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국의 대선이야기]대선 여야 포석 읽기

황우여 대표·이한구 원내대표·서병수 사무총장.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이 놓은 포석은 고전 취향이다. 믿고 맡길 사람들 중심으로 단단하고 두텁게 두고 있다. 박지원 의원이 원내대표로 선출될 때만 해도 민주통합당의 포석도 그러하겠거니 했다. ‘이해찬-박지원 카드’ 또한 두텁기로는 새누리당에 지지 않을 터였다. 그런데 변화가 시작됐다. 울산에서 시작된 경선은 이변의 연속이다. 역시 변화의 민주통합당답다. 새누리당 따라하기로는 승산이 없다는 걸 알고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민주통합당 당원들의 높은 정치의식이 새삼 돋보인다.

두터운 바둑이 어려운 것은 중복을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황우여-이한구-서병수 카드’로 지역적 중복을 피했을지는 모르나 친박의 중복은 더 가중됐다. 가뜩이나 사당화 논란이 있는 상황에서 친박의 중복은 치명적일 수 있다. 친이 핵심인 김영우 의원의 대변인 등용과 지명직 최고위원의 친이계 배려로 중복 논란을 얼마나 희석시킬 수 있을까?

황우여 대표(왼쪽)와 이한구 원내대표

상수일수록 포석에 공을 들였던 게 고전 바둑이었다. 그러나 요즘의 바둑은 포석과 중반이 따로 없고 중반과 끝내기가 따로 없다. 전투력과 계산력을 바탕으로 처음부터 치고 받는가 하면 중반 돌입과 동시에 끝내기가 이뤄지기도 한다.

박근혜 전 위원장의 강점은 강한 전투력이다. 끝내기 계가 바둑에서 다 이겼던 판을 이명박 대통령에게 역전당했던 뼈아픈 경험 때문에 그동안 계산력 강화에 진력해오긴 했으나 박근혜 전 위원장의 강점은 역시 전투력이다. 상대의 대마를 포획하거나 상대 진영에 침투해 상대의 집을 초토화하는 것이 그의 장기다. 그런 박근혜 전 위원장이 두텁게 포석을 하고 있다면 뭐가 달라도 달라진 것이다. 이 두터움이 중복이 돼 자신의 발목을 잡는 덫이 될 것인가, 전투력에 두터움까지 갖춰 막강 대세를 구가하게 될 것인가, 그가 두고 있는 포석을 보는 두 가지 시각이 있음을 박근혜 전 위원장은 냉철하게 인식해야 할 것이다.

민주통합당은 어차피 변화를 선택했다. 엷음이 두려워 다시 두터움으로 회귀한다면 민주통합당은 두터움도 전투력도 잃어버리게 될지 모른다. 기왕 이렇게 됐으므로 ‘갈 데까지 가보는’ 수밖에 없다. 변화의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가보기 전에는 누구도 예단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그 끝에는 지금과 같은 담합구도와 상투적 기획은 더 이상 힘을 쓸 수 없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좀 더 참신한 기획과 발상의 전환이 시도될 것이고 그 과정을 통해 ‘박근혜 대세론’을 흔들 수 있는 특단의 수단을 찾아내게 될지도 모른다. 국민을 믿고 대중의 바다에 자신을 내던지는 결단을 통해 대선승리로 가는 전략적 침로를 만들어 갈 수도 있을지 모른다.

고성국의 대선이야기

“앉아서 죽을 것인가. 일어서서 무언가를 해볼 것인가.” 울산에서 시작된 변화가 민주통합당에게 2002년의 신화를 다시 가져다 줄 수도 있다. 민주통합당이 좀 더 대담하게 사고하고 좀 더 담대하게 행동해야 하는 이유다.

고성국<정치평론가·정치학박사>