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의 재구성] <1984>에서 <1Q84>까지 ‘빅 브러더’에 길들여진 ‘리틀 피플’

펄프픽션으로 출간된 <1984>(아래)와 영화에 등장했던 ‘빅 브러더’ 포스터.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1Q84>가 일으킨 선풍적인 인기로 인해 조지 오웰의 소설 <1984>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2008년 하버드대 학생들이 가장 많이 구입한 도서 1위, 2009년 <뉴스위크> 선정 역대 세계 최고의 명저 2위(1위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뽑히는 등 <1984>에 대한 높은 관심과 평가는 출간된 지 60년이 된 지금까지도 여전하다. 오웰이 간파한 전체주의 사회의 폭력성이 소설 출간 이후 현실로 증명된 데다 디스토피아 세계를 구성해 낸 그의 치밀하면서도 대담한 상상력이 여전히 신선하기 때문이다.

후대의 많은 예술가에게 ‘영감’ 제공

[명작의 재구성] <1984>에서 <1Q84>까지 ‘빅 브러더’에 길들여진 ‘리틀 피플’

장르를 따지면 음울한 분위기의 SF쯤 되는 이 작품은 그 자체로 뛰어날 뿐만 아니라 많은 후배 예술가에게 영감을 제공했다.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 (1971), 워쇼스키 형제의 영화 <매트릭스> (1999)는 <1984>의 문제의식을 차용했다. 실제 1984년이 됐을 때는 마이클 래드퍼드 감독, 존 허트와 리처드 버턴 주연의 동명영화 <1984>와 리들리 스콧이 만든 애플 매킨토시 컴퓨터 CF(1984)가 나왔다. 백남준의 1984년작 비디오아트 ‘굿모닝 미스터 오웰’ 역시 오웰의 세계를 패러디한 것이며, 하루키는 가장 직접적이고도 창조적인 오마주인 <1Q84>(2009)를 바쳤다.

조지 오웰(본명 에릭 아서 블레어·1903~1950)은 인도 벵골에서 영국 하급관리의 아들로 태어나 명문 이튼스쿨을 졸업한 뒤 1922년 버마에서 왕실 경찰로 근무했다. 그러나 식민체제와 제국주의에 대한 혐오감을 견디지 못해 5년만에 경찰직을 그만두고 어린 시절부터 내내 꿈인 작가가 되기 위해 런던과 파리를 전전한다. 이때의 체험을 바탕으로 르포르타주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1933)을 발표하며 작가로서 첫발을 내디딘다. 이어 버마에서의 생활을 담은 첫 소설 <버마 시절> (1934)을 출간했다. 1936년 스페인 내란이 발발하자 공화파를 지지하며 의용군으로 참전한 오웰은 이를 기점으로 전체주의에 대해 강한 반감을 갖게 된다. 1945년에 나온 <동물농장>은 그에게 작가로서 출세길을 열어주지만 이 즈음 지병인 폐결핵이 악화되는 바람에 입원과 요양을 거듭하면서 숨지기 1년 전에 <1984>라는 필생의 역작을 남긴다.

“포스터에는 폭이 1m 이상은 되는 거대한 얼굴이 그려져 있다. 나이는 마흔댓쯤 돼 보이고, 볼에 새카만 수염이 잔뜩 난 텁수룩한 미남이었다. … 포스터는 아주 교묘하게 고안돼 있어 사람이 움직일 때마다 그 눈초리가 따라 움직이는 것이었다. ‘빅 브러더는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표제가 그 밑에 적혀 있었다.”

이 작품의 묵시록적 분위기는 지독하게 황폐하고도 정교한 배경 설정에서 나온다. 1984년의 가상 국가 오세아니아는 영사(영국사회당)의 우두머리인 빅 브러더와 그 하수인들의 지배를 받고 있다. 정부 조직은 정작 하는 일과는 정반대의 명칭인 진리부, 평화부, 애정부, 풍부부로 구성돼 있다. 지배자들은 허황된 수치로 경제 성과를 자랑하면서도 인민들을 굶주리게 하고, 세계를 삼분하고 있는 유라시아 및 동아시아와 끊임없이 전쟁을 벌임으로써 평화를 유지한다. 과거의 역사와 미래의 청사진은 현재에 맞춰 계속 변경되며, 반체제 인사는 고문을 통해 새로운 인간으로 개조한다.

