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와 문화]신종 바이러스의 경고

‘둠스데이 : 지구 최후의 날’

영화<둠스데이 : 지구 최후의 날>의 한 장면.

세계보건기구(WHO)가 집계하는 신종플루 감염자가 33개국 5728명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확인된 공식 숫자일 뿐이다. 실제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멕시코에서는 신종플루로 지금까지 56명이 숨졌고 미국에서 3명, 캐나다와 코스타리카에서 각각 1명이 숨졌다. 세계적으로 지금까지 신종플루에 희생된 사람은 61명이다(5월 13일 현재). 희생자가 많은 북미 대륙뿐 아니라 전 세계가 신종플루의 위협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당황해하고 있다.

지난 5월 초, 필자는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출발해서 미국의 달라스와 일본 도쿄를 거쳐 서울에 도착했다. 미국 공항에서는 모든 사람이 입에 커다란 하얀 마스크를 쓰고 있었고, 도쿄 공항에서는 비행기에서 내리지도 못하게 한 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방독면처럼 생긴 투명 마스크와 비닐장갑, 고무장화까지 온몸에 병원균 침입을 차단시킨 방역과 직원들이 비행기에 올라와서 승객들의 얼굴을 일일이 적외선 카메라로 촬영해 발열 증상 등 이상 유무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마치 SF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너무 유난을 떠는 것 아닌가 생각했지만, 3시간 뒤 한국에 입국할 때는 육안으로만 확인할 뿐 별다른 검역 조치가 없었다. 중국 본토와 홍콩에서도 신종플루에 감염된 두 번째 환자가 발견되었으니까 아시아 대륙도 이제 안심할 수는 없다.

괴질 바이러스 때문에 인류가 멸망할 것이라고 예측한 사람은 이전에도 많았지만, 이번 사태를 두고 인류 멸망이 시작된 것 아닌가라는 극단적인 비관론을 피력하는 사람도 있다. 닐 마샬 감독의 <둠스데이:지구 최후의 날>을 보면, 온몸에 상처와 출혈을 일으키고 결국엔 장기까지 녹여버리는 살인적인 바이러스가 발견된 지 며칠 만에 지구의 수많은 사람을 감염시킨다. 영국 정부는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바이러스 발생 지역과 연결된 모든 도로와 다리, 철도를 봉쇄하고 아무도 들어가거나 나올 수 없는 철강의 성벽을 세워 격리시킨다.

만약 이번 신종플루 발생 지역이 일찍 파악되어 이런 격리 조치가 가능했다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을까? 국내 첫 감염자인 수녀님이 수도원에 스스로 격리한 채 더 이상 확산을 막는 현명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일상생활을 지속했다면, 국내에서도 더 많은 신종플루 감염자가 나왔을 것이다.

<둠스데이:지구 최후의 날>에서는 25년 후, 격리된 지역에 생존자가 있다는 것을 안 정부가 바이러스를 치유하는 치료제를 찾기 위해 강인한 여전사 이든 소령(론다 미트라)을 중심으로 한, 최강의 멤버들을 격리지역 안으로 보낸다. 2033년을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는 바이러스 치료제를 만든 케인 박사 등이 마치 중세시대처럼 자생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시사와 문화

인류는 위협적인 바이러스의 출현을 스스로 저지하며 계속 생존할 수 있을 것인가? 세계 멸망의 디스토피아를 예언하는 영화들은 핵전쟁 등으로 인류가 스스로 공멸할 것이라는 예측을 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최근 들어서는 괴병원체에 의한 종말론에 무게를 두는 경우가 많아졌다. 영화는 허구적 내러티브로 전개되지만 그것은 항상 당대의 현실과 연결되어 있는 살아 있는 생명체다.

하재봉<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