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의 재구성]김승옥의 ‘무진기행’과 공지영의 ‘도가니’

‘안개’는 무엇을 감추고 있는가

'무진(霧津)’이라는 이 세상에 없는 지명은 지난 36년 동안 한국 문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장소로 군림해 왔다. 무진은 김승옥의 단편소설 <무진기행>(1964년)의 배경이다. 광주에서 기차를 내려 버스를 갈아타고 들어간 어디쯤인 무진은 명산물도 없고 수심이 얕은 탓에 항구가 될 조건도 갖추지 못한 척박한 어촌이다. 유일하게 무진을 다른 고장과 구별해 주는 것은 자욱한 안개뿐이다.“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女鬼)가 뿜어내놓은 입김과 같았다”고 작가는 쓰고 있다.

혁명에 대한 열정과 실패는 상처와 환멸의 문학을 낳는다. 사진은 지난 2007년 6월 10일 ‘6월항쟁 20주년 계승 민간조직위원회’ 주최로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린 범국민대회에서 참가자들이 6월항쟁의 상징이 된 시위 장면을 재연한 모습. |남호진 기자

안개에 휩싸인 무진은 그 이름처럼 신비감을 자아낸다. 무진의 안개는 사람의 시야를 흐리게 만들고, 그 안에 뭔가를 감춘다. 안개 속에는 과거의 상처와 회한, 부끄러움, 그리고 좀처럼 해소되지 않는 분노와 환멸이 뒤섞어 칙칙하게 대기를 내리누른다. 안개는 현실의 추악한 측면을 감추는 한편 로맨틱하면서 멜랑콜리한 감정을 부추긴다. 안개 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가.

주인공 ‘나’(윤희중)는 오랜만에 고향인 무진을 찾았다. 오래 전에 서울에서 취직한 ‘나’는 실직과 동시에 동거하던 애인과 헤어진 뒤 과부가 된 제약회사 사장의 딸과 결혼해 장인의 회사를 물려받게 돼 있다. ‘나’를 전무 자리에 올리기 위한 주주총회가 열리는 동안 잠시 자리를 비우라는 장인의 명에 따라 ‘나’는 무진에 내려왔다.

과거의 상처와 회한, 그리고 분노
광주역에 내린 ‘나’는 분홍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양산을 받쳐든 미친 여자를 본다. 그리고 이모집에 도착하는데 중학교 후배이자 모교의 교사인 박이 그곳으로 찾아온다. 박은 “해방 이후 무진중학 졸업생 중 가장 출세한 인물”이라고 ‘나’를 치켜세운다. 박을 통해 동창인 조가 고등고시에 합격해 세무서장으로 와 있다는 소식을 들은 ‘나’는 조를 찾아갔다가 그곳에서 무진중학의 음악선생인 하인숙을 만난다.

무진이 ‘나’에게 상처뿐인 고향인 것은 그 시대의 다른 사람들처럼 지지리도 가난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한국전쟁 당시 ‘나’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성화에 못이겨 징집을 피한 채 골방에서 숨어 지냈다. 다른 친구들이 자원입대해 전쟁터로 나가고 그들의 전사통지서가 날아오는 동안 ‘나’는 스스로의 비겁함과 공포, 지루함과 싸우면서 “편도선이 붓도록 독한 담배를 피우고 공상과 불면을 쫓아보려고 수음을 했”다. 무진은 한마디로 음울하고 부끄러운 청춘의 공간이다.

주인공이 항상 무진을 떠나고 싶어했듯이 인숙도 무진을 떠나고 싶어한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닌 별 볼일 없는 집안 출신의 인숙은 다시 서울행을 꿈꾼다. ‘나’는 후배인 박이 인숙을 좋아하는 걸 알면서도 인숙과 안개가 자욱한 뚝방길을 걷고, 젊었을 때 지낸 자취방에서 성관계를 갖는다. ‘나’는 인숙에게 고향으로 돌아가지 그러냐고 권하지만 인숙은 “그곳보다는 여기가 낫다”면서 “서울로 데려가 달라”고 부탁한다.

무진의 안개는 여전하다. 더욱이 고향에서 첫밤을 보낸 ‘나’는 이슬비가 뿌옇게 날리는 방죽길을 걷다가 자살한 창녀의 시신이 물 위에 떠있는 장면을 본다. 절망이 깃든 무진은 서울생활에서 실패하거나 지친 ‘나’를 받아주는 곳인데 무진에서 되돌아본 ‘나’는 장가를 잘 들어 한 몫 잡은 세속적인 남자다. 청년기의 과거, 자신의 거울인 인숙을 마주한 ‘나’는 뭔가 낭패감과 함께 새로움을 느끼지만 당초 일주일 동안 머물려던 계획과는 달리 바로 상경하라는 아내의 전보를 받고 심한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사흘째 되던 날 무진을 떠난다.

