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그라운드 넷]디스커버리 인질범 이씨가 남긴 행적

9월 1일(현지시간) 인질극을 벌이다 사살된 제임스 이씨.

“인간? 지구는 더 이상 인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당신들은 세계의 모든 오염과 문제들 배후에 인구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중략)…내 요구사항은 디스커버리가 지구와 야생생물을 구할 수 있는 ‘창발적인’ 해결책을 묻는 새로운 쇼를 방영하라는 것이다.”

한국계 미국인 제임스 제이 이씨(43)가 자신의 웹사이트에 남긴 글이다. 한국에서는 태풍 곤파스 이슈 덕분에 묻혔지만, 미국에서 발생한 인질극이 9월 초 전 세계 인터넷을 달궜다. 이씨는 미국 메릴랜드주 실버스프링에 있는 디스커버리 채널 방송국에 난입, 인질극을 벌였다. 4시간 동안의 인질극은 이씨가 인질에게 총을 겨누는 순간, 경찰이 그를 사살하면서 끝났다. 이씨는 왜 인질극을 벌였을까.

남아있는 단서는 많지 않다. 이씨가 개설한 웹사이트 ‘세이브더플래닛’은 그가 올려놓은 성명서만 단출하게 남아있다. 이씨가 운영했던 마이스페이스(미니홈피)는 사건 직후 누군가에 의해 삭제되었다. 누리꾼은 재빨랐다. 캡처한 이미지가 남았다. 세계의 수호자(Worldguardian)라는 이름의 이 미니홈피가 마지막으로 업데이트된 것은 2008년 1월 22일. “혁명의 때가 왔다!”는 제목의 글이다.

그는 2008년 2월 15일부터 23일까지 매일 12시간 디스커버리 채널 앞에서 시위를 할 것이라고 밝혀 놓았다. 그는 실행에 옮겼을까. 미 언론의 추적에 따르면 그는 실행에 옮겼다. 남아있는 자료를 보면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도 벌였지만 ‘돈은 쓰레기!’라고 외치며 노숙자들에게 수천 달러를 뿌려 사람들을 모았다(그가 돈을 뿌리는 광경은 유투브에 동영상으로 남아있다). 시위에 들어가기 전에 그는 지역 무가지에 자신의 1인시위에 동참해달라는 의견광고를 싣기도 했다. 미국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 돈을 뿌린 행위 때문에 그는 체포되어 2주 동안 복역했고, 디스커버리 채널 방송국의 반경 150m 안에는 들어가지 말라는 명령을 받기도 한다. 그리고 2년 후 결국 사단이 난 셈이다.

언론들은 그를 ‘극단적 환경운동가’라고 지칭했다. ‘환경’ ‘운동가’라고 할 수 있을까. 다시 그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보자. 총 11개 항목으로 되어 있는 그의 요구사항의 1번에서 그는 “디스커버리는 소설가 다니엘 퀸의 ‘나의 이스마일’ 207쪽에서 212쪽에 언급되어 있는 지구를 구하는 해결책에 기반한 방송을 매일 황금시간대에 편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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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다니엘 퀸의 책과 앨 고어의 ‘불편한 진실’ 덕분에 환경운동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거의 혼자 움직였던 것으로 보인다. 환경운동연합에서 국제연대를 담당해온 마용운 국장은 “한국계로 해외에서 활동하는 환경운동가를 여럿 알고 있지만 그의 이름은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게다가 ‘지구와 야생동물을 보호하기 위해 기생충 같은 아이를 낳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 등의 주장은 과거 극단적 환경론을 폈던 ‘유나보머’를 넘어서는 과격한 주장이다. 사건의 교훈은 두 가지다. 하나는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것. 책 두세 권이나 영화 한 편을 봤다고 다른 사람의 행동을 이끌어내는 운동가가 되기는 어렵다. 또 하나는 인터넷의 진화 덕분에 ‘행적’뿐 아니라 개인이 갖고 있는 생각까지도 누구나 쉽게 추리하고 접근하는 것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이씨의 주장과 또 다른 차원에서 이건 인류의 운명에 바람직한 일일까, 아니면 나쁜 일일까.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