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대표 주간지 슈피겔과 슈피겔 온라인의 갈등이 주는 교훈
지난 4월 말 이후 독일의 대표 시사주간지 ‘슈피겔’ 편집장과 온라인 뉴스사이트인 ‘슈피겔 온라인’의 편집장 사이에는 첨예한 권력투쟁이 전개되고 있다. ‘슈피겔 온라인’은 1994년 주간지 ‘슈피겔’의 온라인 판으로 시작된 뉴스서비스다. 그 이후 지속적인 성장을 거듭하면서 독일 대표 온라인 뉴스사이트로 발전하였다. 130명이 넘는 기자들이 주간지 슈피겔과 관계없이 슈피겔 온라인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다수의 칼럼리스트와 블로거들이 슈피겔 온라인을 통해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다. 슈피겔 온라인은 정치, 경제, 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영상 뉴스를 제작하고 있으며, IT 및 문화 등을 소재로 다채로운 팟캐스트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독일 프로축구 분데스리가 전 경기에 대한 문자중계 서비스가 인기를 끌고 있으며, 신뢰를 주는 여행정보와 풍부한 여행상품은 슈피겔 온라인의 주요 수익원 중 하나다.
기사제공 유료화로 동반성장 금 가
주간지 슈피겔과 슈피겔 온라인의 동반성장에 금이 간 것은 지난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4년 주간지 슈피겔은 슈피겔 온라인에 제공하는 기사의 전면 유료화를 단행한다. 이를 통해 두 매체 사이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그 이후 슈피겔 온라인은 기자를 확충하면서 자체 제작 기사 비율을 100%로 끌어올리게 된다. 나아가 2010년 자유기고가와 블로거로 활동하던 카트리나 보헐트(1972년생)가 슈피겔 온라인 대표로 취임하면서 블로거와의 협업 등 다양하고 파격적인 실험이 본격화된다. 점차 중도보수의 색채를 띠어가는 주간 슈피겔과 달리 슈피겔 온라인은 보다 자유롭고 보다 비판적인 매체로 성장했다. 2012년 1월 기준 슈피겔 온라인의 페이지뷰는 약 10억을 기록하고 있으며, 2011년 슈피겔 온라인의 연간 광고 매출은 약 3000만 유로(약 440억원)에 이른다. 이에 비해 주간지 슈피겔의 판매부수는 2009년 이후 해마다 약 4∼5% 감소하면서 2012년 1월 약 93만부를 기록하고 있다. 주간지 슈피겔에 대한 온라인 기사 판매 또한 매우 저조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검색 서비스에 제한적으로 노출되고, 블로그에 링크되지 않으며, 트위터를 통해 확산될 수 없고, 페이스북 팬과 제한적으로 소통할 수밖에 없는 주간지 슈피겔은 독일 아날로그 저널리즘의 상징으로 사실상 디지털 시대로의 진입에 실패하고 말았다. 다시 말해 2004년 이후 주간지 슈피겔과 슈피겔 온라인은 모회사만 동일할 뿐 조직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서로 다른 언론기업으로 아날로그와 디지털이라는 별도의 세계에서 각자의 저널리즘 영역을 지켜가고 있다.
이러한 서로 다른 길을 걸어가는 두 매체 사이의 갈등이 지난 4월 말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슈피겔 온라인이 주간지 슈피겔을 자기잠식(cannibalization)하고 있다고 판단한 주간지 슈피겔 편집장은 슈피겔 온라인의 전면 유료화를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이에 반발한 슈피겔 온라인 편집장은 유료화를 전면 반대하며 한 발 더 나아가 갈등의 불씨를 제공한 주간지 슈피겔 편집장의 교체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슈피겔 온라인 편집장은 주간지 슈피겔을 지키기 위해 희생을 감내하지는 않을 것임을 명확히 했다.