무진을 연상시키는 기형도의 <안개>

작가 김승옥의 최근 모습과 스테디셀러인 <무진기행> 표지.

김승옥은 4·19세대 작가로 불린다. 문학사적으로 보면 한국전쟁 이후 실존적 불안에 사로잡혀 있던 전후문학의 한계를 뛰어넘으면서 일상성과 낭만성의 대립을 통해 1930년대 모더니즘의 전통을 새롭게 복원했다. 특히 그의 감각적인 한글 문체와 환상성을 가미한 플롯은 ‘감수성의 혁명’이란 찬사를 받았다. 서울대 불문과 재학 중이던 1962년에 혜성처럼 등단한 그는 <환상수첩> <1964년, 겨울> <60년대식> 등 단편으로 문학청년들의 귀감이 됐다. 그러나 군사독재와의 정면대결을 피한 그는 곧 영화계에 투신해 <무진기행>을 영화화한 <안개>를 비롯해 <영자의 전성시대> <겨울여자> <충녀> 등의 시나리오를 썼다.

일찍 순수문학을 접었음에도 김승옥이 196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한 것은 그의 문학이 내포한 시대정신 덕분이다. 4·19 혁명은 체제의 억압과 불의에 저항하는 개인을 탄생시켰다. 광복 이후에도 계속돼 온 권위주의를 탈피한 자유의 실현은 불꽃놀이처럼 짧은 순간이었을망정 김승옥이 추구한 낭만적 일탈을 꿈꾸는 개인의 내면을 용인했다. 아울러 이런 개인은 실패한 혁명으로부터 상처와 환멸, 자괴감을 느끼는 자폐적 공간으로 자신을 가둔다. 김승옥의 작품은 또한 급속한 산업화의 와중에 상실한 인간성의 황폐함을 고발한다. <무진기행>의 윤희중이 처한 이중적 상황, 즉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면서도 현실의 이익을 따르는 모순은 이런 상황을 대변한다.

골방에 숨어 있던 자아로서 김승옥의 적자는 요절한 시인 기형도다. 김승옥이 1960년대 청년이라면 기형도는 1980년대 청년이다.
“나무의자 밑에는 버려진 책들이 가득하였다/은백양의 숲은 깊고 아름다웠지만/그곳에서는 나뭇잎조차 무기로 사용되었다/그 아름다운 숲에 이르면 청년들은 각오한 듯/눈을 감고 지나갔다, 돌층계 위에서/나는 플라톤을 읽었다, 그때마다 총성이 울렸다/목련철이 오면 친구들은 감옥과 군대로 흩어졌고/시를 쓰던 후배는 자신이 기관원이라고 털어놓았다/존경하는 교수가 있었으나 그분은 원체 말이 없었다/몇 번의 겨울이 지나자 나는 외톨이가 되었다/그리고 졸업이었다, 대학을 떠나기가 두려웠다.”(기형도 ‘대학시절’)

기형도의 이 시는 ‘1980년대식’이 어떤 것인지를 그 어떤 산문보다 여실하게 증명한다. 나뭇잎조차 무기로 사용되던 시절을 플라톤이나 읽으면서 통과해 온 청춘의 뇌리에는 죄책감과 상흔이 그득하다. 더욱이 자신의 유년기를 고백한 시를 보면 기형도는 어렵사리 살아온 ‘민중의 아들’이었으나 투사로 거듭나지 못했다. 스스로를 자신이 처한 상황과 격리시킴으로써 견뎌 온 시절에 대한 고백은 우울하기 짝이 없다. 충분히 애도하지 못하면 우울이 된다고 지크문트 프로이트는 말했다. 인간에 대한 신뢰와 역사의 진보를 말하던 시절에 기관원인 후배, 침묵하는 교수를 보면서 상실을 경험한 시인은 오히려 대학을 떠나기가 힘든 심경에 이른다.

기형도의 유고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은 무채색으로 칠한 청춘 스케치다. 잎사귀는 검고, 이웃은 수상하며, 저녁하늘은 흐렸고, 가족은 울고 있다. 검은색 그림자가 종종 등장해 자신의 죽음에 대한 예고편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의 시에는 불안과 음모와 거짓과 막막한 현실과 미래에 대한 불안과 삶의 무방향성에 대한 은유로서 안개가 자주 등장한다. 특히 ‘안개’란 작품은 무진을 바로 연상시킨다.