주인공인 서른아홉의 남자 윈스턴 스미스는 진리부의 서기로서 역사 기록을 고쳐 쓰는 일을 한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당의 현행 노선과 일치시키기 위해 과거의 신문기사를 수정하고 사진을 조작하는 게 그의 일이다. 그는 벽에 달린 금속관을 통해 일거리를 전달받은 뒤 왜곡과 변경의 증거를 폐기한다. 그가 근무하는 방에는 ‘대한뉴스’처럼 당의 홍보영상을 보여 주고, 아침체조도 시키며, 방 안의 개인과 직접 대화도 나눌 수 있는 텔레스크린이 달려 있다. 수신과 송신을 동시에 하는 이 기계는 당의 거짓 시책과 성과를 전달하는 한편 사람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한다.

빅 브러더와 당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인간성을 극도로 말살한다. 아이들은 부모가 당의 지시에 반하는 말과 행동을 할 때 지체없이 고발하는 냉혹한 인간으로 키워진다. 극도의 빈곤과 규율 속에서 식욕은 기승을 부리고, 남녀간의 성욕은 사치스러운 감정이 됐다. 채워지지 않는 선병질적인 식욕과 성욕에서 우러나오는 조바심만이 당에 대한 충성을 유지시키기 때문이다. 그런데 윈스턴은 자신이 하는 일에 비판의식을 가질 뿐만 아니라 줄리아라는 젊은 여성과 사랑에 빠진다.

당이 진실과 과거를 독점하는 데 대해 회의를 느낀 윈스턴은 과거 빅 브러더와 혁명 동지였다가 이념적 차이로 결별한 뒤 형제단이라는 반체제 저항 조직을 움직이는 골드스타인이라는 (조작된) 인물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그는 형제단의 일원으로 보이는 오브라이언이 건네준 골드스타인의 <과두정치적 집단주의의 이론과 실제>란 책을 읽다가 당에 적발된다. 당의 첩자인 오브라이언은 윈스턴을 고문실로 보낸다. 전기 고문, 쥐 고문 등 악랄한 고문과 세뇌작업으로 인해 개조된 그는 당의 말이라면 ‘둘 더하기 둘은 다섯’이란 것도 믿고, 줄리아를 자기 대신 죽여 달라고 저주하며, 마침내 빅 브러더를 사랑하기에 이른다.

미디어 네트워크의 감시 사회체제
20세기의 독자들이 이 작품에서 가장 충격적으로 받아들인 것은 텔레스크린이라는 전일적인 미디어 네트워크의 감시가 이뤄지는 사회체제, 그리고 개인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결코 그 체제의 바깥으로 빠져나갈 수 없다는 절망적인 사실이었다. 막스 베버가 ‘쇠우리’라고 명명한 근대화의 폐쇄성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모두 관통하면서 비인간적인 체제의 지배를 만들어 냈다. 폐쇄회로 TV를 연상시키는 텔레스크린의 존재는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내려다보면서 때로 엄하게 꾸짖는 편재하는 하느님, 어두운 중앙부의 감시자가 늘 자신을 보고 있다는 걸 의식하도록 설계된 제레미 벤덤의 원형감옥, 원형감옥의 이미지로부터 체제가 행사하는 권력을 스스로 내면화하는 현대인의 주체성 형성 과정을 그려낸 미셸 푸코의 구성주의 철학 이론과 일맥상통한다.

작가 조지 오웰.

오웰은 원래 <1984>의 제목을 <유럽의 마지막 인간>으로 정했다. 그러나 런던의 출판사 세커 앤드 와버그의 발행인인 프레드릭 존 와버그는 좀 더 ‘잘 팔릴 수 있는 제목’으로 바꿀 것을 제안했다. 그것이 왜 하필 ‘1984’였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1884년에 설립된 페이비언사회주의협회 100주년을 기념하는 뜻이 담겼다는 설, 미국 작가 잭 런던의 1908년작 소설 <강철군화>에서 정치적 절정기인 1984년을 염두에 뒀다는 설, 오웰의 첫 번째 부인이자 아마추어 시인인 아일린 오쇼네시의 시 ‘20세기말 1984’에서 따왔다는 설 등이다. 소설의 탈고 시점이 1948년이기 때문에 뒷자리 숫자를 뒤집어서 1984로 하지 않았느냐는 추측도 있다.

