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국의 대선이야기]진흙뻘에서 피는 연꽃을 기다리며

정치는 사건의 연속이다. 총선 끝나면 대선이고 대선 끝나면 새정부 출범이다. 수 많은 사건들 속에서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사건들을 추려내는 것은 정보의 바다에서 이슈를 찾아내는 것과 같다. 이번주만 해도 통합진보당 사태, 민주당 비대위 출범, 새누리당 원내대표 선거 같은 굵직한 사건들이 줄을 이었지만 이 중에서도 꼭 한 번 더 짚어봐야 할 이슈는 통합진보당 사태다. 사안의 성격상 역사적 고찰과 원론적 해석이 필요한 사건이라는 뜻이다.

우리나라 진보운동의 역사는 거듭된 실패와 패배와 좌절과 침몰의 역사였다. 이 참담한 비극의 역사를 드러내기 위해 결국 무죄로 밝혀진 진보당 사건이나 인혁당 사건을 다시 거론할 필요가 있을까?

이정희 대표와 이석기 당선자

우리나라 진보운동은 수많은 역사적 부침을 겪으면서 여기까지 왔다. 1970~80년대 민주화운동과 진보정당운동을 통해 현재에 이른 통합진보당과 민노총, 전교조 등은 우리나라 진보운동이 험난한 정치 이데올로기 지형을 이겨내고 거둔 역사적 성취의 표상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통합진보당과 민노총, 전교조 등 진보운동 진영은 자신들의 이념이 옳다는 주관적 확신이 강하다. 이로 말미암아 자신들의 이념과 가치를 신성시하는 배타적 우월주의와 일종의 선민의식이 알게 모르게 스며들게 되는 것은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

당권파는 비례대표 경선에 조직적으로 개입해 선거부정을 저질러 자파 후보들을 당선권으로 밀어넣었다는 당 부정선거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와 이에 근거해 지도부 전원과 경선을 거친 비례대표 후보 전원의 사퇴를 권고한 운영위원회의 결정을 조직적으로 반대하면서 버티고 있다. 이런 당권파의 행태는 당권파가 형식적·절차적 민주주의보다는 자신들이 설정한 목표의 절대성, 자신들 행동의 정당성을 절대시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아마도 이러한 행태의 이면에는 평생을 음지에서 사회변혁을 위해 행동해온 자신들의 헌신적 활동을 알아주지 못하는 일반인들의 ‘무책임한’ 행태에 대한 억눌린 분노가 숨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있을 수 있는 행동양식이다. 그러나 더 이상 이런 방식으로 세상을 움직이려 해서는 안 된다. 설사 진보운동이 지금까지 세상의 변화를 주도적으로 만들어 왔다 하더라도 그것이 영속적이고 지속가능한 것이기 위한 기초는 절차적 정당성에 있음을 이제는 분명히 인정해야 한다.

고성국의 대선이야기

혁명의 시대, 기동전의 시대는 갔다. 이제는 모든 세력·정파들이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동의를 얻어 딱 그만큼의 영향력만을 행사하는 개혁의 시대, 진지전의 시대다. 진지전의 시대에 기동전을 감행하면 감당할 수 없는 후폭풍을 맞을 수밖에 없다는 것은 이미 80여년 전에 진보운동의 최고지도자 중 한 사람인 안토니오 그람시가 피를 토하며 했던 경고다. 통합진보당이 지금의 위기상황을 성장통 삼아 한 단계 성숙된 대중정당으로 발전했으면 한다. 단순히 부정선거 후유증을 수습하는 것이 아니라 분당, 통합, 분열을 되풀이해온 당 운영방식과 정치문화 전반을 재점검하고, 대중정당으로 한 계단 제대로 업그레이드 하는 쇄신과 혁신의 결단을 기대한다.

<고성국 정치평론가·정치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