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그라운드.넷]이해하면 묘한 사진

‘이해하면 묘한 사진’이라는 제목으로 지난 5월 중순, 한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라온 사진이 있다. 사진을 보면 미국의 여느 응급실 풍경이다. 의사가 환자를 지혈하고 있고, 간호사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그런데 침대의 남자 복장에 눈길이 간다. KKK단, 그러니까 인종분리주의를 주장하는 백인우월주의 특유의 복장을 한 백인 남성이다. ‘이해하면 묘한’ 까닭은 의사와 간호사들 모두 흑인이라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자신들을 해치는 주장을 하는 과격폭력집단의 성원을 소수인종이 치료한다는 아이러니를 담은 사진이다. 코믹하다기보다 뭔가 숭고함이 느껴지는 사진이다. 사진을 본 누리꾼들은 “의사 분과 의료진을 존경한다”, “누워 있는 사람의 생각이 잘못된 것이죠!”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

인터넷에 ‘이해하면 묘한 사진’이라고 도는 이미지. 실제상황을 담은 것이 아니라 라지 매거진이라는 잡지의 콘셉트 광고다.

사실 인터넷의 진짜 ‘언더그라운드’에는 지난 세기 초·중반에 찍힌 흑인에게 린치를 가하는 백인들의 사진이 아직도 돌아다닌다. 사진 속 백인들은 마치 바비큐파티라도 하듯 흑인을 매달아놓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조지 로메로 감독의 흑백 고전영화 <살아난 시체들의 밤(Night of the Living Dead)>(1968)의 마지막 장면에 이 사진들을 의도적으로 배치함으로써 좀비 영화의 정치성을 드러낸다.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분은 수잔 손탁의 책 <타인의 고통>을 읽으면 이 ‘엽서사진들’이 어떻게 찍혔고, 또 유통되었는지 추적하는 내용이 나온다.

그나저나 궁금하다. 인터넷에서는 벌써 몇 년 된 사진인데, 저 응급실 사진은 진짜일까. 모르면 닥치고 검색. 답은 의외의 곳에서 나왔다. 아쉽게도 저 사진은 연출사진이다. 인터넷 루머를 추적하는 사이트인 스놉스닷컴에 따르면 라지(Large) 매거진이라는 잡지가 지난 2005년 진행한 ‘For People Who think bigger than they are’, 그러니까 ‘자기 자신보다 더 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진행한 광고캠페인의 일종이었다. 라지 매거진? 잡지가 궁금해 찾아봤다. 호주에서 발간되는 15달러짜리 계간 잡지다. 온라인에는 의외로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오프라인 위주로 발간되는 잡지로 보인다. 스놉스닷컴이 공개한 오리지널 이미지에는 하단에 라지 매거진에서 진행하는 캠페인이라는 메시지가 있지만, 인터넷에 퍼져 있는 이미지엔 하단 부분이 편집되어 있어 진위 여부 논란이 일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 이라크전쟁 당시 패션잡지 보그가 유럽 패션모델을 내세워 출신국에 따른 미국 공항 입국심사 차별을 비판하는 콘셉트의 반전(?) 화보를 게재한 것이나 베네통, 이재석의 사회적 광고 같은 걸 떠올리면 되겠다.

언더그라운드.넷

라지 매거진은 이 사진 이외에도 저 콘셉트로 양팔을 잃은 장애인을 껴안고 있는 신부, 노숙자의 깡통에 동전을 넣는 다른 노숙자 등의 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심심하신 분은 검색해서 감상해보시기를. 비록 연출된 것이지만, 때로는 한 장의 사진이 더 많은 메시지를 담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케이스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