구제불능 도시, 포기할 수 없는 희망

‘안개’란 시를 쓴 요절시인 기형도와 <도가니>의 작가 공지영씨. |권호욱 기자

“아침 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이 읍에 처음 와본 사람은 누구나/거대한 안개의 강을 거쳐야 한다./앞서간 일행들이 천천히 지워질 때까지/쓸쓸한 가축들처럼 그들은/그 긴 방죽 위에 서 있어야 한다./문득 저 홀로 안개의 빈 구멍 속에/갇혀 있음을 느끼고 경악할 때까지.//…//몇 가지 사소한 사건도 있었다./한밤중에 여직공 하나가 겁탈당했다./기숙사와 가까운 곳이었으나 그녀의 입이 막히자/그것으로 끝이었다. 지난 겨울엔/방죽 위에서 醉客(취객) 하나가 얼어 죽었다./바로 곁을 지난 삼륜차는 그것이/쓰레기 더미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적인 불행일 뿐, 안개의 탓은 아니다.”
기형도 시대에 문학을 한다는 일은 비판과 현실 참여를 요구했다. 계엄이 선포되고, 최루탄이 터지고, 학생과 노동자가 죽어가는 상황에서 자기 유년을 돌아보거나 내면의 상처를 쓰다듬는 일은 좀처럼 용납되지 않았다. 자신의 존재론적 관심(플라톤을 읽는 정치외교학과 학생!)이나 문학적 재능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몰랐다는 것도 그의 대학시절이 음울한 이유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기형도의 시 ‘안개’는 보기 드물게 현실비판적이다. 안개는 사람들을 고립시키고 여직공의 겁탈을 용인한다. 취객의 죽음이 안개 탓이 아님을 애써 강변하는 데에는 비꼼이 들어 있다.

공지영의 장편소설 <도가니>(2009년)를 읽을 때 김승옥과 기형도를 떠올리게 되는 것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도가니>의 무대는 아예 무진이다. 무진시의 해무(海霧)에 대해 작가는 “거대한 흰 짐승이 바다로부터 솟아올라 축축하고 미세한 털로 뒤덮인 발을 성큼성큼 내딛듯 안개는 그렇게 육지로 진군해왔다.”고 묘사했다.

무진의 안개 속에는 자애학원이란 청각장애인 학교의 악행이 숨어 있다. 서울에서 사업에 실패한 뒤 아내 친구 덕분에 자애학원의 교사로 채용된 강인호는 무진에 도착하자마자 이상한 기운을 느낀다. 소년이 철로에 뛰어들어 죽고, 소녀는 과자봉지를 든 채 운동장을 배회한다. 쌍둥이인 교장과 행정실장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자애학원의 독재자들이다. 강인호는 무진에서 서유진이란 대학시절의 여자 선배를 만난다. 유진은 남편과 이혼한 뒤 두 아이를 키우면서 무진의 여성단체에서 일하고 있다.

자애학원에서 소년과 소녀에 대한 성폭행, 그리고 이를 무마하기 위한 폭력과 협박이 비일비재하게 이뤄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인호와 유진은 중앙 언론에 이 사실을 알리고 여론을 환기시킨다. 그러나 학연·지연 등으로 자애학원과 커넥션을 이룬 경찰·검찰·법원·지방언론 등은 자애학원을 제자리로 돌려놓는다. 무진은 외부의 개입을 허용하지 않는 자기완결적인 범죄 조직인 것이다. 자신이 끝없는 투쟁의 선상에 서 있음을 알게 된 인호는 농성장에서 도주하다시피 서울로 돌아간다. 무진을 지키는 건 실패는 경험했지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얻은 서유진뿐이다. 도가니는 광기와 폭력과 거짓말의 도가니이며, 무진의 안개는 그런 현실의 가림막이다. 　

우리 사회가 민주화됐다고 싸울 대상이 사라진 건 아니다. 자애학원처럼 돈과 권력이 결탁하고 약자에 대해 폭압이 이뤄지는 현장은 얼마든지 있다. 이런 사례는 사회면의 1단기사로 처리되지만 자애학원을 상대로 한 유진의 싸움처럼 현장의 사람들은 늘 피투성이로 살아간다.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무진을 빠져나오는 인호와 달리 유진처럼 그곳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투쟁과 고통의 삶을 짊어진다.

명작의 재구성

공지영은 시계 제로에다 구제불능인 무진에도 일말의 희망이 있다고 말한다. 1980년대의 운동권 여학생이자 1990년대 후일담문학의 선두주자로서 공지영은 21세기에 들어선 뒤에도 분명한 선악 구도를 포기하지 않고 싸워서 이겨야 한다는 당위와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계속한다. 그녀를 지탱해 온 사회의식과 도덕적 책무는 이 작품을 관통한다. 이미 김승옥을 읽은 공지영은 무진에서 새로운 시작이 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무진기행>이 지닌 의미를 변주한다.

<한윤정 기자 yjhan@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