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의 재구성] <미국의 송어낚시>와 <월든>

개발지상주의 고발 ‘저항적 글쓰기’

<미국의 송어낚시>란 책이 있다. 서점 점원이 착각해 낚시코너에 꽂아 놓는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는 이 책은 미국 비트세대 작가인 리처드 브라우티건(1935~1984)이 1967년에 발표한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이다. 생태문학의 수작으로 꼽히는 이 소설은 평이하고 건조하기조차 한 제목과 달리 읽어 내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송어, 송어낚시, 송어낚시 쇼티, 송어낚시 황금펜촉 등으로 주어가 존재를 계속 바꾸는가 하면 허먼 멜빌의 <모비 딕>으로부터 독일계 망명 감독인 프리츠 랑의 영화까지 미국 사회의 다종다기한 문화적 맥락들이 불쑥불쑥 끼여든다. 등장인물과 시간·공간적 배경이 수시로 바뀌기도 한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기면서 뭔지 모를 심적 충격을 준다.

강과 낚시가 미국인들의 삶에서 지니는 의미를 보여 주는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폴이 낚시를 하는 장면.

점차 없어지는 송어와 송어낚시
이 책이 요즘 한국 사회와 맞닿는 지점은 4대강 개발 사업과 그에 따른 작가들의 ‘저항적 글쓰기’란 움직임이다. 강을 준설하고 보를 쌓아서 수로를 확보한다는 계획은 <미국의 송어낚시>가 그려낸 1960년대 미국의 모습과 너무나 유사하다. 정부는 많은 시민, 지식인, 종교인의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업에 착수했다. 그러자 한국작가회의 소속 작가들이 공사 현장을 찾아가 “시인이여, 사라지기 전에 기억하라”고 외치면서 ‘저항적 글쓰기’를 선언했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은 “4대강이 강으로서의 존재를 잃으면 우리 정신의 토대가 붕괴될 것”이라면서 “작가들이 물새와 나루터의 시적 정경들이 지니는 비근대적 강의 의미를 글로 써서 들려 달라”고 주문했다. 과연 이 시대의 작가들은 국토의 지형을 바꿔 놓을 4대강 개발 사업을 어떤 언어로 남겨 놓을 것인가.

개발지상주의를 신랄하게 고발한 <미국의 송어낚시>의 중심에는 송어라는 상징이 자리 잡고 있다. 송어는 미국 하천에 가장 많이 사는, 미국인들과 친숙한 물고기다. 동시에 송어는 멜빌이 <모비 딕>에서 묘사한대로 미국인들이 추구하는 가치로서의 흰 고래가 형편없이 축소된 모습이기도 하다. 아메리카 대륙의 원시적인 아름다움은 미국의 철학과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청교도들이 뉴잉글랜드에 도착한 뒤 보스턴을 중심으로 19세기 전반을 지배한 초절주의(超越主義) 철학은 자연의 힘에 대한 숭상과 찬양이 토대가 됐다. 너새니얼 호손의 숲, 허먼 멜빌의 바다, 마크 트웨인의 강은 거대한 자연에 대한 외경 의식을 담고 있다. 그러나 서부 개척이 완료되고 산업자본주의가 전역에 확산되면서 오지와 대자연은 사라졌다. 어떤 숲과 어떤 강도 경외심으로 바라보는 대상이 아니라 야영지와 리조트가 됐다.

브라우티건은 이런 미국의 현실을 문제 삼는다. 히피들과 더불어 샌프란시스코에서 산 그는 미국의 건국 이념을 조롱하는 것으로 작품을 시작한다. 샌프란시스코 워싱턴 광장의 벤저민 프랭클린 동상 앞에는 무료 급식을 받는 가난한 사람들이 있다. 국부인 프랭클린은 자서전에서 성실, 근면, 검소하면 누구나 잘살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200년이 지난 뒤 그의 동상 발치에는 아무리 성실, 근면, 검소해도 잘살 수 없는 사람들이 달랑 시금치 한 조각이 들어 있는 교회의 무료 급식을 무료하게 기다리고 있다.

이런 미국에서 송어와 송어낚시는 점차 멸종해 가는 존재다. 화자인 ‘나’는 처음 술주정뱅이 계부로부터 은빛 송어에 대해 들었을 때 철강도시 피츠버그, 강철송어를 떠올린다. 그리고 첫 송어낚시를 하기 위해 폭포처럼 보이는 곳을 찾아가지만 그곳은 집과 집 사이의 하얀 계단이었을 뿐이다. 17년이 지나 어느덧 어른이 된 ‘나’는 아내와 딸을 데리고 송어하천을 찾아 헤매는 여행을 하고 있다.

