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와 문화]철거민들은 왜 망루에 올라갔을까

블로그 다큐 ‘용산 참사, 아벨의 죽음’

어느 무더운 여름 날, 기다리던 버스는 오지 않았다. 나는 남일당 인근의 가게에서 팥빙수를 사먹었다. 그뒤에도 한참 오지 않았다. 내가 143번 버스를 기다리며 담배꽁초를 버렸던 그 거리가 쫓겨난 이들에겐 수십 년간 삶의 터전이었다. 그리고 올해 1월 20일 아침, 인터넷 생중계를 보며 눈을 의심했다. 낯익은 그곳은 아비규환의 생지옥으로 변해 있었다. “저기 사람이 있는데…”라고 발만 동동 구르는 가족. 우려는 최악의 결과로 현실화됐다. 벌써 90일이 지났다. 아무것도 해결된 건 없다. 희생자들은 차가운 냉동고에서 아무 말 없이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공식적으로 당국은 결론내렸다. ‘도심의 테러리스트’라는 당국과 보수언론의 낙인이다. CBS가 만든 2부작 블로그 다큐 <용산 참사, 아벨의 죽음>은 망루에 올라간 사람들, 그리고 남은 사람들에 대한 지난 두 달간의 기록이다. 들판에서 자신의 형제를 죽인 카인은 신 앞에서 자신이 저지른 짓을 부인한다. 절대자는 그에게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라고 물었다. 2009년, 대한민국에서 다시 나타난 ‘카인의 후예’들은 자신은 알지 못한다고, 그들은 우리가 지켜야 할 자가 아니었노라고 말한다. 부검은 유족 참가 없이 이뤄졌다. 청와대를 방문한 유가족들은 “우리는 폭도가 아니다. 항의서한만 놓고 갈 것이다”라고 호소하지만 길은 열리지 않았다. 카메라는 영정을 들고 행진하던 유가족을 폭행하는 전경들의 모습을 담는다. 영정은 산산조각났다. 유가족은 실신해 거리에 쓰러진다.

아벨은 이상림(71)씨를 비롯한 5명의 희생자다. 이씨는 매일 성경을 직접 손으로 베껴 쓰며 신심을 확인하는 독실한 신자였다. 그는 왜 망루에 올라갔을까. 막내며느리는 “대화를 하기 위해서, 살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어떻게 보면 기가 막히는 일이다. 시아버지는 불에 타 숨졌고, 망루에서 떨어져 다리를 다친 남편은 구속되었다. 승리할 때까지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빈번히 쏟아지는 눈물은 그 다짐을 배반한다.

용산 참사 사건은 많은 사람의 삶을 변화시켰다. ‘헤딩라인 뉴스’의 유머러스한 진행으로 웃음을 줬던 앵커 이명선씨(그는 촛불시위 때부터 칼라TV의 현장 중계자로 뛰었다)의 얼굴에선 미소가 사라졌다. 강아지의 병을 고치는 수의사가 되고 싶었던 이씨 손녀 예은이는 “재판관이나 과학자가 되고 싶다”며 꿈을 바꿨다. 억울한 사람의 누명을 벗겨주거나 죽은 사람을 살려내는 기계를 발명하고 싶어서라고 이유를 들었다.

이 다큐멘터리의 부제는 ‘예수와 사람들’이다. 사건 속에서 신의 섭리는 어떻게 작동하는 걸까. 아마도 두 ‘하나님’이 있는 것 같다. 망자들을 테러리스트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믿는 신과 용산 참사 추모 촛불을 켜는 신앙인들의 ‘하나님’. 한 유가족은 “철거민이 돼서야 신을 사랑하는 법을 알았다”고 말한다. 촛불을 통해 동지를 얻었고, 승리에 대한 확신을 더한다고 한다. 신의 뜻이 어디에 역사하고 있는지는, 머지않아 판가름날 것으로 믿는다.

시사와 문화

CBS 블로그다큐 <용산 참사, 아벨의 죽음>은 CBS기독교방송 홈페이지나 다큐팀이 포털에 개설한 블로그 등을 통해 다시 볼 수 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