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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허물 들추기’ 경쟁 붙은 삼성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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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가족 내 민감한 과거사·돌출 발언 등 상속분쟁 둘러싸고 앙금 깊어져

삼성가의 상속분쟁이 막장대결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수십년 전 있었던 내밀한 가족 과거사가 공공연하게 불거져나오고, 재벌 총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거친 돌출발언이 쏟아지고 있다. 형과 동생, 누나와 동생으로 얽혀 있던 상속분쟁이 점차 삼성과 CJ의 조직적 싸움으로 옮겨가는 분위기다. 어느 한 쪽이 피를 흘리며 고꾸라지지 않으면 끝나지 않을 끝장대결의 터널 속으로 진입한 듯한 느낌이다.

1월 2일 오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리는 시무식에 앞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권호욱 기자



CJ, 직간접적 소송 관여 정황
삼성가의 싸움은 창업주 이병철 선대 회장의 장남인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이 2월 12일 동생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삼성에버랜드를 상대로 7139억원 규모의 주식반환 소송을 내면서 시작됐다. 이어 이건희 회장의 누나 이숙희씨와 조카 이재찬 전 새한미디어 사장의 부인과 자녀도 이번 소송에 합류하면서 집안 싸움이 본격화했다. 이맹희씨는 오랜 세월 한국을 떠나 있었지만 CJ그룹 이재현 회장의 아버지여서 삼성과 CJ의 싸움으로 번질 공산이 큰 것으로 업계에선 내다봤다.

CJ그룹은 이번 소송에 대해 “상관이 없다”는 입장이다. CJ그룹 관계자는 “이번 상속분쟁은 두 사람 사이의 문제이고, 우리 그룹에서 이렇다 저렇다고 언급할 상황이 아니다”라면서 “실제로도 우리는 이번 소송에서 빠져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CJ그룹이 이번 소송에 직·간접적으로 관여되어 있다는 정황은 계속 나왔다. CJ 법무담당 직원이 이맹희 전 회장의 법정대리인인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와 중국을 방문했다는 점, 이 전 회장이 가족관계 증명을 위해 소장에 첨부한 ‘제적등본’ 발급 신청자가 이재현 회장이었다는 점 등이 언론을 통해 밝혀진 것. CJ그룹 내에서도 “회장님 아버지가 소송 당사자인데, 그룹이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느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현 상황에서 화해로 가기는 어려워 보이는 만큼 CJ그룹이 나설 가능성도 예측된다”고 설명했다.

이맹희 전 회장이 소송을 제기한 후 CJ 이재현 회장을 두고 벌어진 일련의 사건도 CJ그룹이 나설 수 있는 환경이 됐다. 이 전 회장이 소송을 제기한 후 열흘도 지나지 않은 2월 21일. 삼성물산 감사팀 직원이 이재현 회장을 미행하다 발각되는 사건이 터졌다. CJ그룹은 업무방해 혐의로 형사고소했다. 경찰 조사 결과 발표에 따르면 이 회장 미행사건에는 삼성물산 감사팀, 삼성전자와 삼성전기 소속 감사팀 직원이 가담했다. 4명이 2조씩 한 조를 이뤄 미행을 했고, 대포폰까지 사용했다는 점도 밝혀졌다. 하지만 ‘윗선’과의 연루설은 밝혀지지 않았고, 이 사건은 검찰로 송치됐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이재현 회장을 미행할 이유가 없다”고 부인했다.

‘술자리 보도’ 삼성 배후설도
삼성 직원들이 조를 짜 이재현 회장을 미행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양측은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4월 17일 이건희 회장은 상속분쟁에 대해 “(그쪽에서) 고소를 하면 끝까지 고소를 하고, 대법원이 아니라 헌법재판소까지라도 가고, 지금 생각 같아서는 한 푼도 내 줄 수 없다”고 천명했다.

