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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우리는 99%]월스트리트 청년들, 오바마 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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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금융권력 비판 나선 점령 시위대 진보진영 동력 기대

“자유가 허용되는 나라에서는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는 행동이 억압적인 국가에서는 엄청난 저항행위로 간주되어 심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직접행동>, 에이프릴 카터)

지난 9월 26일 글로벌 금융의 심장부인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에서 수백명이 구호를 외치며 행진하고 있다.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는 이름의 시위대는 9월 17일부터 기업의 탐욕과 불평등한 금융 시스템에 항의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자유의 나라 미국에서 억압은 정치권력에서 오지 않는다. 지난 9월 17일부터 월스트리트를 점거한 채 4주째 시위를 이어가고 있는 미국 청년들은 억압은 월스트리트의 금융권력에서 온다고 믿는다. 조직화되지 않은 평범한 미국 청년들이 정당이나 기존 시민사회단체에 의지하지 않고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Occupy the Wall Street)”는 구호를 앞세워 ‘직접행동’에 나선 배경이다.

인터넷과 SNS 힘이 시위 확산
시위 첫날 월스트리트에 모인 청년들은 수백명에 불과했다. 시위 초기 미국 주류 언론의 반응은 냉소적이었다. 9월 23일자 뉴욕타임스 기사는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일하는 한 트레이더의 말을 인용하면서 끝난다. “‘애플 컴퓨터를 들고 여기(점령 시위 장소인 맨해튼 주코티 공원) 앉아 있는 이 아이들을 보세요’라고 그는 말했다. ‘애플은 세계 최고의 독점 기업이에요. 애플 주식은 400달러에 거래되고 있죠. 이 아이들이 그걸 알기나 할까요?’”

주류 언론의 냉소를 극복하고 시위를 확산시킨 힘은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다. 시위대는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Occupy the Wall Street)’ ‘월스트리를 함께 점령하자(Occupy Wall Street Together)’ ‘우리는 99%다(We Are the 99 Percent)’ 등의 웹사이트와 블로그,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시위대의 메시지를 퍼뜨리고 참여를 호소했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의 날개를 타고 미국 전역으로 확산된 점령 시위는 이제 ‘좌파의 티파티 운동’이란 말이 거론될 만큼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미국 진보진영과 보수진영은 점령 시위대가 강력한 결집력으로 오바마 행정부의 개혁정책에 제동을 걸어온 보수적 유권자 단체 티파티에 견줄 만한 진보의 개혁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인지를 놓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점령 시위의 위상이 미국 정치 지형을 뒤흔들 수 있는 변수로까지 부상한 것이다.

‘노동조합 가세하면서 현실적 힘 얻어’
진보진영은 애초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금융시스템에 대한 비판이라는 시위의 명분과 온라인을 통한 신속한 조직력과 기동력은 인정했지만 구체적인 방법론에서는 허술하다고 봤다. 먼저 요구사항이 분명하지 않았다. 시위대는 부의 불평등과 기업과 은행의 부패에 대한 불만과 분노를 공유했지만, 개별적인 구호는 중구난방이었다. 어떤 이는 화석연료 사용 금지를 주장했고, 어떤 이는 20달러짜리 화폐에서 앤드루 잭슨 전 대통령의 얼굴을 빼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내일 세계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오늘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겠다”는 난데없는 구호도 섞여 있었다. 그러나 핵심은 평범한 청년들을 거리로 이끌어낸 상황 자체가 지닌 잠재력이다. 뉴욕타임스는 10월 1일자 칼럼에서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의 구호 중 상당수는 바보 같은 것이다. 그러나 젊은 시위대가 금융시스템에 책임성과 공정성을 부여하는 데 도움을 준다면, 그들에게 더 많은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고 썼다.

시위가 확산되면서 잠재력은 현실적인 힘을 얻고 있다. 지난 5일 시위에는 미국 노동조합이 본격적으로 가세했다. 이날 시위에는 미국 최대 노동조합인 산업노조총연맹(AFL-CIO), 뉴욕시 교원노조, 자동차노조(UAW), 국제서비스노조(SEIU), 운수교통노조 등 노동조합과 학생연맹이 참여해 시위 시작 이후 최대 규모인 1만명이 시위를 벌였다.

조직화된 운동세력이 시위에 동참하면서 미국 진보는 느슨한 형태로 표출되고 있는 시위대의 요구를 어떻게 조직화된 정책적 요구로 결집해 오바마 행정부와 민주당으로 대표되는 미국 진보진영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까라는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 사회운동을 분석해온 노스웨스턴대학 브라이덴 킹 교수는 10월 6일자 워싱턴포스트와의 전화통화에서 “시위대는 티파티가 공화당에 대해 그랬던 것처럼 민주당의 변화를 촉진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진보진영이 월스트리트 시위에 대해 큰 기대를 갖는 이유 중 하나는 2010년 이후 진보진영의 정치적 동력이 급격하게 약화된 것과 관련이 있다. 월스트리트 금융자본을 비판하는 진보진영의 시위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미국의 진보적 시민사회단체들과 노조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여러 차례 월스트리트 시위를 조직했다. 그러나 그동안은 티파티 운동이 미국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으면서 대중의 관심에서 비켜나 있었다. 워싱턴포스트는 10월 5일자 기사에서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대가 대중의 상상력을 사로잡고 있는 지금에서야 조직화된 이들 단체의 메시지가 언론의 주목을 끌고 있다”고 평가했다.

