 노래한다는 건 어떤 의미를 가질까? 지난 1월과 2월, 미국과 한국에서는 이것이 완전히 반대의 양상으로 받아들여져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올해 1월, 미국 링컨기념관에서 열린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 축하 공연 자리에 참석하는 것을 영광으로 여긴 무수한 음악계 유명 인사가 콘서트와 파티를 즐겼다. 제임스 테일러, 브루스 스프링스틴, 스티비 원더, 제이-지, 카니예 웨스트, 유투(U2) 등, 그래미 시상식에서도 한자리에 모이기 힘든 환상적인 라인업이었다.

이들은 ‘우리는 하나’라는 구호 아래 미국의 새 정권 출범을 축하했으며, 행사장엔 비욘세가 부르는 미국의 비공식 국가 ‘아메리카 더 뷰티풀’이 울려퍼졌다. 그녀는 “오바마 취임식에 참석하고 보니 미국인인 것이 자랑스럽다”며 미국에 대한 뜨거운 애정도 드러냈다. 권위 있는 음악 잡지 <롤링 스톤>은 편집장 칼럼까지 할애해 이날을 ‘아름다운 날’로 규정했다. <롤링 스톤>은 미국의 국가 ‘스타 스팽글드 배너’를 엽기적 기타 퍼포먼스로 찢어발긴 지미 헨드릭스의 1969년 우드스톡 공연을 호평한 바 있다.

반면, 출범 1년을 맞은 이명박 정부는 얼마 전 관 주도로 빅뱅 등이 참여하는 ‘나라사랑 랩송’을 계획했다가 여론의 된서리를 맞았다. 인터넷엔 이 사건을 패러디하는 차원에서 빅뱅의 ‘붉은 노을’을 개사해 정부의 4대 강 사업을 비꼰 ‘푸른 운하’가 등장했고, 아직 ‘건전가요’나 ‘관제가요’가 뭔지도 모를 어린 빅뱅 팬들이 거센 항의의 목소리를 냈다.

과연 무엇이 다를까. 오바마 취임식에 참석한 음악계의 유명 인사들은 자신들이 직접 뽑은 대통령에게서 미국의 새로운 희망을 보았다. 특히 이날의 하이라이트였던 브루스 스프링스틴은 신곡 ‘워킹 온 어 드림’을 오바마의 선거 직전 유세장에서 발표한 적도 있다. 곧 신보 발표를 앞두고 있는 1990년대 최고의 록 밴드 펄 잼도 얼마 전 인터뷰를 통해 “지난 몇 해 동안, 난 희망적인 가사를 쓰려고 애썼다. 그리고 이젠 그게 훨씬 쉬워질 것 같다”며 새 앨범의 작곡 기조가 선거 이후로 달라졌다는 소식도 전했다.

우리는 과연 현 이명박 정권에서 희망을 보고 있을까. 희망은커녕 ‘역주행’과 ‘후퇴’를 보고 있는 건 아닐까. 야당과 시민단체들은 1주년을 맞은 시점에 일제히 지난 한 해를 성토하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나라사랑 랩송’ 해프닝은 더욱이 단순한 촌극 이상의 실책이었다. 애국심을 고양시키기 위해 정부 주도로 당대 최고의 인기가수에게 노래를 부르도록 하는 것은 군사정권 시절에나 있던 일이다. 박정희 정부 시절,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이 청와대의 건전가요 요청을 거절했다가 혹독한 고초를 겪은 이야기는 유명한 일화다.

시사와 문화

이는 우리 음악계의 가장 큰 역사적 상처를 건드린 것이나 다름없다. 더욱이 유인촌 문화부 장관은 “젊은 층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노력 아니겠냐. 여러 의견을 잘 들어보고 건의하겠다”며 사실상 동의의 뜻을 표했다. 심히 유감스럽다. 자국 문화계의 뼈아픈 기억도 보듬을 줄 모르는 현 정부의 경솔한 태도에 깊은 회의감을 느낀다.

이대화<대중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