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와 문화]올 여름 달구는 ‘뮤지컬 전쟁’

뮤지컬 <트르담 드 파리>.

‘사서 고생하는’ 휴가여행이 마뜩찮다면 추천할 곳이 있다. 바로 여름 뮤지컬 극장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통적인 비수기로 통했지만 요즘은 사정이 달라졌다. 관객이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난 사람들의 발길을 사로잡으려는 다양한 마케팅 전략과 경쟁이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녹록지 않은 경제 사정과 지갑 형편으로 쉽게 여름나들이를 떠나지 못하는 탓도 있지만 그만큼 대중성도 높아지고 볼거리도 많아진 무대가 세인의 관심을 끌기 적합하게 진화했다는 말도 된다. 마니아라면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돌아다녀야 할 판이지만 그래도 좋은 작품이 많아졌다는 것만큼 즐겁고 반가운 일도 없다.

올 여름의 뮤지컬 전쟁은 규모면에서도 가위 세계적이다.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뿐 아니라 유럽의 다양한 작품들도 격전에 가세했다. 먼저 프랑스 뮤지컬이 눈에 띈다. 초여름부터 관객몰이를 해온 <돈 주앙>과 <로미오와 줄리엣>에 이어 8월에는 대박 흥행 신화로 유명한 <노트르담 드 파리>까지 가세했다. 중국 투어를 앞둔 막바지 담금질이라는 게 제작진의 설명이다. 현지 배우가 직접 내한하는 이탈리아 뮤지컬도 있다. 바로 <일 피노키오>이다.

아동용 뮤지컬이 아닌 ‘어른을 위한 동화’라는 편이 더 잘 어울리는 수준작으로, 파스텔톤의 화려한 의상과 세트 및 상상을 자극하는 무대 연출이 뛰어나다. 특히 인기 팝 밴드 ‘푸’가 작곡한 이탈리아 대중음악의 깔끔한 선율과 끝 맛은 오래 입가를 맴돌 정도로 따듯하고 감성적이다.

영·미권의 흥행 대작들도 격전을 벌이긴 마찬가지다. 초여름부터 관객몰이를 하던 <시카고>와 <맘마 미아!>를 비롯해 <드림걸즈>와 <스프링 어웨이크닝>에 이어 박해미, 옥주현 등 스타캐스팅으로 관심을 모은 <브로드웨이 42번가>와 오리지널 팬텀으로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브래드 리틀의 <지킬 앤 하이드> 등이 가세했다. 여기에 가을이면 막을 올릴 세계적 신화의 <오페라의 유령>과 엘비스 프레슬리 음악으로 만든 주크박스 뮤지컬 <올슉업>, 오리지널 캐스트가 참여하는 <렌트> 내한공연까지 따져보면 벌어진 입을 다물기 힘들다.

토종 창작 뮤지컬의 반격도 만만찮다. 90년대 인기가요들을 인기 만화 ‘영심이’와 결합시킨 <젊음의 행진>, 빅뱅의 승리와 대성이 출연하는 또 다른 주크박스 뮤지컬 <샤우팅>, 실물 경제의 성공 스토리를 빌려왔다는 <총각네 야채가게>, 흥행 영화를 원작으로 한 무비컬 <싱글즈>, 올해 대구 국제 뮤지컬 페스티벌의 최우수 창작지원작으로 선정된 코믹 뮤지컬 <스페셜 레터> 등은 놓치면 오랫동안 후회할 지도 모를 수준작들이다.

시사와 문화

차라리 공연장 피서가 현명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계획만 잘 짜면 세계일주 못지 않은 문화체험도 가능해 일석이조가 따로 없다. 물론 올 여름 뮤지컬 전쟁의 마지막 승자가 누군지 끝까지 지켜보는 재미도 꽤나 쏠쏠하다.

원종원<순천향대 교수·뮤지컬 평론가> jwon@sch.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