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와 문화]디지털시대 ‘음악 정리 습관’

잘 간직한 노래가 애정도 깊다

아이튠스.

음악 글을 쓰다보면 흔히 받는 부탁이 ‘추천’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이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이 두 가지다. “요즘 괜찮은 음악이 뭐 있어요?” “고전 중에 들을 만한 것 좀 알려줘요.” 하지만 늘 똑같은 이 질문 패턴 속에서도 요즘은 한 가지 보이지 않는 변화가 있음을 느낀다. 그건 바로 예전에는 사람들이 들인 돈의 최대 가치를 뽑아내기 위해 ‘선별’을 요구했다면, 이젠 MP3 플레이어의 재생 목록을 ‘교체’할 시점이 왔기 때문에 ‘추천’을 부탁한다는 것이다.

음악이 휙 지나갔다 휙 교체되는 풍토를 비판하고 싶어 꺼낸 얘기기도 하지만, 정말 하고 싶은 얘기는 따로 있다. 곡만 바꾸지 말고, 플레이어 안에 넣어두는 정리 패턴도 바꿔보라는 것이다. 흔히 간과하지만 MP3의 세상에서는 정렬과 보관 방식에 따라 음악에 대한 애정, 소양 등이 달라질 수 있다.

일단 싱글 전체를 아무런 범주도 없이 죽 늘어놓고 듣는 것은 좋은 습관이 아니다. 사람에 따라 다를 순 있지만 대개는 너무 산만한 느낌이 들어 음악을 아주 쉽게 듣고 쉽게 버리게 된다. 정보를 손질하고 분류하는 정성에 비례해서 그 음악을 간직하고 소장하고픈 애정도 같이 자라난다. MP3 플레이어를 단순한 대용량 저장소가 아니라 손 안의 휴대 라이브러리로 개념 전환하는 것이 디지털 시대를 사는 음악 애호가가 음악을 사랑하는 첫 걸음이다.

파일 속 정보는 많을수록 좋다. 언제든 꺼내어볼 관련 정보가 풍부해야 ‘아는 만큼 들린다’는 단순한 진리도 실현 가능하다. 요즘은 곡 안에 내장된 정보가 하도 부실해서, 특히 불법 다운로드 파일이 많기 때문에, 발표 연도와 어느 앨범 수록곡인지도 모르고 듣는 경우가 많다. 앨범 재킷을 채워 넣지 않아 가수 얼굴을 모르는 경우도 태반이다. 기본적인 정보만 있더라도 조금만 수고를 더해 심화시키거나, 나만의 개성을 가진 표기법과 명명으로 그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것도 재밌을 것이다.

예를 들어 수록곡들에 아무런 제목 표시도 없는 이소라의 이번 7집에 나만의 제목과 작명의 사연을 적어두면 얼마나 재밌겠는가. 앨범 제목 앞에 발표 연도를 따로 적어두는 것도 좋은 센스다. 왜냐하면 많은 경우에 입력된 발표 연도가 화면 밖으로 노출되지 않기 때문이다. 만든 시대와 발표의 선후를 염두에 두며 듣는 습관은 음악적 소양을 향상시키는 데 큰 도움을 준다. 기기에 따라 별점을 매길 수도 있다. 이런 것도 으레 있는 것으로 생각지 말고 한번쯤 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재생 목록을 알차게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 ‘빌보드 차트 1위곡’을 따로 모아 오른 순서로 배열한다든가, ‘대학가요제 수상곡’을 연도별로 분류하고, 유명 잡지와 평론가들의 명곡선이 있으면 그걸 활용해도 좋다. 다양한 목록화를 통해 같은 ‘싱글’ 단위의 감상이라도 얻어갈 수 있는 정보량이 많아진다.

시사와 문화

스스로 정보를 입력하고, 일관성 있는 정렬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흥미로운 재생 목록을 만들면서 보고, 듣고, 배우는 것. 이것은 예전 LP·CD 시대에 커다란 진열장 앞에서 ‘섭렵’과 ‘배움’의 의지를 불태우던 즐거움과 맞먹는다. 좋은 곡들을 추천하기 이전에 먼저 권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 ‘정리’의 습관이다.

이대화<대중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