디지털 저널리즘에서 살아남는 법
한편 두 매체 편집장 사이에서 온라인 뉴스의 유료화를 매개로 벌어지고 있는 갈등은 전체 저널리즘의 미래에 주는 작지 않은 시사점을 가지고 있다.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는 온라인 뉴스 유료화를 둘러싼 줄다리기는 두 매체 사이의, 나아가 아날로그 저널리즘과 디지털 저널리즘 사이의 핵심 갈등지점은 아니다. 아날로그 저널리즘에 던져진 질문은 피눈물을 요구하는 거친 디지털 전환의 길을 갈 것인가, 그리고 이를 통해 디지털 저널리즘과 같은 길을 걸어갈 것인가이다. 1990년대 말 또는 2000년대 초기 아날로그 저널리즘은 인터넷 대중화에 ‘원 소스 멀티 유즈’라는 신조어로 대응하며 ‘인터넷=종이신문/종이잡지’라는 등식을 제시한다. 또한 인터넷 담당자를 새롭게 고용하여 ‘온라인 기자’라는 이름을 선사하고 이들로 하여금 거세게 몰려오는 디지털 공세에 대응케 한다. 한편 고속인터넷의 확산과 함께 ‘인터넷=종이신문/종이잡지+라디오+방송’ 또는 ‘인터넷=글+소리+영상’이라는 등식이 성립되면서 저널리즘 영역에도 다양한 형식 실험이 진행되어 왔다.
이를 위해 ‘온라인’이라는 구별을 거부하고 스스로를 저널리즘 그 자체로 선언하는 곳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주간지에 등을 돌리고 자신 앞에 놓인 새로운 길을 가는 독일의 슈피겔 온라인이 그러하고, 종이 형식을 평가절하하며 온라인과 모바일 등 디지털을 우선시하는 영국의 가디언이 그러하다. 이러한 과정에서 ‘온라인 기자’의 조직 내 위상과 임금이 올라가고 있으며, 디지털 공간을 저널리즘의 무대로 멋지게 만들어가는 스타 기자 및 블로거가 탄생하게 된다. 그들은 이미지, 오디오 및 동영상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알고 있으며, 프로그래밍 언어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충실한 자료조사에 기초한 멋진 인포그래픽을 만들 수 있으며, 데이터 저널리즘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알고 있으며, 앱의 한계와 가능성을 반복되는 실험을 통해 이해하며,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놀이마당으로, 때론 사용자와 협력하는 마당으로 만들 수 있으며, 라이브 저널리즘의 작동원리를 이해하며, 뉴스블로깅의 의미를 체득한 디지털 시대의 기자다.
자식을 낳아보지 못하면 부모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는 역설이 있다. 디지털 무대에서 새로운 저널리즘의 기회를 찾고 이를 체득하지 못한다면 저널리즘은 아날로그의 깊은 질곡을 건널 수 없고, 그 질곡을 넘어 존재할 세계를 상상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일간지와 주간지 구별 없이 현재 안주하고 있는 땅과 오래된 낡은 습관을 버려야 한다. 디지털 저널리즘은 새로운 능력과 치열한 자기혁신에 헌신하는 기자를 전제조건으로 한다. 수백만명의 독자들이 태블릿으로 뉴스를 읽고 있으며, 컴퓨터와 태블릿으로 방송 프로그램을 소비하고 있으며, 스마트폰으로 라디오를 듣고 있다. 이때 이들의 저널리즘에 대한 기대는 함께 증가한다. 스마트폰, 컴퓨터, 태블릿, 그리고 월드와이드 웹은 종이, 사진, 소리, 영상 그 이상의 것을 할 수 있다. 부분의 합보다 많은 것을 독자들에게 제공해야 할 의무가 기자에게 있다. ‘인터넷>종이신문/종이잡지+라디오+방송’의 등식이 성립할 때야 비로소 새로운 디지털 저널리즘은 시작할 수 있다.
강정수<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