이들이 만난 그라이더 하천과 톰마틴 하천은 송어가 살 수 없는 곳이다. 그레이브야드 하천은 묘지 사이를 옹색하게 흐른다. 헤이만 하천의 주인 헤이만은 송어를 맷돌에 빻아서 밀, 케일과 함께 먹는 황폐한 삶을 살아간다. 솔트 하천에는 코요테를 잡기 위해 독극물을 넣는 바람에 등에 혹이 생긴 송어가 나타났다. 달콤한 포트와인으로 살해된 무지개송어가 발견되고, 미국의 송어낚시가 왜 사라졌는지를 알아내기 위한 부검도 이뤄진다.

미국의 정신도 꿈도 희망도 사라져

워싱턴 광장의 벤저민 프랭클린 동상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작가 리처드 브라우티건(왼쪽). <미국의 송어낚시> 원서의 표지사진으로 쓰였다.

죽어간 것은 송어만이 아니다. 송어를 따라서 미국의 정신도, 미국인의 꿈과 희망도 사라진다. 독재자인 목동은 순응하는 양떼를 몰고 가고, 6학년 학생들은 1학년들에게 송어낚시에 대해 알려 주려다가 교장의 제지를 받는다. ‘나’는 온천에서 아내와 정사를 하다가 피임을 하기 위해 물에다 사정하는데 허옇게 뭉친 정액 사이로 죽은 송어가 둥둥 떠다닌다.

미국정신의 소멸은 ‘송어낚시 쇼티’란 이름의 중년 남자로 의인화 된다. 그는 휠체어를 타고 프랭클린 동상 앞에 서 있다가 화자의 딸의 관심을 끌지만 딸은 모래상자(가짜 자연)를 발견하자마자 그쪽으로 뛰어간다. ‘나’의 행로는 흘러흘러 클리블랜드 폐선장에 도착한다. 거기에서는 송어하천을 조각조각 나눠서 팔고 있다. 피트당 6달러50센트이고, 10피트 이상 사면 곤충을 덤으로 준다. 자연이 사라진 자리에는 캠핑 열기가 퍼져 온 숲이 랜턴 불빛으로 뿌옇다.

그러나 작가는 마지막 희망을 놓지 않는다. 화자의 친구는 구세주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쓰이는 크리스마스 트리를 팔아서 번 돈으로 ‘미국의 송어낚시 황금펜촉’을 사서 ‘나’에게 선물한다. 이는 ‘나’로 하여금 “미국의 송어낚시 황금펜촉이 종이에 눌러 만들어 내는, 강변을 따라 서 있는 서늘한 녹색 나무들과 야생화와 송어의 검은 지느러미는 정말이지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고 생각”하도록 만든다. 작가의 상상력과 글쓰기를 통해 목가적 꿈의 회복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미국의 송어낚시>는 송어를 매개로 한 주인공의 비판적 탐색 과정을 매우 생경한 플롯과 문체로 묘사한다. 모든 것이 의미를 상실하고 총체성과 연대감이 사라진 상태에서는 상황에 대한 인식과 그것을 서술하는 문체 역시 파편적일 수밖에 없다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명제를 따른다. 작가는 우리가 더이상 자연과 조화를 이룬 유기적인 삶을 살아갈 수 없음을 형식을 통해 웅변한다. 그러나 이 책으로 일약 유명해진 작가는 그가 마지막 송어낚시와 동일시한 선배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처럼 권총으로 자신의 생을 마감했다.

비트 세대 작가들이 과도한 행동과 표현으로 실천에 옮긴 미국적 자연사상의 뿌리는 19세기 뉴잉글랜드 지방에서 자라났다. 이성에 대한 감각의 승리, 체제의 속박에 대한 반대, 개인주의, 자연에 대한 환희 등의 경향은 초절주의 철학으로 집약된다. 랠프 왈도 에머슨이 대표하는 이 철학은 영국 낭만주의와 독일 관념론, 동양의 신비주의 전통을 뒤섞어 논리적 일관성이 없는 짬뽕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헨리 데이비드 소로(1817~1862)의 <월든>이란 명작을 남겼다.

<월든>은 1845년 7월부터 1847년 9월까지 메사추세츠주 콩코드의 월든 호숫가에서 오두막집을 지어 놓고 산 소로의 경험담이다.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그는 형과 함께 사설학교를 열어 잠시 교사생활을 한 뒤 목수와 측량기사로 살았다. <월든>은 행복한 삶에는 그다지 많은 물질이 필요하지 않다는 그의 사상을 집약하고 있다. “내가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얽매임이 없는 자유다.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더라도 나는 행복하게 살아나갈 수 있으므로 값비싼 양탄자나 다른 호화 가구들, 맛있는 요리, 새로운 양식의 고급 주택 등을 살 돈을 마련하는 데에 내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되도록 오래오래 자유롭고 얽매이지 않는 생활을 하자는 것이다.”