그러자 형도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정면대응에 나섰다. 자신이 머무는 중국으로 변호사를 불러 자기 말을 녹음하도록 한 뒤 보도자료로 배포하도록 한 것이다. 4월 23일 법무법인 화우를 통해 공개된 육성녹음에서 그는 “건희가 어린애 같은 발언을 하는 것을 듣고 당황했다”며 “건희는 형제지간에 불화만 가중시켜왔고, 늘 자기 욕심만 챙겨왔다”고 맹비난을 퍼부었다. 이건희 회장의 누나 이숙희씨도 ‘수준 이하의 자연인’이라는 동생의 발언을 겨냥해 “명색이 형과 누나인 우리를 상대로 한 말로서는 막말 수준”이라고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나섰다.



이 소식을 접한 이건희 회장은 감정이 폭발했다. 맹희씨 육성이 보도된 다음날인 4월 24일 그는 삼성 서초사옥으로 출근하면서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 앞에서 작심하고 입을 열었다. 그는 형 맹희씨에 대해 “나를 포함해 누구도 (이맹희씨를) 장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 (아버지가) 맹희는 내 자식이 아니라고 내제쳤다. 우리 집에서 퇴출된 양반이다”라고 맹공했다. “감히 나보고 건희, 건희 할 상대가 아니다”라고도 했다. 열한 살 차이 나는 형은 동생에게 ‘어린애 같은’이라고 비난하고, 동생은 형에게 ‘감히 나보고 건희라고 하나’ 하며 맞붙은 것이다.

이맹희 전 회장은 5월 중국에서 귀국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회장이 귀국하면 이번 소송에서 비교적 거리를 두던 CJ그룹도 개입할 공산이 크다. 소송을 대리하고 있는 법무법인 화우 관계자는 “이맹희 전 회장이 귀국하면 아무래도 가족이 보살피지 않겠나. 우리는 법정 소송만 대리할 뿐이지 개인의 스케줄이나 계획 등은 관여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결국 이 전 회장의 귀국은 CJ그룹이 본격적으로 상속분쟁에 직·간접적으로 뛰어드는 상황으로 전환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삼성가의 상속분쟁은 김용철 사건에서 파생된 일이다. 2007년 말 삼성그룹 기업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을 지냈던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 비자금을 폭로하면서 이건희 회장의 차명계좌 수사를 위한 특검이 꾸려졌다. 2008년 4월 삼성비자금의혹 관련 특검은 삼성그룹 전·현직 임직원 명의의 삼성생명 주식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이병철 선대 회장으로부터 차명 상태로 상속받은 것이라고 발표했다. 2008년 12월 이 회장은 삼성생명 주식 324만4800주, 2009년 2월 삼성전자 주식 225만7923주(보통주 224만5525주, 우선주 1만2398주)와 삼성SDI 주식 39만9371주를 실명 전환했다.

쟁점은 상속회복 청구권 소멸 여부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주영진 부소장은 “당시 차명 주식을 실명으로 전환하는 것에 대해 과세를 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특검은 과세를 하지 않았다. 다만 배임·조세포탈 혐의만 인정했다”면서 “당시 차명계좌에 삼성전자·삼성생명 등의 주식이 있었는데, 이건희 회장 앞으로 실명 전환이 되면서 이 회장의 지분만 늘어났다. 특검이 삼성의 지배구조를 더욱 확고하게 한 셈”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시민사회단체와 정치권에서는 이 회장의 차명계좌가 상속재산이 아니라 비자금일 것으로 추정하는 주장이 많았지만, 이에 대한 수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건희 회장이 ‘상속 재산’이라고 밝히면서 형과 누나들이 자기 몫을 주장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