어쨌든 오웰이 만들어 낸 텔레스크린의 세계와 인간 개조 프로젝트는 오웰 이후의 예술작품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변형된다. 스탠리 큐브릭은 <시계태엽 오렌지>를 만들면서 인간정신 개조라는 아이디어에 담긴 비인간성을 주목했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인 알렉스와 친구들은 미래의 런던 곳곳에서 ‘싱잉 인 더 레인’의 경쾌한 선율을 흥얼거리면서 강간·살인·폭력 등 끝이 없을 것 같은 악행을 저지른다. 그러나 결국 붙잡힌 알렉스는 정부가 집행하는 인간 개조 프로그램에 투입되고, 온갖 잔혹한 방식의 실험 대상이 된다. 결국 큐브릭의 질문은 과연 ‘악을 처단하는 것이 무조건 절대 선인가, 더 강력한 또 다른 악일 뿐인가’라는 것이다.

워쇼스키 형제의 <매트릭스>는 네트워크의 폐쇄성에 대한 공포로부터 출발한다. 2199년 인공두뇌를 가진 컴퓨터 AI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인간은 가축처럼 인공자궁에서 재배돼 에너지원으로 활용된다. AI에 의해 뇌세포에 ‘매트릭스’라는 프로그램을 입력당한 인간은 평생 1999년의 가상현실을 살아간다. 인간이 보고 느끼는 것들은 항상 AI의 검색엔진에 노출돼 있고, 인간의 기억 또한 그들에 의해 입력되거나 삭제된다. 이런 가상현실 속에서 주인공 네오를 비롯한 일단의 해커들만이 매트릭스의 존재를 깨닫고 진정한 현실을 인식하기 위해 투쟁한다.

인간 개조, 다양한 방식으로 변형
한편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로 불리는 백남준은 1984년에 전 세계적인 미디어 네트워크를 활용해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라는 38분짜리 위성쇼를 선보였다. ‘지구촌’이라는 용어가 전파되기 시작하고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한국 정부가 문화적 이벤트를 통해 스스로의 경직된 군사문화를 희석시키려고 노력하던 시점에 벌어진 이 쇼는 뉴욕·파리·베를린·서울을 인공위성으로 연결했다. 백남준과 그의 예술적 동지들인 요제프 보이스, 존 케이지, 머스 커닝햄 등이 출연해 전 세계의 시청자 2500만명에게 미디어를 활용한 현대예술을 경험하게 만들었다. 위압적인 빅 브러더를 대신해 브라운관에 등장한 예술가들은 오웰의 긍정적 비틀기를 시도했다.

왼쪽부터 영화 <시계 태엽 오렌지>와 <매트릭스>의 포스터, 영화 <1984>의 스틸컷,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 선전 포스터.

<1984>의 세계에 대한 오마주는 세기가 바뀐 뒤 무라카미 하루키에게서 가장 직접적으로 나타났다. 무라카미는 1995년 도쿄 지하철에서 발생한 옴진리교 신도의 사린가스 살포사건에 큰 관심을 느꼈다. 그는 옴진리교 피해자들과의 인터뷰를 모은 <언더그라운드>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그리고 1984년은 옴진리교의 교주인 아사하라 쇼코(본명 마쓰모토 지즈오)가 ‘옴성산회’를 결성한 해다. 작가는 등장인물인 에비스노 선생의 입을 빌려서 <1984>와 <1Q84>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자네도 잘 알겠지만 조지 오웰은 소설 <1984>에서 빅 브러더라는 독재자를 등장시켰어. 물론 스탈린주의를 우화적으로 그린 것이지. 그리고 빅 브러더라는 용어는 그 이후 일종의 사회적 아이콘이 되었네. 바로 지금, 실제 1984년에 빅 브러더는 너무도 유명하고 너무도 빤히 보이는 존재가 되었어. 지금 우리 사회에 빅 브러더가 출현한다면 우리는 그 인물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하겠지. ‘조심해라. 저자는 빅 브러더다!’라고. 다시 말해 실제 이 세계에는 더 이상 빅 브러더가 나설 자리는 없네. 그 대신 이 리틀 피플이라는 것이 등장했어.”

죽은 산양의 몸에서, 사이비종교의 교주에게 성폭행 당한 소녀의 몸에서 쏟아져 나오는 리틀 피플은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이며 “선한 것인지 악한 것인지, 실체가 있는지 없는지”조차 알 수 없는 것이다. 너무나 가시적인 빅 브러더 대신 등장한 리틀 피플은 빅 브러더 체제에서 순응하도록 길들여진 수많은 ‘윈스턴’에 다름 아니다. 무라카미는 인간사회 악의 근원이 오웰의 지적처럼 독재자가 구축한 체제로부터 그 체제를 유지하는 평범하고 의식없는 인간들로 이행됐음을 선포했다.

명작의 재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