자연 속 인생살이 중요성 호소
넉 달 동안 손수 지은 오두막에서의 생활은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들과 직면하는 것이었다. 이는 호수의 아름다운 자연으로 인해 가능했다. “호수는 하나의 경관 속에서 가장 아름답고 표정이 풍부한 지형이다. 그것은 대지의 눈이다. 그 눈을 들여다보면서 사람은 자기 본성의 깊이를 잰다. 호숫가를 따라 자라는 나무들은 눈의 가장자리에 난 가냘픈 속눈썹이며, 그 주위에 있는 우거진 숲과 낭떠러지들은 굵직한 눈썹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오두막을 짓고 산 월든 호수.

이들 작품이 자연과 조화를 이룬 삶의 중요성을 지성의 충격에 호소한다면 감성적으로 미국의 목가주의를 구현한 작품으로는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1992년)을 꼽을 수 있다. 배우 로버트 레드퍼드의 감독 데뷔작으로 호평을 받은 이 영화는 <미국의 송어낚시>보다 훨씬 서정적으로 송어낚시가 미국인에게 주는 정신적 의미를 전달한다.

1900년대 초, 스코틀랜드 출신 장로교 목사인 리버런드 매클레인(톰 스커릿 분)은 두 아들 노먼(크레이그 셰퍼 분) 및 폴(브래드 피트 분), 부인(브렌다 블레신 분)과 함께 몬태나주 강가의 교회에 살면서 낚시를 종교처럼 소중하게 생각하고 즐긴다. 송어를 낚는 제물낚시꾼인 그는 두 아들에게 공부를 가르치면서 틈틈이 낚시하는 법도 가르친다.

신중하고 지적인 노먼과 자유분방한 폴은 형제애가 깊으면서도 경쟁적인 관계로 자란다. 어느덧 노먼은 동부의 대학에 들어가 문학을 공부하고, 폴은 고향에 남아 신문기자가 된다. 노먼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폴의 송어낚시 솜씨는 거의 예술의 경지에 가 있다. 고향에서 제시라는 여성을 만나 사랑이 무르익던 무렵에 노먼은 시카고 대학의 문학교수로 채용됐다는 기쁜 소식을 받는다. 그러나 포커를 즐기던 폴이 갑자기 길에서 폭행을 당해 사망하자 가족들은 깊은 상실감에 빠진다. 이 상처를 간직한 아버지는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어도 완전히 사랑할 수는 있다”는 설교를 마지막으로 목사직을 은퇴한다. 세월은 강물처럼 흘러가고 노인이 된 노먼은 강가에서 자기 가족이 강과 낚시와 더불어 살아 온 과거를 되새기며 상념에 젖는다.

영화 속의 젊은 브래드 피트는 금발과 푸른 눈, 싱그러운 미소를 지닌 미국의 아이돌이다. 젊은 로버트 레드퍼드를 그대로 닮은 그는 완벽한 삶을 가장하면서도 내면의 공황을 견디지 못해 자폭하는 청춘을 연기한다. 그런 폴의 캐릭터는 짧은 역사 속에서 높은 도덕적 이상주의와 이에 모순되는 팽창주의(인디언 학살, 흑인노예제)라는 극단적 양면성에 이끌려 온 미국을 상징한다. 그의 갑작스런 죽음은 이런 두 가지 사이에서 터져 나오는 파열이라고 볼 수 있다.

명작의 재구성

<월든>이나 <흐르는 강물처럼>이 보여 주는 목가주의는 오늘날 환경주의자들 사이에서도 비현실적이란 비판을 받는다. 그럼에도 이런 목가주의적 전통은 미국을 지탱해 온 건강성의 한 축이다. 강을 보존하자는 주장을 단순히 비현실적이고 낭만적인 목가주의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 강의 흐름을 경제와 과학의 이름으로 바꿔 놓을 수 있다는 생각이 얼마나 큰 희생을 초래할 지에 대한 두려움이 필요하다. 갈수기에도 항상 일정량의 물이 흐르는 거대한 어항인 청계천의 전국적인 확장이라는 신화는 <미국의 송어낚시>의 결말인 클리블랜드 폐선장의 디스토피아를 자꾸만 떠올리게 한다.

<한윤정 기자 yjhan@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