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와 문화]다인종 사회의 갈등 ‘크래쉬’

영화 <크래쉬>의 한 장면.

귀화 한국인 이참씨가 한국관광공사 사장으로 내정됐다는 뉴스는 매우 신선했다. 독일 구텐베르크 대학에서 불문학과 신학을 전공했고 미국 트리니티 신학대학원에서 상담학으로 석사를 받은 그는 1979년 한국에 정착해 1982년 한국 여성과 결혼한 뒤 1986년 귀화하면서 이한우라는 이름을 얻었다.

KBS <지구촌 파노라마> 등 활발한 방송 활동으로 인지도를 높인 그는 <딸부잣집> <천국의 계단> <제 5공화국> 등의 드라마에서 연기자로도 활동했다. 한국문화에 동참하겠다, 참된 한국 사람으로 살겠다는 뜻을 담은 이참으로 다시 개명했으며, 지난 대선 때는 이명박 캠프에서 특별보좌관을 지냈다.

“이참에 한번 한국을 위해 남은 인생을 봉사하겠다는 마음이다. 귀화인으로서, 이방인 출신으로서 고위직에 임명된 게 감동이다”라고 소감을 밝힌 이참 신임 사장은 공기업 선진화 방침에 따라 해외마케팅 등 핵심 기능 강화를 통해 위상 재정립을 꾀하고 있는 한국관광공사의 사장으로서 영어·독일어·프랑스어 등 다양한 외국어 구사 능력과 국제감각으로 글로벌 관광 교류를 원활하게 추진할 수 있는 적임자 중 한 사람으로 평가를 받는다.

민족 사이의 갈등은 뿌리가 매우 깊다는 점에서 쉽게 치유되지 않는다. 터키계 이민이 많은 독일이나 인도계 이민자가 많은 영국, 북아프리카 이민자가 많은 프랑스 등에서도 민족적 갈등을 찾아볼 수가 있다. 이민자들의 나라인 미국 사회에서도 동양 이민자에 대한 차별은 아직도 여전하다. 서양 이민자들은 귀화한 직후 미국인이 되지만 동양인은 외모 때문에 귀화한지 10년이 지나도 여전히 차별을 받는다. <폴링다운>을 비롯해 할리우드의 많은 영화에는 이민온 지 오래됐지만 영어도 제대로 못하는 한국인에 대한 비하의 시선이 나타나 있다.

아카데미 작품상, 각본상, 편집상을 받은 폴 해기스 감독의 데뷔작 <크래쉬>는 로스앤젤레스(LA)에 살고 있는 여덟 커플의 자질구레한 일상이 씨줄 날줄로 종횡무진 펼쳐지면서 전개된다. <크래쉬>는 일방적으로 인종 차별에 대한 혐오도 비난도 하지 않는다. 시상식을 마치고 돌아가는 방송국 흑인 프로듀서의 부인은 달리는 차 안에서 남편에게 오럴섹스를 한다. 순찰 중인 경찰 라이언(맷 딜런 분)은 그들을 불심검문하면서 부인 크리스틴(탠디 뉴턴 분)의 몸을 구석구석 쓰다듬는다. 성추행이다. 그러나 남편 캐머런(테런스 하워드 분)은 더 큰 불상사를 막기 위해 아무런 항의도 하지 못한다. 라이언의 파트너인 핸슨(라이언 필립 분)은 상사에게 파트너 교체를 요구한다.

이란에서 이민 온 파라드는 자신의 전 재산인 가게를 지키기 위해 열쇠수리공 대니얼을 부르지만 문을 고쳐야 한다는 대니얼의 충고를 무시한다. 그리고 가게는 강탈당한다. 더욱이 대니얼의 경고를 무시했다는 게 드러나면서 보험 보상도 되지 않는다. 파라드는 그 모든 원인이 대니얼에게 있다고 생각하고 대니얼의 어린 딸을 향해 총을 겨눈다. 또 지방검사 릭의 차를 강탈한 흑인 청년 피터와 앤서니는 우여곡절 끝에 집을 향해 돌아간다. 그리고 이 모든 사람은 한 지점에서 거대한 충돌로 만나게 된다.

시사와 문화

단일민족으로 구성돼 있는 한국 사회에서 귀화한 한국인이 정부 고위직에 진출한 첫 번째 사례라는 점에서 이참씨의 한국관광공사 사장 임명은 앞으로 전개될 한국사회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물론 지금도 대학 총장이나 공공기관 수장에 외국인을 영입하는 사례는 종종 있지만 이참씨의 경우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그는 한국인이다. 그러나 우리와 피부색이 다르다. 이참씨의 한국관광공사 사장 임명은 우리 사회가 다인종 다문화 사회로 변화해 가고 있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하재봉<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