2월 23일 CJ그룹 법무팀 관계자(왼쪽)가 이재현 회장을 미행한 삼성 직원에 대한 고소장을 서울 중부경찰서에 제출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이맹희 전 회장은 삼성생명 주식 824만주와 삼성전자 주식 20주 및 1억원을 지급하라는 청구 소송을 냈는데, 이를 현재 주가로 환산하면 7100억원에 이른다. 이숙희씨는 삼성생명 주식 223만주, 삼성전자 100주 등으로 총 소송액은 1900억원 정도다. 여기에 이재찬 전 새한미디어 사장의 부인과 자녀는 삼성생명 주식 45만4847주, 삼성전자 20주 등 총 1000억원에 이르는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의 쟁점은 맹희씨 등이 상속 회복을 청구할 권리의 시효가 아직 남아 있느냐, 이미 소멸됐느냐 하는 점이다. 민법 제999조 2항은 상속재산권을 침해받은 시점으로부터 10년, 침해를 인지한 시점으로부터 3년이 경과되기 전 소를 제기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이맹희 전 회장은 자신이 상속권을 침해받은 것을 알게 된 시점이 2011년 6월이라고 주장했다. 이때 국세청은 삼성가 형제들에게 “고 이병철 회장의 차명재산이 2008년 12월 이건희 회장 명의로 넘어갔는데, 상속인들이 지분을 포기하고 이 회장에게 증여한 것이냐”는 공문을 보냈다. 이건희 회장 측은 CJ 이재현 회장 측에 일종의 상속 포기각서를 요구했다. 이맹희 전 회장은 이 공문을 보고 아버지 재산의 존재를 알게 됐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소송을 대리하고 있는 법무법인 화우 관계자는 “이건희 회장이 실명 전환을 공시한 시점이 2009년 2월 13일”이라며 “이때를 인지시점으로 본다고 해도 3년 이내에 소송을 제기한 만큼 시효문제는 없다”고 주장했다. “헌재와 대법원 상속청구권 판례에 따르면 차명계좌가 본인 명의로 돌아온 때부터 인지기간 10년이 시작된다”는 주장도 했다.

반면 삼성의 시각은 다르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이병철 선대 회장의 상속은 1987년에 개시되었고, 이미 25년 이상 경과했다”면서 “이맹희씨가 쓴 자서전 <묻어둔 이야기>에도 나오지만, 이병철 선대 회장이 구두로 유언을 남길 때 CJ 이재현 회장도 그 자리에 있었다. 다 아는 내용을 가지고 왜 지금 소송을 제기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반박했다.

이번 상속분쟁 총 소송액은 1조원이다. 삼성이 소송에서 완패를 해도 지배구조에는 별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높다.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이은정 회계사는 “이번 소송이 삼성의 지배구조에는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다만 온 가족이 모두 소송을 걸게 되면 삼성 지배구조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면서 “이번 소송은 사회적으로 나쁘지 않다. 삼성의 지배구조가 기형적인데, 이를 개편할 수 있는 요인이 된다”고 설명했다.

소송 참여 배경된 과거는
이번 상속분쟁으로 인해 삼성가의 과거 이야기들이 하나 둘 나오고 있다. 그동안 사람들이 잊었던 혹은 몰랐던 사실들이 다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에 대해 삼성은 민감하게 여기고 있다.

이맹희 전 회장은 1993년 <묻어둔 이야기>에서 아버지 이병철 회장과 사이가 벌어진 과정에 대해 꽤 자세하게 설명했다. 책에 따르면 아버지와 장남의 관계는 한비(한국비료)사건과 사카린 밀수사건 등이 터지면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특히 1970년에 벌어진 차남 창희씨가 청와대에 투서를 넣어 아버지 이병철 회장을 조사하도록 한 사건 이후 둘의 관계는 회복 불능의 길을 걸었다. 맹희씨에 따르면 이 투서는 동생 창희씨가 단독으로 벌인 일이었지만, 아버지는 장남인 자신이 관여되어 있다고 오해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숙희씨 역시 이병철 회장과 관계가 좋지 않았다. 이숙희씨의 남편은 구자학 아워홈 회장이다. 1956년 두 사람이 결혼했을 때만 해도 마치 데릴사위처럼 구 회장은 중앙개발 및 호텔신라 대표를 맡을 정도로 신임을 얻었다. 하지만 삼성이 전자사업 진출을 두고 LG와 갈등을 빚게 되고, 구 회장은 삼성을 떠나 LG로 복귀했다. 이 과정에서 이숙희씨 역시 아버지와 사이가 멀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한솔그룹 이인희 고문, 3녀 이순희씨는 소송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5녀인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은 소송 참여 여부에 대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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