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이야기]“오늘도 하늘이 맑습니다”

전남 해남에 집안이 가난해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 한 소년이 있었다. 학교에 다니고 싶지만 스스로 길을 찾지 못한 소년은 마지막 방법으로 하나님께 편지 한 통을 썼다. 소년은 무슨 일을 해도 좋으니 공부할 수 있는 길만 열어 달라는 내용을 적은 뒤 봉투에 ‘하나님 전상서’라고 써서 우체통에 넣었다.

충남 태안에서 고기잡이를 하는 노부부가 이른 아침에 바다에 나갔다가 조난을 당했다. 스크루가 그물에 걸려 배가 기울어지면서 남편은 물에 빠지고 아내는 가라앉는 배에 겨우 몸을 걸친 상황이었다. 평소 휴대전화 사용에 익숙지 않던 그녀는 무작위로 버튼을 누르다 전날 우체국으로부터 받은 문자메시지를 건드리게 되었고, 태안우체국 유기용 집배원의 업무용 PDA에 ‘연락바랍니다’라는 메시지가 전송되기에 이르렀다.

최근 우정사업본부가 펴낸 세 번째 미담집.

경북 상주시 함창우체국 박재구 집배원은 평소처럼 담당 구역을 돌면서 우편물을 배달하던 중 ‘펑’하는 소리에 길을 멈췄다. 소리가 난 곳으로 뛰어가 보니 축사 옆 전기 단자함에서 난 것이었고, 주변으로 불이 번지고 있었다. 그는 경황 중에도 ‘두꺼비집’을 찾아 전원차단기부터 내리고 119에 화재 신고를 한 뒤 축사 주인에게 불이 난 사실을 알렸다.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한 여자가 차문을 열고 운전석에 올라탔다. 갑자기 한 남자가 나타나 뒷좌석에 타고는 여자 목에 칼을 들이댔다.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죽인다.” 남자가 시키는 대로 지상으로 차를 몰고나온 여자는 우체국 택배 차량과 집배원을 발견했다. 그녀는 급가속과 급제동 페달을 밟은 뒤 자신의 차를 택배 차량에 부딪쳤다. 북대구우체국 김정웅 집배원은 차에서 한 여자가 내리며 “강도야!”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강원 춘천우체국 강희철 집배원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주소가 봉투에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산 ○○번지’가 자신의 담당 구역인 것은 맞지만 그곳은 사람이 살지 않는 산속이었다. 그는 그 이상한 편지를 반송시키려고 우체국에 둔 채 배달을 나갔다. 오토바이를 끌고 가던 그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되돌아와서 그 편지를 다시 집어들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우체국과 교회 주변에 오래 회자돼온 오영석 전 한신대 총장의 사연이다. 우체국에서는 배달 불능의 그 우편물을 반송하거나 폐기하지 않고 해남읍 교회에 전했다. 가난한 시골 소년은 교회의 도움으로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고, 한신대와 스위스 바젤대학을 나와 ‘대학의 꽃’인 총장에까지 오른 것이다.

업무용 PDA로 문자메시지가 온 것이 이상했지만 유 집배원은 어떤 예감에 이끌려 전화를 걸었다. “살려주세요!” 다급한 구호 요청은 119와 해경지소에 전달됐고, 노부부는 마침 부근을 지나던 어선에 구조됐다. 유 집배원의 조난 신고가 직접 노부부를 바다에서 건진 것은 아니지만 조난자에게 끝까지 삶의 의지를 접지 않도록 희망을 불어넣은 점에서 두 명의 목숨을 구하는 데 일조했다.

박 집배원의 경우 배달 일정에 쫓겨 불이 난 줄 모르고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다. 지역사회에 대한 그의 관심과 침착한 조치는 한우 200여 마리의 생명을 구하고 10억여원의 재산 피해를 막았다. 김 집배원은 칼을 든 채 도망가는 강도를 격투 끝에 제압해 경찰에 넘겼다. 강 집배원은 ‘수취인불명’ 도장 한 번 찍으면 끝날 우편물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들고 나가 결국 주인을 찾아주었다. 그곳은 무덤이었다. 한 할아버지의 애절한 순애보가 담긴 이 이야기는 TV에도 소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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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곳곳에서 4만3000여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1만7000여명의 집배원이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니는 우정사업본부에는 매년 훈훈한 이야기가 넘쳐난다. 최근 우본이 펴낸 <오늘도 하늘이 맑습니다>(비매품)를 읽으면 겨울 강추위와 각박한 세태로 차가워진 가슴이 따뜻해지는 느낌이 든다. 이 책에는 지난 7월 폭우 속에서 우편물을 배달하다 순직한 경기 용인우체국 차선우 집배원 이야기 등 30편의 미담이 실려 있다.

<신동호 선임기자 hud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