지난 1일 확성기를 든 미국 뉴욕시 경찰이 브루클린 다리를 건너려는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대를 향해 해산을 촉구하고 있다. 이날 시위로 시위대 700명이 경찰에 체포됐다. AP/연합뉴스


진보진영에서 월스트리트 시위대가 진보의 티파티가 되기를 바라는 또다른 이유는 오바마 정부 하에서 티파티가 발휘해온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 때문이다. 2009년 시작된 티파티 운동은 큰 정부를 반대하면서 오바마 행정부의 경제개혁 정책에 제동을 걸었다. 지난 8월 부채한도 증액 협상에서 오바마 행정부가 증세 없는 정부 재정지출 삭감이라는 불완전한 결론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티파티 유권자들의 지원을 받아 2010년 중간선거에서 의회에 포진한 공화당 강경파 의원들이 비타협적 태도를 고수했기 때문이다.

티파티와의 공통점과 차이점
티파티와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에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먼저 둘 모두 2008년 이후 경제위기가 실업과 실질소득 감소로 이어지면서 중산층이 몰락하는 상황에 대한 불만에서 나왔다. 다음으로 양쪽 모두 정당이나 시민사회단체 등 기존 조직에 속하지 않은 일반 시민들의 자발적인 운동이다. 시장에 대한 태도는 다르다. 시장의 자율적 조정능력을 신봉하는 티파티는 경제에 대한 정부의 개입을 반대한다. 반면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대는 시장에 대한 정부의 규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가 진보의 티파티가 될 수 있을까. 미국 보수의 평가는 부정적이다. 미국 보수 중에서도 가장 오른쪽에 있는 견해를 대변하는 폭스뉴스는 ‘월스트리트 시위대는 좌파의 티파티인가? 전문가들은 아직은 아니라고 말한다’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가) 정치세력화하는 데는 한 가지 치명적인 걸림돌이 있다. 시위대가 저항하는 행정부가 같은 편이라는 사실이다.”

폭스뉴스의 보도가 악의적이기로 소문난 것이라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한 예로 지난 3일 방송에서는 “(시위대를) 잡아들이느라 수백만 달러에 달하는 미국인의 세금이 낭비되고 있다”는 발언이 전파를 탔다. 9월 30일 방송에서는 “(시위대는) 삶의 목표나 초점이 없다” “시간이 남아 돌아서 그런다” “거리를 지저분하게 만들 뿐이다” 같은 뉴스 진행자의 발언들이 여과 없이 방송됐다. 그러나 진보진영에서도 시위대의 ‘정치적 목표’가 뚜렷하지 않다는 우려가 있다. 티파티가 투표운동을 벌여 자신들을 대변하는 의원들을 의회에 진입시킴으로써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전술을 취한 반면, 월스트리트 시위대는 금융자본의 탐욕을 비판하는 데 그치고 있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진보세력에 유리할 전망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는 오바마 행정부 입장에서는 기회이자 위기다. 10월 6일자 뉴욕타임스 기사의 분석을 보면,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는 티파티의 약진으로 균형이 깨진 진보와 보수의 세력구도를 되돌려놓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오바마 행정부에 유리하다. 2008년 대선에서 무브온이 그랬던 것처럼 2012년 대선에서 재선을 노리는 오바마 대통령을 지원할 수 있는 강력한 대중운동 조직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전제조건이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과연 시위대의 적극적인 지지를 얻을 수 있느냐의 문제다. 오바마 대통령은 최근 이전까지의 중립적인 태도를 벗어나 부유층 증세 및 금융산업 개혁 등과 관련한 강성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오바마가 임명한 미국 재무부 장관 티모시 가이트너는 시위대로부터 월스트리트의 대변자로 불리는 인물이다. 한 시위 참가자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오바마의 정책에 대한 불만이 많다”며 “그는 재선을 위해 10억 달러를 모금하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느라 바쁘다”고 말했다.

오바마 행정부 출범 이후 지금까지 전개된 정치 지형을 장기적으로 살펴보면 이번 시위가 진보진영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워싱턴포스트는 10월 6일자 기사에서 “미국 정치가 전환점에 도달했다”고 규정했다. 이 신문은 2010년까지만 해도 지배적인 정치담론은 경제위기를 배경으로 한 보수의 부흥이었지만 이번 시위로 인해 사정이 달라졌다고 본다. 

근거는 이렇다. 티파티는 연방정부의 권력집중을 비판하면서 권력집중에 비판적인 미국 대중들의 감성적 지지를 획득했다. 월스트리트 시위대는 반대로 권력이 연방정부에 집중된 것이 아니라 월스트리트와 금융시스템에 집중돼 있다고 비판하고 있는데, 지금은 금융권력에 대한 비판이 미국인들의 공감대를 획득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문은 “유권자들은 일반적으로 증세를 싫어하지만 부자들이 합당한 세금부담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보수의 장밋빛 시절은 끝났다”고 평가했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10월 3일자 기사에서 ‘참여’에 방점을 찍었다. “미국 민주주의는 보다 참여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타임>은 이렇게 덧붙인다. “점점 더 많은 미국인들이 적극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열정이 쌓이면 공론장으로 분출한다. 기술은 그들이 자체적인 조직을 만들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한다. 사람들은 어느 순간 자신들이 큰 힘을 지녔음을 깨닫게 될 것이고 그 힘을 이용할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러한 자각은 국가적 토론을 불러일으킬 것이고 선거에서 그 결과가 드러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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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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